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이 배터리, 태양광, 풍력, 전기차 등 그린테크 공공조달에서 ‘메이드 인 유럽’ 비중을 의무화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미국 ESG 전문 매체 이에스지뉴스(ESG News)에 따르면,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는 역내 정부들이 공공조달을 통해 구매하는 그린 기술 제품에 대해 최소한의 유럽산 콘텐츠를 요구하는 법적 제안을 준비 중이다. 이 제안의 목표는 배터리, 태양광·풍력 부품, 전기차, 케이블, 충전 시스템 등에 대한 현지 공급망을 강화하면서 중국산 수입 의존도를 낮추고, 에너지 비용 상승과 미국의 신규 관세 조치 속에서 유럽 산업 기반을 보호하는 데 있다.
로이터(Reuters)에 따르면 이 제안의 초안에는 유럽의 기후 전환이 탈산업화를 촉발하는 요인이 아니라 경쟁력을 높이는 동력이 돼야 한다는 전략적 필요성이 명시돼 있다. 초안은 유럽연합이 산업 기반과 장기 경쟁력을 확보·강화하고, 기후 전환이 산업 번영의 엔진이 되도록 전략적으로 행동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초안에 따르면 공공조달을 통해 구매되는 배터리 시스템은 법안 발효 후 12개월이 지나면 유럽연합 역내에서 조립돼야 한다. 1단계에서는 조립 공정과 함께 배터리 관리 시스템을 포함한 일부 선택 부품에 유럽산 요건이 적용된다. 법안 발효 2년 뒤에는 셀을 포함한 보다 핵심적인 부품까지 ‘유럽산’ 조건이 확대되는 방식으로 기준이 강화될 예정이며, 이 같은 단계적 접근은 산업 생산능력과 글로벌 배터리 가치사슬의 민감성을 고려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집행위원회의 조달 규칙은 전기차와 관련 충전 인프라에도 적용된다. 각국 정부가 공공조달로 전기차 충전망을 구축할 때는 도입 초기부터 유럽산 부품과 유럽 노동을 우선하는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 브뤼셀은 특히 풍력 터빈 분야에서 유럽의 경쟁우위를 지키고, 태양광 산업에서 중국 제조업이 글로벌 가치 대부분을 차지하게 된 과거 사례가 반복되는 것을 피하려 한다고 전했다.
초안은 또 유럽의 글로벌 산업 부가가치 비중이 2000년 20.8%에서 2020년 14.3%로 떨어졌다고 경고했다. 이 같은 하락은 높은 에너지 가격, 중국 기업과의 경쟁 심화, 미국의 관세 정책 변화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유럽의 산업 경쟁력이 약화됐다는 우려를 키웠다고 분석했다. 집행위원회는 녹색 산업 전략과 공공조달 규칙을 유럽의 지정학·경제 전략 도구의 일부로 다뤄야 한다고 주장했다.
공공조달 규칙과 함께 새로운 투자 심사 기준도 도입된다. 초안에 따르면, 지정된 전략 부문에서 1억유로(1억1,600만달러) 이상 규모의 외국인 직접투자는 유럽산 부품과 유럽연합 노동에 연계된 현지화 요건을 충족하지 못할 경우 승인되지 않는다. 이 조치는 산업 정책을 국가안보, 공급망 회복력과 연결하는 것으로, 팬데믹 이후 서방 정책 프레임워크 전반에서 중요성이 커진 두 가지 이슈를 반영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제안에는 역내에서 생산된 저탄소 산업재에 대해 공공계약에서 일정 비율의 최소 물량을 배정하는 내용도 담겼다. 이 조항들은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nflation Reduction Act)의 일부 요소를 연상시키지만, 유럽은 직접 세액공제보다는 공공조달과 투자 심사에 더 크게 의존하는 방식이라고 이 매체는 전했다.
다만 이 계획을 두고 회원국 간 입장은 엇갈리고 있다. 프랑스 정부는 기후·에너지 전환이 가속화되는 상황에서 유럽이 산업 역량을 방어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이 전략을 강하게 지지하고 있다. 파리는 배터리, 재생에너지, 전기차 mobility 전반에서 전략적 자율성을 유지하기 위해 현지 콘텐츠 규정이 필수적이라고 보고 있다.
반면 스웨덴과 체코는 ‘자국 우선 구매’ 규칙이 입찰 가격을 높이고 역내 전체 경쟁력을 떨어뜨릴 위험이 있다고 경고했다. 이들 정부는 가능한 한 글로벌 효율성과 자유무역을 추구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유럽연합이 지나치게 엄격한 조달 기준을 도입할 경우 보복성 무역 조치를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됐다.
기업 경영진과 기관투자가들에게 이번 제안은 기후 산업 정책이 가속화되는 흐름 속에서, 국가의 공공조달이 탈탄소 기술 시장을 형성하는 수단으로 부상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신호로 해석되고 있다. 규정 준수, 원산지 추적, 공공 입찰 참가 자격 여부는 유럽에서 활동하는 제조업체와 개발업체들의 상업적 차별화 요인이 될 수 있다.
배터리 제조사, 전기차 공급업체, 재생에너지 부품 기업들은 정책 방향성에 대한 가시성과 수요의 일정한 확보 측면에서 수혜를 볼 가능성이 있다. 동시에 각국 정부는 보다 엄격한 조달 규칙이 재정에 미치는 영향과 물가 상승 압력 등을 평가해야 한다. 투자 심사 조항은 특히 유럽 클린에너지 시장 진출을 노리는 아시아 투자자들의 거래 흐름에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고 이 매체는 전했다.
집행위원회의 이번 움직임은 에너지 전환을 위한 생산능력을 확보하기 위해 각국 정부가 경쟁하는 가운데, 글로벌 청정기술 공급망 재편의 한 축을 형성하고 있다. 배터리와 태양광 패널 분야에서 중국이 여전히 우위를 점하고, 미국이 관세와 재정 인센티브에 무게를 두는 상황에서 유럽은 독자적인 산업 전략을 모색하는 중이다.
향후 회원국들과 유럽의회 간 협상이 최종 범위를 결정할 예정이지만, 이에스지뉴스는 기후정책과 산업전략이 점점 더 긴밀히 결합되고 공공조달이 지정학적 경쟁의 핵심 수단으로 부상하고 있는 방향성만큼은 분명하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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