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술로 혁신 ‘ON’, 생생한 변화를 목격하다 [TECH온앤오프]
기술은 세상을 바꿉니다. 하지만 진짜 변화는 숫자가 아니라 사람과 현장 안에서 일어납니다. [TECH온앤오프]는 기술이 산업 현장에 적용되기 ‘이전’과 ‘이후’를 입체적으로 조명하는 유즈 케이스 기반 스토리텔링 시리즈입니다. 기술 도입 전의 고민과 한계, 도입 과정 그리고 변화 이후의 놀라운 성과까지, 생생한 현장의 이야기를 담아냅니다. 기술이 어떻게 경험을 바꾸고 비즈니스를 성장시키는지를 보여주는 것. 이러한 가치를 TECH온앤오프에 담아봤습니다.
[세 줄 요약]
· 로봇이 스스로 예술 작품을 창조하며 전통 예술의 경계를 파괴 중
· 로봇 화가 ‘아이-다(Ai-Da)’와 ‘폴(Paul)’, 상호작용 설치 작품 ‘미믹(Mimic)’ 주목
· “인간과 로봇 협력이 예술의 새로운 지평 열 것”...창의성·기술 완벽한 조화 기대돼
‘본궤도’ 오른 기술과 예술의 만남...인간 영역으로 진입한 ‘로봇 예술 감성’
예술은 오랜 시간 인간 고유의 감정과 영감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성역으로 여겨졌다. 붓 터치 하나부터 조각칼의 미세한 흔적까지 모두 인간 내면의 창조적 손길이 만들어내는 결과물이었다. 그러나 사진기가 초상화의 영역을 뒤흔들었듯, 기술은 예술의 본질에 도전하고 있다.
기술적 알고리즘(Algorithm)의 논리와 로보틱스 기술의 정밀한 움직임이 융합돼 이를 현실화하는 중이다. 이는 인간의 직관적 영감과 만나면서 전례 없는 혁신을 일으키고 있다. 이를 반영하듯 카메라 센서로 대상을 인식하고, 인공지능(AI) 알고리즘으로 화풍을 학습하는 로봇이 등장했다. 이들은 자신만의 창의적 기술 역량으로 작품을 창작하며 예술의 경계를 허물고 있다.
OFF: 7만여 년 역사 인간 예술...창작의 한계에 봉착했다?
예술이 인간의 고유한 영역이었음은 수만 년의 역사가 증명한다. 약 7만 년 전 남아프리카 블롬보스 동굴에서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기하학적 문양의 돌 조각이 인류 최초의 예술 유물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이렇게 인간의 예술은 오래 전부터 창작과 표현에 대한 끊임없는 열망을 담아왔다.
그러나 수만 년간 이어져 온 인간 중심의 창작 방식은 독특한 개성과 감성을 만들어냈지만, 동시에 벗어날 수 없는 관습과 한계에 갇히게 됐다. 이는 예술이 더 이상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거나 혁신적인 방식으로 발전하는 데 걸림돌이 되기 시작했음을 의미한다.
인류 역사 속에서 예술은 오직 인간의 감각과 능력에 의해 정의됐다. 이러한 창작 방식은 독특한 개성과 심오한 철학을 담아냈지만, 동시에 벗어날 수 없는 물리적·경험적 한계를 드러냈다.
화가의 섬세한 손끝, 조각가의 정교한 망치질은 위대한 작품을 탄생시켰지만, 동시에 극도의 반복 작업과 육체적 피로를 야기했다. 르네상스 시대의 화가들이 대형 프레스코화를 완성하기 위해 수년에서 수십 년을 매달려야 했던 것처럼, 인간의 예술 생산량은 시간과 체력에 의해 제한됐다.
또한 전통적인 미술 작품은 작품 자체가 가진 물리적 한계로 인해 관람객과 직접적인 상호작용이 불가능했고, 주로 일방적인 감상만 가능했다. 관람객은 작품을 바라보는 정적인 행위를 통해 예술을 소비했고, 예술가와 관람객 사이의 상호작용에는 명확한 한계가 존재했다. 이처럼 예술은 예술가의 영감과 기술에 전적으로 의존했고, 관람객은 수동적인 입장에서 작품을 받아들여야 했다.
ON: 창작 영역으로 영향력 확장한 로봇, 창조의 新 아티스트로
첨단 로봇 기술은 이러한 예술의 한계를 극복하는 새로운 가능성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이러한 로봇은 작품을 모방하거나 생산하는 보조 역할에 머물지 않고, 독자적인 창작 활동을 펼치는 주체로 진화했다. 이들은 예술 창작의 주체로 당당히 자리매김하고 있다.
로봇 아티스트 ‘아이-다(Ai-Da)’는 예술의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는 대표적 사례다. 이 로봇은 실제 인간 모습을 한 휴머노이드 로봇(Humanoid Robot)이다. 눈에 장착된 카메라와 AI 알고리즘을 통해 대상을 분석한 후, 스스로의 판단에 따라 로봇 팔(Robot Arm)로 직접 붓을 움직여 작품을 완성한다.

단순히 정해진 그림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창작 과정을 거치며 독창적인 화풍을 만들어낸다. 아이-다의 작품은 이미 국제적인 전시회와 경매에서 인정받으며 로봇의 창작 능력을 공고히 하고 있다.
또 다른 로봇 화가 ‘폴(Paul)’은 아이-다와는 다른 방식으로 창작 활동을 펼친다. 영국의 예술가 패트릭 트레셋(Patrick Tresset)이 개발한 폴은 인간의 창작 행위를 연구하는 예술 프로젝트의 일환이다.
폴은 사람의 얼굴을 스캔하고, 이를 분석해 자신만의 스타일로 초상화를 그린다. 특히 폴은 의도적으로 인간의 서툰 손놀림과 불완전한 선을 모방해 '인간적인 실수'를 작품에 담아낸다. 즉, 폴은 인간 화가가 가진 고유한 붓 터치를 모방하는 등 섬세한 작업을 수행하며, 인간의 창작 기술을 정밀하게 재현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와 함께 관람객의 경험 또한 로봇 기술을 통해 혁신되고 있다. 미국 소재 디자인 스튜디오 ‘디자인 아이/오(Design I/O)’는 자신들의 설치 작품 ‘미믹(Mimic)’ 창작 과정에서 협동 로봇(Collaborative Robot 이하 코봇)을 활용했다. 이 코봇은 덴마크 코봇 솔루션 업체 ‘유니버설로봇(UR)’의 제품으로, 관람객과의 안전한 상호작용을 작품의 핵심으로 삼았다.
미믹은 관람객과 직접적인 교감이 필요한 예술적 경험을 구현했다. 이를 위해 사람과 안전하게 같은 공간에서 작업하도록 설계된 로봇을 활용한 것이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이 설치 작품은 로봇 팔과 카메라 센서가 관람객의 움직임과 속도에 따라 반응하며 상호작용한다.

예를 들어, 관람객이 천천히 다가오면 로봇이 같이 움직이고, 갑자기 빠르게 접근하면 놀라서 움츠러들거나 뒤로 피한다. 이 작품의 핵심은 관람객의 행동에 따라 로봇의 ‘성격’과 ‘행동’이 변화한다는 점이다. 이는 감상을 목적으로 한 예술 작품에서, 로봇과 일종의 교감을 나누는 특별한 경험을 제공하는 하나의 사례로 주목받았다.
“관건은 기술적 낭만과 현실 간 간극 해소”
이처럼 로봇 기술이 예술 창작의 새로운 지평을 열고 있지만, 아직 완벽하지는 않다는 평가다. 기술적 낭만과 현실 사이에는 명확한 간극이 존재한다. 가장 큰 한계는 ‘진정한 창의성’에 대한 의문이다. 로봇 아티스트는 방대한 데이터를 학습하고 알고리즘에 따라 작품을 만들지만, 인간처럼 자발적인 영감이나 내면의 감정을 작품에 불어넣는다고 볼 수는 없다.
또한 로봇이 만들어내는 극도의 정밀함은 때로는 인간의 손에서 느껴지는 투박함이나 불완전함이 주는 매력을 결여하고 있다. 관람객의 경험을 혁신하는 몰입형 미디어 아트 역시 기술적 스펙터클은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한 명의 예술가가 혼을 불어넣은 작품이 주는 깊고 개인적인 감동을 전달하는 데는 아직 부족하다는 한계도 지적된다. 이러한 한계는 결국 기술이 예술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창작 여정을 돕는 동반자로서의 역할을 더욱 명확하게 만든다.

인간·로봇, ‘창작 원팀’으로...비전은 지성의 경계를 허무는 협업
미래에는 로봇이 인간 창작 과정의 주체적인 동반자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AI가 방대한 데이터를 학습해 인간의 상상력을 초월하는 색채 조합과 구도를 제안하고, 로봇이 인간의 손으로 불가능한 미세한 정밀도로 작품을 만드는 시대가 열릴 것으로 보인다.
인간의 창의성, 감성, 윤리적 판단력에 로봇의 정밀함과 무한한 표현력이 결합된다면, 지금까지 상상하지 못한 새로운 예술 형식이 탄생하지 않을까. 가상현실(VR) 공간에서 로봇이 창조한 빛의 조각을 인간이 실시간으로 조율하는 방식이 그 예가 될 것이다.
로봇은 더 이상 예술가를 대체하는 존재가 아니라, 창작의 한계를 확장하고 인류의 문화적 지평을 넓히는 진정한 협력자로 자리매김할 것이다. 기술과 예술의 유기적인 결합 속에서 인류의 미래는 무한한 가능성을 그려낼 것이다.
헬로티 최재규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