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정 램리서치 디렉터가 사회 초년생 여성 엔지니어들에게 전하는 메시지
1990년대 말, 나는 남성이 주를 이루던(지금도 여성 비율은 10-25%에 불과하다) 반도체 산업에서 여성 공정 엔지니어로서의 경력을 시작했다. 당시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기란 쉽지 않았다. 관리자와 고객들은 나처럼 일반적이지 않던 여성 엔지니어와 일하는 것을 꺼려했다.
하지만 나는 남성 엔지니어와 동일한 기회를 달라고 요청했다. 그리고 스스로를 '여성 엔지니어'가 아닌 '엔지니어'로 생각하려 했다. 운 좋게도 함께 일하는 동료가 많았고, 상사들 역시 나에게 계속 배우고 발전할 수 있는 기회를 많이 주었다.
엔지니어링 분야에서 여성이기 때문에 생긴 희망은 남성 동료들이 업무적으로 내게 뭘 기대해야 하는지 몰랐다는 데 있다. 여성의 능력에 대한 오해는 많았다. 그래서 내가 일을 잘하면 바로 성과로 인정받았다.
2000년대 초 반도체 업계에는 큰 변곡점이 있었다. 반도체 웨이퍼가 기존 8인치에서 현재 산업 표준이 된 12인치로 바뀐 것이다. 나는 새로운 12인치 웨이퍼를 연구하는 프로젝트에 지원했고 성장할 수 있는 기회라 여겼다. 지원자는 많았다. 면접에서 프로젝트 관리자는 이 프로젝트는 장기인데 내가 결혼이라도 하면 퇴사하는 거 아니냐며 우려를 내비쳤다.
하지만 나는 이런 시각에 실망하지 않았다. 결혼은 사적인 일이며, 업무에 지장을 주지 않을 것이라 여겼기 때문에 이 프로젝트에 지원했으며 이런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내 역할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었다. 고난과 역경 속에서 내 자신을 입증하기 위해 더 열심히 일했다. 그리고 회사와 고객들과의 약속을 지키는 식각 공정 엔지니어로서 신뢰할 수 있는 역할을 맡게 되었다.
스마트폰 시장이 성장하면서 반도체 수요는 증가했고, 나의 경력에도 변화가 찾아왔다. 나는 여성 최초로 램리서치코리아의 어카운트 매니저가 되었다. 어카운트 매니저는 반도체 장비에 대한 기술 지식을 토대로 고객 요구사항과 사업 로드맵을 파악하고 지원하는 일을 한다.
이번에도 역시 '최초'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회사에서 ‘최초의 여성 어카운트 매니저’였기 때문이다. 최초의 길을 걷는다는 것은 상당한 부담이었지만 나는 이 분야에서 롤모델이 되기로 결심했다. 어카운트 매니저로서 일의 성과를 인정을 받았고 이어 더 큰 경력으로 성장할 기회가 찾아왔다.
바로 미국 본사의 제품 마케팅 팀에서 일할 기회였다. 늘 그렇듯이, 새로운 기회와 도전이 주는 흥분은 내가 가진 편견과 걱정을 털어내는 용기가 되었다. 그래서 나는 캘리포니아에 있는 램리서치 본사에서 새로운 일을 해보기로 했다.
미국에서 10년 동안 제품 마케팅과 사업개발 업무를 보았다. 그때를 생각하면 공정과 다양성의 가치가 떠오른다. 미국 이력서에는 인종, 성별, 연령을 기재하는 란이 없다. 가족에 대한 책임과 의무에 따른 출퇴근과 출장 문제는 사적인 일 일뿐 성별에 따른 불이익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램리서치는 포용과 다양성의 문화를 계속 확장해가고 있으며 이는 한국에서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우리가 계속 성장하며 자신의 능력을 입증할 때 기회는 더 많이 찾아올 것이다. 이제 막 사회생활을 시작한 모든 여성 엔지니어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 지금 당장 계획이나 분명한 목표가 없다고 해서 걱정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자신의 성별, 연령, 사회적 지위로 스스로를 제한하지 마라. 자신의 발전에 도움이 될 멘토를 한 번 찾아보아라. 돌이켜 생각해보면 빠르게 진화하는 반도체 업계에 발을 내디딘 것은 행운이었다. 하지만 새로운 기회를 잡은 것은 바로 자기 자신이었다.
새로운 일에 도전한다는 게 말처럼 쉽진 않지만 배우고 성장할 기회는 늘 있다. 지금 있는 곳에서 최선을 다한다면 조금씩 방향을 잡아가게 될 것이다. 새로운 기회를 두려워하지 마라. 결국 원하는 위치에 도달하게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