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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로DX] 기술·분야도 ‘대통합’의 시대...피브코리아가 선언한 ‘엔지니어링 통합 프레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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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일 솔루션의 시대는 끝났다...장비 한 대보다 ‘유기적 융합’

 

한국 제조업이 직면한 위기는 더 이상 단일 변수로 정의할 수 없다. 공장 운용비 구조 변화, 탄소 배출 고강도 규제, 예측 불가능한 공급망 변동성 등이 상수가 된 시대다. 이제 기업은 탄소는 줄이되 에너지는 아껴야 하고, 그러면서도 납기는 단축하고 품질은 안정시켜야 한다. 이러한 다중 모순의 방정식이 우리뿐만 아니라 글로벌 제조업에도 과제를 던지고 있다.

 

문제는 이 과제들이 결코 따로 놀지 않는다는 점이다. 현장에서는 공정을 미세하게 조정하는 순간 전력 피크와 열 균형이 흔들리고, 운전 조건 변화가 품질 변동으로 확장된다. 데이터 역시 마찬가지다. 현장의 구체적인 ‘문맥(Context)’을 담지 못한 데이터는 인공지능(AI)를 이식해도 오작동하기 마련이다. 이는 오히려 잘못된 최적화로 현장의 불안정성을 키우는 역설을 낳는다.

 

결국 지금 제조 현장에 필요한 것은 장비 한 대, 소프트웨어 한 개가 아니다. 공정과 설비, 운영과 데이터를 하나의 유기적인 흐름으로 융합해 성과를 뽑아내는 ‘통합 엔지니어링 역량’이다.

 

이러한 전 세계적 변화와 요구사항은 철강·시멘트 등 에너지 집약형 산업을 비롯해, 항공우주·원자력처럼 극강의 신뢰성을 요구하는 산업에서 특히 부각된다. 연료 전환이 곧 열 효율과 품질의 재설계를 의미하고, 디지털 이력 관리가 바로 안전과 직결되는 구조기 때문이다. 이처럼 산업별로 주장하는 언어는 달라도 핵심은 일치한다. 전환은 단계별로 일어날지언정, 이를 추진하는 설계 프레임만큼은 처음부터 ‘한데’ 묶여 작동해야 한다는 것.

 

단일 공장이 아닌 통합을 위한 ‘연결 거점’...韓 시장 출사표 던진 '피브'

 

 

프랑스 소재 엔지니어링 기술 업체 피브(Fives)는 이러한 전환의 본질을 명확히 짚었다. 이들은 탈탄소화와 디지털 전환(DX)을 별개의 과제가 아닌, 하나의 실행 단위로 가져가는 문제로 인식했다.

 

이달 18일 피브가 한국 시장에서의 청사진을 공개했다. 피브코리아는 스스로를 정의한 정체성에 대해, ‘공장’이 아닌 ‘연결 거점’이라고 설명했다. 한국을 탈탄소, 에너지 효율, DX 수요가 큰 시장으로 보고, 본사 포트폴리오를 현장 과제로 연결하겠다는 구상을 내놨다.

 

주목할 점은 현지 법인 설립과 운영 방식에 대한 유연한 접근이다. 초기에는 대표 사무소 형태로 출발해 시장의 온도와 투자 계획에 맞춰 구조를 발전시키겠다는 전략을 취했다.

 

김세종 피브코리아 총괄대표는 이러한 접근법이 현장에서 즉각 장비를 판매하는 영업 조직의 역할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그는 “피브의 방대한 포트폴리오를 한국의 복잡한 규제, 표준, 운영 현실과 정교하게 접속시키는 ‘프로젝트 설계 창구’에 집중하겠다는 의중”이라고 밝혔다.

 

실제로 김세종 대표는 한국산업기술시험원(KTL)·국제표준화기구(ISO) 등에서 축적한 ‘표준·인증·제도’ 등의 역량과 경험을 녹이겠다는 방침을 전했다. 피브의 경쟁력·기술력·포트폴리오 등을 한국 시장의 제도적 맥락 안에서 어떻게 구현할 것인지 기대해 달라는 메시지다.

 

탈탄소와 디지털화를 ‘따로’가 아니라 ‘하나’로 묶는 포트폴리오

 

피브가 한국 시장에서 주력할 분야는 우주항공·방위 분야 ‘고정밀 가공’, 원자력 영역 ‘고난도 배관·압력 장비’, 시멘트·광물 공정 ‘전 단계 설비’다. 여기에 DX·AI 플랫폼 ‘코텍스(CortX)’를 녹이는 통합 서비스 전략도 전개될 예정이다. 김 대표는 여기서 핵심은 ‘공정의 문제’로 치부하는 탈탄소 분야와 ‘운영의 문제’를 지적하는 디지털화(Digitalization)를 분리하지 않는 데 있다.

 

에너지를 줄이는 설비를 도입하는 순간 운전 조건이 변하고, 이를 통제하기 위해 데이터 구조와 운영 룰이 재설계돼야 하기 때문이다. 피브코리아가 ‘전환’이라는 커다란 논의 속에서도 결국 ‘운영 성능’과 ‘검증 가능한 성과’라는 구체적인 결과값으로 결론을 내리는 이유다.

 

김세종 대표는 이 관점에서 가장 상징적인 사례를 공개해 이해를 도왔다. 항공우주 분야에 도입된 자사 디지털 기계 가공(Machining) 솔루션 ‘미러밀링스타(Mirror Milling Star)’다. 그동안 항공 업계에서는 항공기 동체의 무게를 줄이기 위해 얇은 금속판을 깎아내는 공정을 내세워왔다. 이 과정에서 독성 화학 약품에 담가 부식시키는 ‘에칭(Etching)’이 업계의 공식과 같았다.

 

이는 환경 오염의 주범이자 작업자의 안전을 위협하는 제조 현장의 대표적인 난제로 인식됐다. 하지만 우주선이나 항공기에 활용되는 판재가 너무 얇아 기계로 깎으면 휘어버리는 탓에 수십 년간 대체 불가능한 필요악으로 여겨졌다.

 

피브가 MMS를 전면에 내세운 이유는 바로 이 지점에 있다. 환경 규제라는 ‘공정의 위기’를 디지털 제어라는 ‘운영의 기술’로 정면 돌파했음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피브는 이러한 기존 유해 화학물질 기반 에칭 공정을 100% 디지털 가공으로 대체하는 솔루션을 꺼내 들었다.

 

 

해당 방법론은 1차원적으로 방식만 바꾼 접근법에서 한 차원 더 나아갔다. 피브는 판재의 양면을 동시에 가공해 물리적 변형을 원천 차단하는 엔지니어링 설계를 채택했다. 이를 통해 기존 화학 공정이 가졌던 시간과 자원의 낭비를 최소화했다.

 

피브 측은 이러한 공정 최적화의 결과는 수치로 증명된다고 강조한다. 전력 사용량 50% 감소, 사이클 타임 65% 단축, 공정 공간 50% 절감이 이에 해당한다. 이는 장비 한 대로 얻어낸 성과가 아니라는 점이 사측의 강조 포인트다. 3D 스캐닝과 디지털 제어를 결합해 가공 정밀도를 확보하고 공정 효율을 높였다고 설명했다. 즉, 공정 전 과정을 한데 통합한 엔드투엔드(End-to-end) 디지털 시스템이 일궈낸 결실이라는 것이다.

 

다른 한편, 원자력 분야에서는 자회사 ‘피브노르동(Fives Nordon)’의 제작·검증 체계를 전면에 세웠다. 프랑스전력공사(EDF)의 EPR2 원전 6기 건설에 따른 핵심 장비 공급 계약이 이들의 신뢰성을 입증하는 징표다.

 

김 대표는 해당 대규모 프로젝트 참여가 한국 시장에서 갖는 의미는 남다르다고 말한다. 원자력 산업은 국가마다 상이한 규제와 기술 표준을 완벽히 충족해야 하는 것이 지상 과제다. 피브는 원자력 분야가 결국 규제·표준·품질 보증 체계를 통과시키는 ‘검증 프레임’ 싸움이라고 짚었다. 여기서의 메시지는 피브가 글로벌 원전 시장의 높은 진입 장벽을 뚫어내는 품질 보증 설계자로서의 위상을 갖춘 것이다.

 

결국 이 시장의 본질은 극한 소재 기준과 용접·가공·검사·문서화에 이르는 철저한 품질 루틴에 있다. 피브는 이를 글로벌 발주처의 요구를 통과시키는 검증 프레임의 이식으로 정의하며 한국 파트너들과의 협력 가능성을 열어뒀다.

 

시멘트와 철강 분야 역시 파쇄·분쇄·소성·제어 등 공정 전체 영역을 아우르는 디지털 기반 턴키(Turnkey) 역량을 강조했다. 열 효율을 높이려는 시도는 흔히 품질 변동과 설비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트레이드오프(Trade-off)’의 딜레마에 빠지기 쉽다.

 

이 모순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운영 데이터가 공정의 구체적인 맥락을 읽어내고 제어해야 한다는 피브의 설명이다. 수소 환원 제철이나 전기로 확대와 같은 어젠다 또한 결국 에너지와 품질을 동시에 잡는 운전의 공학에서 승패가 갈린다는 것이 피브의 통찰이다.

 

대시보드에 갇힌 디지털·AI, ‘현장 진단’의 속도로

 

피브가 갖춘 디지털 역량의 핵심인 코텍스는 데이터 시각화 도구에서 역할이 마무리되지 않는다. 기존 설비의 가동을 중단하거나 물리적 변형을 가하지 않는 ‘비침습(Non-invasive)’ 방식으로 고주파 기계 데이터를 수집하는 점이 특징이다.

 

 

여기에 운영기술(OT)·정보기술(IT)을 통합해, 원시 데이터를 즉각적인 실행 지침으로 전환한다. 여기서 포인트는 AI를 얹는 시스템적 메커니즘이 아니라, 설비가 멈추기 전 징후를 잡고 품질 변동의 근본 원인(RCA)을 최단 시간 내 특정하는 능력이다.

 

피브가 가동 중단 시간 감소와 에너지 최적화를 넘어, 고장 원인 즉시 도출을 강조한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결국 피브가 제공하는 DX의 실체는 현장 진단과 의사결정 속도의 비약적 상승이라는 메시지다.

 

유통·물류 분야에서도 피브는 실용적 노선을 택했다. 본사가 보유한 로보틱스 포트폴리오를 그대로 한국 시장에 배치하지 않겠다는 전략이다. 한국에서는 로보틱스 장비 경쟁 대신 운영 성·서비스로 시장의 틈새를 공략한다는 방침이다.

 

김 대표는 분류기의 처리량이 높아질수록 발생하는 병목 현상과 운영 정책의 복잡도를 해결하는 서비스 역량으로 승부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본사의 로봇 기술력은 높은 수준이나, 한국에서는 고객이 체감하는 운영 가치로 그 기술력을 증명하겠다”는 철저한 현지화 전략을 내비쳤다.

 

▲ 피브는 공격적인 인수합병(M&A) 구상을 통해 유통·물류 영역에서의 로보틱스 역량을 고도화했다. (출처 : 피브, 편집 : 헬로티 최재규 기자)

 

목표는 한국형 ‘운영 성능’ 혁신 설계...“표준·제도로 글로벌 기술과 한국 현장 잇겠다”

 

Q. 피브코리아가 한국 시장에서 ‘당장’ 실행에 옮길 구체적인 역할은 무엇인가?

A. 장비를 공급하는 단순 영업 조직이라기보다, 본사의 포트폴리오를 한국의 규제와 표준에 맞춰 성사시키는 역할을 할 예정이다. 쉽게 말해, 한국의 규제·표준·운영 현실에 맞춰 프로젝트 형태로 설계·조율하는 창구다. 출발 단계에서는 시장을 먼저 읽고, 이후 투자·사업 계획에 맞춰 조직 형태를 조정하는 것이 로드맵이다.

 

Q. 그럼 한국에서 달성하는 본격적 성과는 정확히 어디서 만들어낼 가능성이 큰가?

A. 기존 설비를 건드리지 않거나, 최소한의 변경만으로도 즉각적인 운영 성능 향상을 끌어낼 수 있는 지점에 집중하려고 한다. 예지보전, 품질 변동 원인 추적, 에너지 피크 억제와 같은 운영 과제가 그 출발점이다. 이는 공정 전체를 교체하지 않아도 투자수익률(ROI)을 단기간에 입증할 수 있는 영역에서 먼저 성과를 창출하겠다는 전략이다. 코텍스의 ‘비침습 데이터 수집’과 ‘근본 원인 분석(RCA)’ 메시지가 가리키는 방향도 이와 결이 같다. 이러한 초기 성과를 지렛대 삼아 이후 공정 및 설비 전반의 턴키나 레트로핏(Retrofit) 같은 거시적 영역으로 존재감을 확장하는 것이 피브코리아가 설계한 로드맵이다.

 

Q. 유통·물류 파트의 경우, 본사의 로보틱스 포트폴리오와 한국 내 전략의 연결 지점을 어떻게 세우고 있는지.

A. 본사 기준으로는 로봇이 주력 축이 맞다. 실제로 인트라로지스틱스 포트폴리오는 분류기(Sorter)·싱귤레이터(Singulator)·자율주행로봇(AMR)·자동창고시스템(AS/RS)·창고관리시스템(WMS)·창고제어시스템(WCS) 등으로 구성돼 있다. 이는 로봇·설비·소프트웨어가 일체화된 통합 솔루션 형태다. 하지만 한국 시장에서의 포지션은 로봇 장비 전면전이 아니라 운영 성과 서비스로 구분할 방침이다. 특히 임대·운영 측면에서 특유의 시장 구조가 형성된 한국형 물류센터에 특화된 서비스를 제공하려고 한다. 회사는 이러한 구조 안에서 피크 타임 대응, 병목 현상 제거, 장애 시간 단축 등 운영 가치를 직접 증명하는 서비스 시장을 정조준하려고 한다.

 

헬로티 최재규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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