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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금융, 정의로운 재생에너지 확산을 외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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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트에너지 윤태환 대표 인터뷰 기획

1. 금융, 정의로운 재생에너지 확산을 외치다

2. 재생에너지에 좌우가 웬 말? RE100 달성하려면...

 

지난달 전국 어업인과 수산업계가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의 '풍력발전보급촉진특별법' 상정 추진에 대해 반발하고 나섰다. 어민들은 입장문을 통해 "현재 논의 중인 법안에는 풍황계측기 난립, 조업지 상실 등에 대한 대책이 반영되지 않았다"며, "국회가 법안 추진을 강행한다면 총궐기대회 개최 등 강력 투쟁에 나설 것"이라고 강력히 경고했다.

 

태양광 발전소가 들어서면서 일자리를 잃은 염전 노동자, 풍력 발전기 건설로 오랫동안 일해온 조업지가 훼손될 위기에 처한 어민. 재생에너지 발전소가 부지가 넓고 햇빛, 바람 등 조건이 좋은 농어촌 지역에 지어지면서 오랫동안 지켜온 삶을 잃어버리게 된 사람들이 나타났다.

 

아무리 훌륭한 목적이라도 그것이 당장 내 삶을 위협한다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공공 시설이 자신의 지역에 들어서는 것을 반대하는 'Not In My BackYard', 님비(NIMBY) 현상을 단순 지역 이기주의로 치부하기에는, 잃어버린 것들이 너무 크다.

 

반대의 말이 있다. Please In My Front Yard, 즉 핌피(PIMFY) 현상. 수익성이 있는 사업을 자신의 지역에 유치하겠다는 지역 이기주의를 꼬집는 말이지만, 재생에너지 사업에 적용된다면 재생에너지 확산을 가속화하고 전 인류의 숙제인 탄소중립을 앞당길 수도 있다.

 

재생에너지 님비 현상을 핌피 현상으로 바꿀 수 있다고 믿는 기업이 있다. 인터뷰하는 동안 재생에너지에 너무 진심이어서 언뜻 대국민 교육 센터 같기도 했지만, 확실한 금융 서비스 전문 회사, 루트에너지다.

 

루트에너지는 재생에너지 발전 사업에 지역 주민들이 직접 돈을 투자하고 수익을 얻을 수 있도록 돕는 크라우드 펀딩 사업을 하고 있다. 원래 풍력 기술을 연구 개발하던 엔지니어였던 윤태환 대표는 덴마크 유학 후 한국으로 돌아와 뜻밖에 금융 서비스 회사인 루트에너지를 시작했다.

 

"태양광이나 풍력 에너지는 규모의 경제가 이뤄질수록 가격이 저렴해져요. 지하 자원이 필요한 석탄이나 LNG, 천연가스와는 다르게, 바람과 햇빛만 있으면 발전(發電)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전국의 발전소에서 얼마나 많이 에너지를 생산하느냐, 즉 시장의 크기에 따라 가격이 결정돼요. 시장과 기술은 깊게 연결되어 있어요. 일단 시장이 크면 개발한 제품을 판매할 수 있는 기회가 많죠. 그래서 시장을 먼저 키우는 것이 기술 개발 과정에서 중요해요.

 

재생에너지 확산에 있어 기술의 문제는 앞으로 빠르게 해결될 수 있다고 봤어요. 충분히 좋은 기업과 전문가들이 노력해주고 있으니까요.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악화가 되는 영역이 있었어요. 바로 지역 수용성 문제. 시장을 키우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인데 누구도 해결하지 못하고 있었죠."

 

 

풍력 발전기의 경우, 한 번 세워지면 20년, 리파워링(Repowering, 발전기 교체)을 거치면 100년까지도 운영될 수 있다. 발전기는 민가에서 먼 장소에서부터 세워지지만, 발전기 수가 늘어날수록 주민들의 활동 영역에 점점 가까워질 수밖에 없다. 사업 규모가 커질수록, 민원은 늘어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더는 미룰 수 없는 문제라고 생각했어요. 재생에너지의 허들을 낮추고, 시장 생태계를 더 건전하게 만들 수 있는 혁신적인 비즈니스 모델이 있지 않을까 고민했죠."

 

지역 주민이 투자자로 참여하는 주민 참여형 발전 사업. 어떻게 진행될까.

 

"풍력 단지가 만들어지려면 크게 개발, 시공, 운영, 세 단계를 거쳐야 해요. 루트에너지의 사업은 세 단계에 모두 관여돼 있어요.

 

개발 단계에서 가장 일이 많아요. 사업의 성패를 가르는 중요한 단계죠. 인허가, 설계, 민원(주민 수용성), 환경 영향 평가 등이 모두 이 단계에서 이뤄져요. 이때 주민들에게 앞으로 어떻게 이익을 공유할 건지, 어떻게 지역 상생을 도모할 수 있는지, 어떻게 소통을 해 나갈 것인지 설명하고 설득해요.

 

시공 단계는 기간이 가장 짧아요. 발전기 건설 방식에 따라 2년에서 4년 정도 걸려요. 펀딩은 허가가 끝난 후 시공 단계에서 진행돼요. 법적인 절차가 다 끝나고 리스크가 최소화됐을 때죠. 투자는 주민들이 많이 참여할 수 있도록 한 번이 아니라 여러 차례로 나뉘어 진행돼요.

 

공사가 끝나면, 운영 단계로 들어가요. 리스크가 뚝 떨어지고 안정적인 단계예요. 이때부터 발전 수익을 투자자들에게 배당하게 돼요. 발전소 운영 상황 등 필요한 정보를 계속해서 공유하고요.

 

투명한 과정을 통해 제대로 된 정보를 제공하고, 수익을 공유하면 주민들의 신뢰가 쌓여 님비 현상이 핌피 현상으로 바뀌어요. 실제로 지금 루트에너지가 사업을 하고 있는 태백에 가면, 주민들 중에 자기 소유의 선산에 발전소를 지을 수 없겠느냐고 먼저 문의해 오시는 분들도 있어요."

 

 

Q. 처음 주민들을 만나 설득하는 과정이 쉽지 않을 것 같아요. 생각만 해도 등에 식은땀이...

 

"주민들 입장에서 생각해볼까요? 갑자기 외부인들이 와서 사업을 할 거니까 사인해 달라고 종이를 들이밀어요. 정보도 제한적이고 의사결정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도 제한적이에요. 당연히 주민들은 반감이 생기죠.

 

주민 수용성이라는 건 크게 세 가지 정의(正義)를 지켜야 해요. 절차적인 정의, 분배의 정의, 환경적 정의. 재생에너지와 관련된 사회적 갈등이 계속해서 발생하는 근본적인 원인과 해답은 모두 이 세 가지에 달려 있어요. 셋 중에 하나라도 못 하면 갈등이 생겨요. 이 세 가지를 주민들에게 완벽히 이해시키고 주민들이 모든 절차에 다 의사결정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해요."

 

Q. 세 가지 정의에 대해 자세히 말씀해주세요.

 

"첫 번째, 절차적인 정의는 주민들의 알 권리, 의사결정의 권리, 배제당하지 않을 권리에 대한 거예요. 사업이 앞으로 어떻게 진행될 것이며 환경적으로 어떤 영향을 주게 되는지, 이런 것들을 주민들이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알려드려야 해요.

 

가령, 적어도 분기에 한 번씩은 주민들과 소통하면서 주기적으로 사업의 진행 상황을 업데이트하고, 중요한 의사 결정에 주민들을 모두 동참시키자는 거예요. 주민들 쏙 빼고 다 결정해놓고, 나중에 가서 싸인만 받지 말고요.

 

배분의 정의는 공정하고 협상성 있는 이익 배분 구조에 대한 거예요. 발전소로부터 가까이 살고 있는 분들이 공사하는 과정에서 소음이나 진동 등 이슈로 가장 많이 피해를 봐요. 어업 종사자 분들은 어업이 이뤄지는 장소에 발전기가 들어오면 물고기를 못 잡기 때문에 직접적인 피해가 생기고요. 이에 적절한 법적 피해 보상은 당연한 거예요.

 

발전소가 들어오는 곳에서 활동 영역이 가까울수록 더 이익이 크게 배분돼야 하고 배분 과정에 먼저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야 해요. 이런 식으로 형평성 있고 공정한 이익 배분 구조를 짜서 주민들의 자발적 합의를 이끌어내야 해요.

 

마지막으로 환경적 정의. 발전소가 들어오면 환경적으로 악영향을 줄 때도 있지만, 오히려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부분들도 있어요. 예컨대, 풍력 발전기가 바닷속에 들어가면 처음 공사할 때는 어쩔 수 없이 해양 생태계가 파괴돼요. 철근이 박히니까요.

 

그런데 5년이 지나고 10년이 지나면 구조물이 마치 산호초처럼 바뀌어요. 조개들이 올라가고 물고기들의 서식지가 되거든요. 해양 생태계가 오히려 번성하게 된다는 데이터들도 있어요.

 

육상 발전도 마찬가지예요. 발전소가 산 능선에 지어질 때는 불가피하게 산을 조금 깎고 나무를 베어야 하거든요. 그런데 공사를 다 하고 나면, 다시 그 자리에 나무를 심게 돼 있어요. 다시 산림을 복구하는 거죠. 잠깐 동안은 피해도 있지만 장기적으로 볼 때 긍정적인 부분이 많아요. 사실 나무를 자른 후 나무 통도 돈이 되거든요. 그걸 베서 남이 가져가는 게 아니라 주민들에게 줘요.

 

부정적인 부분, 긍정적인 부분이 모두 있는데 한쪽만 부각하면 오해를 불러일으켜요. 양쪽을 모두 주민들과 공유해야 해요. 상생하는 구조를 만들어서 사업을 시작하는 일도 굉장히 중요하고요."

 

Q. 가장 지켜지지 않는 정의는 뭘까요?

 

"가장 큰 갈등은 배분과 절차에서 나와요. 주민들이 무식하다고 생각하고, 무시하는 태도로 접근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막걸리나 사주고 사인만 받으면 된다'는 마인드요.

 

지금도 주민 참여라고 이름 붙인 사업들이 여럿 있는데, 편법적인 경우가 많아요. 실제로 주민들에게 도움이 되는 게 아무 것도 없어요. 많은 경우, 대출금을 주민들에게 밀어준 다음 투자에 참여하도록 하는데, 주민들은 아무 책임도 지지 않아도 되니까 당연히 그냥 '돈 된다'고 생각하고 참여해요. 그러면 거기서 끝이에요. 설득과 이해의 과정이 전혀 없어요. 마치 아파트 개발처럼 '재생에너지는 돈이 된다'라는 너무 간단한 공식이 생겨버리죠. 누구도 재생에너지에 대해 긍정적인 경험을 하지 못하고, 변화가 없는 상태로 사업이 진행되는 거예요."

 

Q. 일단 투자해서 돈을 벌기만 하면 되는 거 아닌가요? 설득과 이해의 과정이나 긍정적인 경험이 왜 중요하죠?

 

"재생에너지 산업이 앞으로 나아가려면 재생에너지에 대한 시민들의 문해력이 가장 중요해요. 저희는 이걸 에너지 시민성이라고 불러요. 설득과 이해의 과정이 없으면 에너지에 대한 문해력이 높아지지 않고 에너지 시민성이 자라나지 않아요.

 

제가 유학했던 덴마크에선 사람들이 에너지의 주인이 다름 아닌 자신들이라고 생각해요. 그들에게 에너지 사용은 그냥 돈을 주고 전기를 사는 개념이 아니예요. 내가 만든 에너지가 나한테 이익을 주고 사회에 이익을 준다고 여겨요.

 

한번 시골에 계시는 부모님이 풍력 발전소에 투자를 한다고 상상해보세요. 맨 처음 투자에 대한 정보를 들은 아버지께서 어머니와 자식들에게 얘기를 꺼내요. 당연히 우려와 반대가 있겠죠. 아버지는 주변에서 얘기하는 재생에너지의 리스크들에 대해서 공부하면서 가족들과 토론을 계속할 거예요. 돈이 움직이는 과정에는 많은 갈등이 있고, 그 갈등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어마어마한 교육 효과가 있어요.

 

저희의 지향하는 바는 재생에너지에 대한 문해력이 높은 시민들을 육성하는 것이에요. 에너지 문해력이 높은 시민들이 많이 육성될수록 지역 수용성이 올라가게 돼요. 지역 수용성이 올라가면 자연히 재생에너지 확산은 가속화되고, 탄소중립으로 가는 길은 빨라지겠죠."

 

 

루트에너지가 추진하고 있는 태백 가덕산 2단계 풍력사업 주민참여펀드에는 약 27억 원의 투자금이 모였다. 수백 명의 사람들이 앞서 얘기한 지난한 토론과 설득의 과정을 거쳐 투자에 참여했다.

 

한편 독일에서는 전국의 8000만 인구 중 10%에 해당하는 800만 명이 재생에너지에 투자, 이익을 얻고 있다.

 

"특정 집단의 사람 수가 일단 10만 명을 넘어가면, 그때부터는 사회적 규범이 돼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텀블러를 들고 카페에 가면 좀 유별난 사람이라는 식의 인식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텀블러를 가지고 다니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나도 갖고 다녀야 되는 거 아닌가' 생각하게 됐죠. 사회적 규범이 된 거예요. 여기서 사용자가 더 많아지면 그때는 문화가 돼요. 카페에 텀블러를 갖고 오면 일정 금액을 환불해주는 등 룰이 생기고요. 문화라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텀블러 사용이 보편화된 과정이 재생에너지 분야에도 적용될 수 있어요. 재생에너지도 처음엔 낯설고 다가가기 어렵지만, 주민들이 참여할 수 있는 커뮤니티 펀딩을 통해 재생에너지에 대한 이해가 늘어나고, 재생에너지에 대해 좋은 경험을 하는 시민들이 많아질 거예요."

 

헬로티 이동재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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