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이 산업 현장에 들어오면서 ‘정답을 맞히는 모델’보다 더 중요한 기준이 생겼다. ▲설계 변경이 실제 공정의 손실로 이어지는지 ▲안전과 규제의 책임을 누가 지는지 ▲반복 생산의 변동성을 누가 담당하는지 등과 같은 최신 어젠다가 이에 해당한다. 그래서 산업용 AI의 경쟁은 데이터 규모보다 의사결정의 신뢰성과 실행의 일관성으로 이동하고 있다.
이 흐름에서 엔지니어의 역할은 줄어들기보다 더 무거워진 모양새다. AI가 제안·탐색을 가속할수록 최종 선택의 근거와 책임은 작업자에게 전가된다. 결국 AI는 작업자 대신 제품을 만드는 존재가 아니라, 설계 의도와 품질 기준을 더 빠르게 검증하도록 돕는 증폭기로 자리 잡는 중이다.
이때 관건은 각종 지식이 흩어져 있다는 점이다. 도면, 시뮬레이션 결과, 자재명세서(BOM), 생산 현장 반응(Feedback), 서비스 데이터 등이 연동되지 않는 문제다. 이들 정보가 서로 다른 시스템에 쌓인 채 연결되지 않으면 AI는 그럴듯한 답을 내더라도 재현성·추적성을 담보하기 어렵다. 이에 따라 산업용 AI가 요구하는 것은 설계·제조·운영으로 이어지는 지식의 재사용 구조다.
이 같은 문제의식을 전면에 세운 무대가 다쏘시스템 ‘다쏘시스템 3D익스피리언스 월드 2026(Dassault Systèmes 3DEXPERIENCE World 2026 이하 3DXW)’이다.
프랑스 소재 시뮬레이션 및 3차원(3D) 설계 솔루션 업체 다쏘시스템은 이달 1일(현지시간)부터 4일까지 미국 텍사스주 휴스턴 소재 조지 R. 브라운 컨벤션 센터(George R. Brown Convention Center)에서 행사를 열고, 설계·제조 가치사슬(Value Chain)의 AI 적용을 ‘산업을 위한 AI(AI for Industry)’라는 메시지로 전했다.
이번 행사의 핵심 키워드는 자사 차세대 비전 ‘3D유니버스(3D UNIV+RSES)’와 산업용 AI의 결합이다. 다쏘시스템은 3D유니버스를 앞세워 엔지니어링 데이터에 AI를 얹고, 설계·시뮬레이션·제조·운영 등 전과정을 가로지르는 사용자 경험(UX)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기조연설에 나선 마니쉬 쿠마(Manish KUMAR) 솔리드웍스 최고경영책임자(CEO) 겸 연구개발(R&D) 부사장은 AI를 불과 같은 기술로 비유하며, 지금의 생성형 AI(Generative AI)는 ‘불꽃(Spark)’ 단계에 가깝다고 진단했다. 동시에 그는 “AI는 엔진이고, 운전자는 다쏘시스템 생태계 사용자”라고 강조하며 “엔지니어의 판단과 의도가 산업용 AI의 성패를 좌우한다”고 말했다.
그는 물리 세계에서의 적용을 설명하기 위해 사족 보행 로봇 사례를 들었다. 그는 이 로봇에 대해 “센서, 제어, 물리적 상호작용이 결합돼야 하고, 학습된 지능이 몸을 가져야 현장에서 의미가 생긴다”고 언급했다. 최근 주목받는 차세대 기술 방법론 ‘피지컬 AI(Physical AI)’를 간접적으로 다룬 것이다.
그의 발언을 뒷받침하듯 행사 구성도 ‘AI를 어떻게 일로 만들 것인가’에 초점을 맞췄다. 다쏘시스템 측은 3일 동안 355개의 브레이크아웃 세션을 운영하고, 이 가운데 20개 이상을 AI 워크플로에 할애한다고 밝혔다.
또 자사 컴퓨터지원설계(CAD) 솔루션 ‘솔리드웍스(SOLIDWORKS)’의 신규 기능 공개와 함께, AI 기능을 솔리드웍스와 ‘3D익스피리언스(3DEXPERIENCE)’ 전반에 걸쳐 본격적으로 제시하겠다는 계획도 공유했다. 이때 3D익스피리언스는 다쏘시스템 가상 환경 방법론 버추얼 트윈(Virtual Twin)을 근간으로 한 핵심 기술 플랫폼이다.
실제로 사측은 이번 행사를 통해 AI를 ‘단일 기능’에서, 자사 제품군 전반의 공통 기술 분모로 끌어올리겠다고 공표했다. 자사 AI 포트폴리오를 보조형 AI(Assistive AI), 예측형(Predictive AI), 생성형 AI로 확장하겠다는 콘셉트다. 이를 통해 제품 개발 과정에서 생산성·품질·협업을 강화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제품과 플랫폼 전략은 ‘지식의 재사용(Knowledge Re-use)’을 중심으로 구성됐다. 모건 짐머만(Morgan ZIMMERMAN) 3D익스피리언스 CEO는 개막날 발표 세션에서 “다쏘시스템은 제조 현장에 흩어진 데이터를 단순히 모으는 수준을 넘어, 사람의 노하우까지 디지털로 ‘가상화(virtualize)’해 반복 활용하는 구조를 채택했다”고 역설했다.
이 과정의 접점으로 제시된 것이 가상 동반자(Virtual Companions)다. 이 접근법은 복잡한 업무 흐름 속에서 사용자가 다음 행동을 결정하도록 돕는 인터페이스로 설계됐다. 구체적으로 아우라(AURA)·레오(LEO)·마리(MARIE)로 각각의 기능을 구분해 활용 가능한 전략을 택했다. 지난해 동일 행사에서 최초로 공개된 아우라는 ‘가능성 탐색(Explore the Possibilities)’를 담당해왔다.
아우라는 지난해 ‘버추얼 컴패니언’의 첫 얼굴로 제시된 뒤 1년 동안 다쏘시스템 최신 비전의 초석을 다졌다. 핵심은 CAD 기능을 대신 돌리는 자동화보다, 설계·검증·협업 과정에서 흩어진 맥락(Context)을 모아 사용자가 ‘지금 무엇을 결정해야 하는가’를 빠르게 파악하도록 돕는 것이다.
쉽게 말해 요구사항, 변경 이력, 관련 문서, 설계 의도 등 정보를 한 화면에서 통합해 보여준다. 또 다음 단계의 선택지를 제안하는 방식으로 가능성 탐색의 출발점을 제공했다.
이어 올해 3DXW에서 공개된 레오와 마리는 각각 ‘현실 구현(Make it Real)’, ‘과학 기반 학습(Learn from Science)’를 구현한다.
올해 추가된 레오·마리는 그 출발점을 ‘실제 실행’으로 연결하는 부분에 초점을 맞춰 설계됐다. 레오는 아이디어가 현실의 물리·제조 제약을 통과하도록 돕는 엔지니어링 동반자다. 설계 대안을 놓고 강도·중량·공차 등 조건을 함께 점검하고, 시뮬레이션과 제조성 관점에서 어떤 선택이 더 합리적인지 판단 근거를 정리하는 역할로 정의된다.
마리는 소재·화학·규제 같은 과학 기반의 질문 해소에 무게를 뒀다. 예컨대 ▲어떤 소재가 요구 성능을 만족하는지 ▲공정 조건이 바뀌면 물성이 어떻게 달라질 수 있는지 ▲규제·지속가능성(Sustainability) 요구를 충족하려면 어떤 변수부터 확인해야 하는지 등을 다룬다. 과학적 근거 중심으로 안내하는 캐릭터로 포지셔닝된 것이다.
결국 세 가지 동반자 모임은 ▲아이디어를 넓히는 단계 ‘아우라’ ▲현실에서 성립시키는 단계‘레오’ ▲과학적 타당성을 확보하는 마리로 역할이 다양화됐다. 이는 복잡한 제품 개발 과정에서 사용자의 의사결정을 단계별로 지원하겠다는 사측의 전략으로 해석된다.
지앙 파올로 바씨(Gian Paolo BASSI) 3D익스피리언스 웍스(3DEXPERIENCE Works) 수석부사장은 이날 연설에서 성과 지표 자체가 바뀌고 있다고 진단했다.
바씨 부사장은 “성공을 ‘출시까지 걸리는 시간’이 아니라, ‘가치에 도달하는 시간(Time to Value)’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오늘날 경쟁력은 결국 혁신의 속도(Velocity of Innovation)에서 판가름난다는 뜻이다. 그러면서 그는 3D유니버스가 산업 지식을 담아 확장하는 장치고, 가상 동반자를 통해 그 비전이 구현된다고 설명했다.
현장에서는 이 메시지를 고객 사례로 구체화한 무대가 소개됐다. 이탈리아 소재 가구 브랜드 몰테니 그룹(Molteni Group)이 그 주인공이다. 안드레아 로에로(Andrea Roero) 몰테니 그룹 최고정보·혁신책임자(CIIO)는 “제품 완성도(Product Excellence)를 넘어 의미 있는 라이프스타일 경험과 장기 서비스 가치로 전환하는 것이 다쏘시스템과의 파트너십 핵심”이라고 밝혔다.
그는 복잡성이 커진 글로벌 브랜드 운영에서 품질을 유지하며 혁신 속도를 높이기 위해 ‘제품 혁신 스레드(Product Innovation Thread)’를 핵심 개념으로 제시했다. 건축가, 제조·세일즈 엔지니어, 디자이너를 하나의 디지털 협업 환경으로 연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측은 이러한 파트너십을 통해 공동 설계(Co-design) 경험, 실시간 제조 체계, 디지털제품여권(DPP) 등을 포함한 수명주기(Lifecycle) 지원을 이어가겠다고 공표했다. 연이어 내구성·지속가능성·순환경제(Circular Economy)까지 강화하겠다는 방향 또한 제시했다.
다쏘시스템은 이번 행사를 통해 산업용 AI의 새로운 경쟁 구도를 명확히 했다. ‘AI 모델 성능’에서 ‘지식을 축적하고 재사용하는 플랫폼’으로 옮겨놓겠다는 메시지다. AI가 설계 속도를 높여도, 그 결과를 현장에서 반복 가능한 품질로 바꾸는 것은 데이터의 연결성·추적성이라는 것. 그리고 결국 AI는 작업자의 판단이 함께 돌아가는 시스템이라는 점을 강조하는 모습이다.
이 가운데 신뢰성(Trustable)·보안(Secure)·주권(Sovereign) 등 확보를 기본 전제로 해야 한다는 점도 분명히 했다.
헬로티 최재규 기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