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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1일, 2025년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경제체 지도자 회의(APEC Economic Leaders' Meeting)가 경상북도 경주시 경주화백컨벤션센터(HICO)에서 열렸다. 이 행사는 로보틱스·인공지능(AI)을 성장·안전·포용을 동시에 겨냥하는 ‘핵심 생산성 엔진’으로 격상시켜 전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이 자리에 참석한 APEC 주요 회원국들은 ‘지속 가능한 내일 구축: 연결, 혁신, 번영(Building a Sustainable Tomorrow: Connect, Innovate, Prosper)’의 주요 모토를 내세운 공통 비전을 사상 처음으로 채택했다. 이 안에는 AI 협력, 인구구조 변화 대응 등 내용이 담겼다. 또한 데이터 이동, 신뢰 가능한 AI 원칙, 고령화 대응 역량 구축 등을 하나의 프레임으로 통합됐다.
또한 이번 최고위급 회의에 앞서 이어진 ‘APEC 경제 지도자 주간(APEC Leaders’ Week)’과 현장에서 열린 ‘APEC CEO 서밋(APEC CEO Summit)’은 정책과 산업계를 하나의 축으로 엮으며 회의의 실질적인 영향력을 확대했다.
우리 정부는 이 자리에서 거버넌스(Governance)와 표준의 방향을 제시했다. 기업은 AI 연산 인프라, 로보틱스 상용화 계획, 디지털 트윈(Digital Twin) 적용 등을 구상을 구체화했다. 이는 기술 개발부터 현장 도입까지의 전과정을 ‘훈련(Training)·시뮬레이션(Simulation)·배포(Deployment)’라는 통합 프로세스를 통해 신속하게 진행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풀이된다.
이번 정상회의의 의미는 비전 선언에서 끝나지 않았다. 실질적인 기술 구현의 조건을 함께 논의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 ▲규범과 표준을 둘러싼 국제 공조 ▲각국의 주권형 AI 전략 ▲데이터·컴퓨팅 자원의 병목 해소 ▲고령화와 노동 공백에 대응하는 로봇의 역할 등이 하나의 어젠다로 다뤄졌다.
이러한 논의를 통해 로봇은 이중 성장 모멘텀을 확보한 모양새다. 로봇은 제조·물류·헬스케어·서비스 전반에서 인력난을 해소하고 품질 변동성을 낮추는 ‘정책 수요(Policy Demand)’와 고도화된 AI 모델의 폭발적인 성장에서 촉발되는 ‘기술 수요(Tech Demand)’가 맞물린 핵심 성장 동력이 된 것으로 보인다.
한국은 올해 APEC의 의장국으로서 이러한 글로벌 흐름을 촉진하는 역할을 수행했고, 현장에서는 민관의 초대형 AI 인프라 투자 및 피지컬 AI(Physical AI) 생태계 구상이 구체적인 청사진으로 제시됐다.
각종 현장서 검증 중인 로보틱스·AI, 실질적 솔루션으로 '급부상'

로보틱스와 AI는 노동력 부족 완화와 고령화 수요에 대응하는 핵심 솔루션으로 자리 잡았다. 현재 제조, 의료, 물류, 서비스 등 다양한 산업에서 로봇 기술 혁신이 가속화되고 있다.
로봇을 필두로 한 제조·산업 분야는 로봇 밀도(Robot Density)가 세계 최정상급인 한국을 중심으로 협동 로봇(코봇)과 디지털 트윈을 통한 공정 최적화가 확산·고도화되고 있다. 의료·헬스케어 분야는 수술 로봇의 미세 조작과 간병·재활 로봇이 고령화 수요를 흡수하며 성장세를 주도한다.
물류·운송 분야에서는 자율주행로봇(AMR)·무인운반차(AGV)가 공장과 물류창고에서 핵심으로 활약하며 생산 및 배송 리드타임을 단축시킨다. 실외 영역에서도 무인 화물, 최종 배송(Last-mile) 등 로봇이 부분 상용화 단계에 있으나, 보행자 안전, 도로·항공 규정, 데이터 처리 기준 정비가 병행돼야 한다는 지적이 있다.
실질적인 로봇 일상화를 기대하게 하는 서비스 산업은 호텔·식당 등 다중이용시설에서 안내·청소·서빙 로봇이 인력난 해법으로 정착 중이다. 다만, 사람과의 근접 상호작용이 많은 서비스 로봇의 특성상 안전·윤리 기준과 함께 직무 전환 지원 설계가 필수적이다.
결국 로봇은 사람을 완전히 대체하기보다 단순하고 위험한 작업을 맡는 보완재 역할을 할 때 생산성 향상 효과가 가장 크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제언이다. 이러한 인간과 로봇의 협업 최적화 방향으로 기술 발전과 제도가 정비될 전망이다.
APEC 속 ‘AI 규범 지도’...혁신 vs 위험 억제 사이 로봇이 설 자리
로보틱스·AI 기술의 급속한 발전에 따라, 이를 국제적으로 관리할 규범 논의가 APEC에서 활발했다. 특히 AI 분야는 로봇을 움직이는 두뇌라는 점에서 이목이 집중됐다. 데이터 이동, 신뢰 가능한 AI 원칙, 안전·책임 기준 등에 직접 연결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규범과 거버넌스 체계를 두고 주요국 간 시각차가 뚜렷하게 드러났다.
회의에서 중국은 시진핑(Xi Jinping) 국가주석이 ‘세계 인공지능 협력 기구(World Artificial Intelligence Cooperation Organization)’ 창설을 제안하며 다자주의적 규제 주도권을 잡으려 했다. 이는 로봇 산업 관점에서 안전·데이터·상호운용 기준을 글로벌 단일 트랙으로 맞추려는 시도로 해석된다.
여기에 대해 미국은 AI 글로벌 규제 논의에 신중하거나 회의적인 태도를 보였다. 미국은 국제기구 주도의 규제 대신 자국 내 빅테크 기업들과 자율적 가이드라인을 마련하는 등 민간 주도의 유연한 규제를 선호하는 모습이다. 로봇 업계는 이러한 미국의 입장이 시장 주도의 산업 표준을 우선시하는 접근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한다.
이러한 정치적 시각차 속에서도 국제 표준화 논의는 APEC 차원에서 꾸준히 병행됐다. APEC은 지난 8월 인천광역시에서 ‘AI 국제표준 콘퍼런스(APEC AI Standards Conference)’를 개최하며 회원국 간 AI 거버넌스 원칙과 기술 표준 조율을 촉진했다. 또한 전문가들도 AI 표준이 없다면 한 국가의 로봇 시스템이 다른 나라에서 승인받지 못해 교류가 막힐 수 있다고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로봇 하드웨어 측면에서는 센서·측위(Localization)·안전정지 등 안전 기준과 디지털 트윈 연계 규격이 핵심으로 다뤄졌다. 이와 관련해 현재 국제표준화기구(ISO)·국제전기기술위원회(IEC) 등 글로벌 기구들이 로봇·AI 안전 기준 논의를 가속화하고 있다. 현재 APEC도 회원국들이 이러한 글로벌 표준 수립에 적극 참여하도록 독려하는 연결고리 역할을 하고 있다. 와엘 디아브(Wael Diab) ISO·IEC 합동 산하 AI 기술위원회 의장은 "표준화는 규제와 기술 발전을 잇는 다리 역할"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결국 이러한 국제 규범은 정상급의 정치적 합의와 현장의 표준·인증 체계 수렴이라는 이중 트랙으로 진행 중이다. 이 두 축이 맞물려야 로봇의 글로벌 상용화가 속도를 낼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중이다.
이렇게 APEC을 중심으로 합의된 ‘APEC AI 이니셔티브 2026-2030(APEC AI Initiative 2026-2030)’은 인프라 투자 촉진을 목표로 한다. 그러나 APEC은 합의 기반 포럼의 특성상 강제력 있는 규제안 도출이 쉽지 않다는 지적이 있다. 결국 로봇 기업들은 유럽연합(EU)·주요 7개국(G7)·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등 병행되는 다양한 트랙에 대비해야 하는 숙제가 있다.
이때의 생존 전략은 여러 규제안의 최소 공통분모에 맞춘 안전·데이터 컴플라이언스 패키지를 선제적으로 설계하는 것이라는 제언이 잇따르고 있다.
결론적으로 이번 정상회의는 미·중 갈등 속에서도 AI와 고령화 난제를 다루며 기술을 공공재로 인식하는 공감대를 만들었다는 데 의의가 크다. 로봇 산업 관점에서는 데이터 이동, 연산 인프라, 안전 기준이 하나의 틀에서 통합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했다는 점 또한 실익이다.
궁극적으로 ‘혁신 촉진’과 ‘위험 억제’의 균형이 로봇 상용화의 속도와 범위를 결정할 전망이고, 로봇은 국제 거버넌스가 실제 경제 효과로 이어지는 시험 무대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한국, APEC에서 'AI 로봇 강국 도약' 로드맵 선언...구체적 성과는?
이번 APEC 개최국인 대한민국은 AI·로봇 강국 도약 로드맵을 전면에 내세웠다. 핵심은 대규모 AI 인프라 투자, 국제 협력 확대, 국내 로봇 경쟁력 고도화를 통해 실행력을 높이는 것이다.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은 인공지능(AI) 반도체 및 컴퓨팅 기술 업체 엔비디아(NVIDIA)와의 파트너십이다. 한국 정부와 주요 기업은 최신형 그래픽처리장치(GPU)를 최대 26만 개 확보하기로 했다. 삼성전자·SK그룹·현대자동차그룹 등이 수혜를 입을 것으로 보이며, 현대차그룹은 초거대 모델 학습을 위한 AI 공장(AI Factory) 구축에 약 5만 개 GPU 투입을 예고했다.
이어 삼성전자는 가정용 서비스 로봇에 ‘엔비디아 아이작(NVIDIA Isaac)’, ‘엔비디아 코스모스(NVIDIA Cosmos)’ 등 로보틱스 및 피지컬 AI 개발 플랫폼 적용을 예고했다. SK텔레콤은 엔비디아 GPU 브랜드 ‘RTX’ 기반의 주권형 클라우드 인프라를 구축하고, 개방형 플랫폼 ‘엔비디아 옴니버스(NVIDIA Omniverse)’ 활용을 자사 관련 생태계에 지원할 방침이다.
이때 엔비디아의 최신 AI 칩 ‘블랙웰(Blackwell)’은 로봇·자율기계 분야에서 바로 쓰일 수 있는 고성능 연산자원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피지컬 AI 생태계 구상도 병행됐다. 현대자동차그룹·엔비디아·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약 30억 달러(약 4조3000억 원)를 투자해 로봇·모빌리티 실증을 상시로 돌리기로 했다. 이 전략을 통해 한국은 민감 데이터를 활용해 현장 맞춤형 모델을 개발하는 소버린 AI(Sovereign AI) 역량을 확보할 계획이다. 이 가운데 한국어 특화 거대언어모델(LLM)과 비전 모델을 로봇 하드웨어와 결합하여 글로벌 AI 기술 종속성을 줄이는 것이 핵심 동력이다.
대외 협력 확장도 주요 성과다. 이번 APEC을 계기로 아랍에미리트(UAE) 등과의 AI·방산·스마트시티 협력이 구체화돼, 국내 로봇 기업의 해외 테스트베드 및 밸류체인 진입 발판이 될 것으로 평가된다.
결론적으로 한국은 APEC 2025를 기점으로 연산 인프라, 피지컬 AI, 국제 협력을 통합해 로봇 강국의 조건을 차곡차곡 쌓을 것으로 보인다. 로봇과 AI를 국가 성장 기회로 전환하는 주도권을 잡을 수 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전문가들은 남은 과제로 ▲인재 육성, ▲ISO·IEC 트랙 참여 기반 표준 및 윤리 선도, ▲대기업 중심 인프라의 중소 로봇 기업에 개방하는 생태계 저변 확대 등 세 가지로 압축했다.
헬로티 최재규 기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