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너
닫기
배너

추론하는 AI, ‘파라미터 전쟁'에서 '반사신경의 시대'로

URL복사

GPT-3의 파라미터 수는 1750억 개. 한때 이 수치는 AI의 위용을 상징했다. 하지만 2025년 현재, 그런 숫자 놀이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AI 기술의 중심축이 바뀌고 있다. ‘얼마나 학습했는가’에서 ‘얼마나 빠르게 반응하고 정확하게 추론하는가’로 말이다. OpenAI의 o3, 구글의 Gemini 1.5, 마이크로소프트의 Phi-3, 메타의 LLaMA3까지, 최근 공개된 모든 신형 모델은 공통적으로 ‘추론 최적화’를 전면에 내세운다. 한마디로 말해, 지금의 AI는 더 이상 천천히 생각하는 철학자가 아니라, 실시간 대응하는 전술가여야 한다. 



AI 성능 기준의 변화

 

이른바 GPT로 대표되는 LLM은 통계적으로 가장 가능성 높은 답을 과거 학습 데이터를 기반으로 예측하는 구조다. 이른바 ‘확률적 언어 생성기’다. 하지만 여기엔 한계가 있었다. 새로운 상황에 대한 실시간 판단, 문맥에 따른 논리적 전개, 시각 정보와 복합 입력의 해석 등에서는 유연하지 못했다. 그런 의미에서 AI 성능은 오랫동안 ‘얼마나 많은 데이터를 학습했는가’, ‘모델의 크기가 얼마나 큰가’로 측정됐다. GPT-4는 GPT-3 대비 수배의 연산량을 요구했고, 이를 학습하기 위해선 수만 개의 GPU가 필요했다.

 

하지만 대기업조차 이를 감당하기 어려웠다. 상용 서비스에 탑재하기엔 응답이 느렸고, 운영비용은 상상을 초월했다. 이러한 거대화의 한계 속에서 떠오른 대안이 바로 추론 중심 설계다. 대표적 사례가 GPT-4 Turbo다. OpenAI는 이 모델을 더 빠르고 더 저렴하게 동작하는 GPT-4로 설계했다. 비결은 복잡한 학습을 최소화하고, 실시간 추론 성능을 극대화하는 구조에 있다. MS의 Phi-3 역시 7B 이하의 경량 모델이면서도 실제 성능은 GPT-3.5에 육박한다. 즉, 지금은 연산력보다 반사신경이 더 큰 차이를 만든다.

 

최근 공개된 OpenAI의 o3는 대표적인 멀티모달 추론 모델이다. 이는 오픈AI가 지난해 9월 처음 선보인 추론형 AI ‘o1’의 뒤를 잇는 후속 모델로, 이전보다 정교한 논리 처리와 멀티모달 추론이 가능해졌다는 평가다. 이미지를 인식한 후, 그 안의 텍스트를 읽고, 수학 계산을 수행하고, 그 결과를 바탕으로 자연어 응답을 생성한다. 여기에는 OCR, 연산, 언어생성이 동시에 작동하며, 모두 실시간으로 이뤄진다. 특히 o3는 그림이나 도표 등 다양한 시각 정보를 분석하고 해석하는 능력을 갖춘 모델로, 단순한 응답 생성을 넘어 복잡한 문제를 논리적으로 추론하는 데 초점이 맞춰진 것이 특징이다.

 

한 예로, o3는 수학 문제 이미지가 입력되면 텍스트 OCR, 수식 인식, 연산 과정 추론, 최종 해설 생성까지 여러 단계를 거친 복합 추론이 이뤄진다. 정답만을 꺼내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정보를 이해하고 판단하는 과정 전체를 수행한다는 점에서 본질적으로 다르다.

 

함께 공개된 경량 모델인 ‘o4 미니’는 가격, 응답 속도, 성능 간 균형을 지향한 제품이다. 오픈AI는 이 모델이 경량화한 만큼 특정 환경에서 높은 응답성과 실용성을 제공할 수 있다고 소개했다. 이러한 모델들은 더 이상 잘 외우는 기계가 아니다, 스스로 정보를 처리하고 상호관계를 구성하며, 사고의 흐름을 만들어가는 인지 시스템에 가까워지고 있다.

 

구글에서도 실시간 정보 요약과 문서 분석에 최적화된 새로운 AI 모델 ‘제미나이 2.5 플래시’를 최근 공개했다. 지난 4월, 구글 I/O 2025에서 발표된 이 모델은 추론 수준을 동적으로 조절하는 기능을 특징으로 한다. 프롬프트의 복잡도에 따라 AI가 자동으로 연산 자원을 조정하거나, 사용자가 직접 성능과 비용 간 균형을 설정하도록 설계됐다.

 

실제 사용자는 동일한 질문이라도 응답 속도, 정확도, 메모리 점유율 등을 상황에 맞게 선택할 수 있다. 이 기능은 특히 뉴스 요약, 문서 자동 분류, 회의록 정리 등 즉시성과 응답 품질이 동시에 요구되는 작업에 적합하다는 평가다. 제미나이 2.5 플래시는 현재 구글의 AI 개발 플랫폼인 버텍스 AI와 제미나이 앱에서 미리보기 버전으로 제공 중이다.

 

추론 속도와 유연성, 왜 중요해졌는가

 

AI 기술이 실생활에 들어올수록 지연시간은 핵심이 됐다. 한 예로, B2B SaaS나 AI 챗봇, 음성 비서, 스마트 팩토리 시스템 등은 모두 즉각적인 반응을 요구한다. 실제로 상담 챗봇이 2초 이상 지체되면 사용자의 이탈률이 30% 이상 증가한다는 조사도 있다.

 

대다수의 기업 고객은 응답속도를 1순위 요구사항으로 삼는다. 이러한 수요에 맞춰 국내외 기업은 실시간 추론을 위한 모델 압축, 캐싱 구조, 멀티스레딩 최적화, GPU 메모리 관리 자동화 등의 기술을 경쟁적으로 도입하고 있다. 즉, AI의 경쟁력은 이제 지식만큼이나 응답시간에서도 발견된다.

 

AI 기술 평가 프레임워크에도 변화가 감지된다. 미국 스탠퍼드대학교가 발간하는 ‘AI Index Report 2024’에서는 처음으로 ‘추론 효율성 중심의 메트릭’이 주요 지표로 반영됐다. 한 예로, Inference Latency(모델이 응답을 생성하는 데 걸리는 시간), Context Switching Speed(질문 맥락이 바뀌었을 때 반응 전환 속도), Multi-hop Reasoning Accuracy(2단계 이상 논리적 사고가 필요한 문제 해결률), Energy Efficiency per Token(토큰당 소비 전력 대비 효율)이 있다.

 

MLCommons의 MLPerf Inference 벤치마크 또한 추론 시간과 전력소모량을 기준으로 GPU나 AI 칩 성능을 측정하며, 이는 기업의 하드웨어 선택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처럼 ‘얼마나 빠르고 똑똑하게 판단하는가’는 이제 AI의 핵심 역량으로 자리 잡았다.

 

이제 AI는 과거처럼 ‘얼마나 많이 배웠는가’로만 평가받지 않는다. 오히려 ‘어떤 상황에서 얼마나 빠르게, 유연하게, 논리적으로 반응할 수 있는가’가 진짜 실력이다. 기술 전략도 바뀌고 있다. LLM 통합형 모델 대신, 추론·시각·검색·코드 등 기능별 경량 모델을 조합하는 구조가 떠오른다.

 

AI를 모델이 아닌 운영체제처럼 다루는 흐름이다. 결국 AI는 스펙 싸움에서 뇌신경 싸움으로 진화 중이다. 그리고 이 전환은 GPT-5 시대가 오기 전, 이미 시작됐다. 우리는 지금 반사신경을 키우는 AI의 시대를 통과하고 있다.

 

헬로티 서재창 기자 |









배너









주요파트너/추천기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