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조 현장에 생성형 AI(Generative AI)를 도입하고도 변화가 체감되지 않는 대목이 있다. 질문에 대한 답은 매끄럽게 돌아오지만, ▲설계 변경 ▲검증 ▲제조 검토 등으로 이어지는 실제 프로젝트를 최종 종결(Sign-off) 짓는 힘이 없기 때문이다.
다쏘시스템이 올해 ‘3D익스피리언스 월드 2026(3DEXPERIENCE World 2026 이하 3DXW 2026)’에서 정조준한 영역 중 하나도 여기다. 실제로 설계, 검증, 수정·승인, 생산 연계 주기를 맡는 ‘제품 개발 기술(Engineering)’ 조직은 실질적인 실행력 있는 AI를 갈망한다는 것. 쉽게 말해, 문장을 수려하게 다듬는 인공지능(AI) 작가가 아니라, 요구 조건에서 실행까지의 프로세스를 끝까지 매듭짓는 AI 해결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현장이 마주한 병목은 '결정'과 '실행'의 단절에서 발생한다. 거대언어모델(LLM)이 텍스트의 확률적 조합에 능숙할지라도, 물리적 제약 조건을 통과해야 하는 엔지니어링의 연쇄 공정을 가동하기에는 한계가 명확하기 때문이다. 요구 사항 정리부터 모델 수정, 시뮬레이션 준비를 거쳐 의사결정과 제조 가능성 재확인으로 이어지는 이 과정을 줄여야만 생산성의 속도가 붙는다.
다쏘시스템이 ‘가상 동반자(Virtual Companions)’를 전면에 내세운 이유는 이 흐름을 업무 시스템으로 고착하려는 시도다. 결국 AI 도입의 성패는 AI 모델의 성능이 아니라, 업무가 완결되는 구조를 얼마나 표준화하느냐에 달렸다.
"전지전능한 AI는 환상" 근거로 완성하는 엔지니어링 新 운영 체계는?
이때 사측이 내세우는 가상 동반자는 AI 모델이 설계 화면 안에서 사용자와 대화하는 방식을 채택한 최신 기술 비전이다. 지난해 3DXW에서 ‘아우라(AURA)’를 필두로 처음 등장한 이후, 올해 ‘레오(LEO)’·‘마리(MARIE)’가 추가되면서 다쏘시스템의 AI 역량 확장에 기여했다.
아우라가 가상 동반자의 시발점이었다면, 레오·마리는 이를 설계 변경, 검증, 제조 연계까지 확장하려는 시도다.
다쏘시스템은 이 세 동반자를 단순한 ‘대화형 기능’이 아니라, 설계·검증·제조 연계를 완성하는 업무 흐름 내 핵심 기법으로 제시했다. 다만 그 확장의 전제는 ‘검증 가능한 설계’다. 수칫 제인(Suchit Jain) 다쏘시스템 전략 및 비즈니스 개발 부사장은 이미지 한 장으로 3차원(3D) 모델을 추출하는 식의 파편적 기대감에 선을 그었다. 시각적 유희와 별개로, 엔지니어링의 종착지는 제조 가능한 디테일과 물리적 제약을 통과한 ‘검증된 설계’라는 의견이다.
따라서 부사장은 가상 동반자를 두고 “단순히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도구라기 보다, 반복 업무 시간을 줄이는 구조적 변화”라고 소개했다. 기존 생성형 AI 기반 챗봇이 질문에 답하는 수준이었다면, 가상 동반자는 그 질문을 실제 작업으로 바꿔 다음 단계로 이행하도록 하는 업무 파트너라는 설명.
이 과정에서 요구 조건 정리, 형상 수정, 검증 준비, 결과 해석 등을 제조 관점에서 다시 검토하는 모든 과정을 단일 흐름으로 통합하는 기술 방법론이다.
다쏘시스템은 이 목표를 위해 ‘단독 슈퍼 AI’가 모든 과정을 수행하는 방식 대신, 역할을 나눈 분업형 에이전트 구조를 채택했다.
아우라는 프로젝트 맥락과 요구 조건을 정리하고, 조직 내부 자산과 표준·규격을 엮어 설계 의사결정의 출발점을 만든다. 이어 레오는 형상 편집, 시뮬레이션, 제조로 이어지는 작업 순서를 제안하며 실제 변경 작업을 실행 단위로 정리한다. 마리는 소재·공정 선택 과정에서 강도·피로 같은 물성뿐 아니라, 규제·지속가능성(Sustainability) 조건까지 검토해 현실 제약을 걸러낸다.


▲ 레오는 자연어(Natural Language) 프롬프트로 지시하면 사용자 의도에 따라 기능을 구현한다. 3DXW 2026 부대 전시 행사 '플레이그라운드(Playground)'에서는 이 같은 데모가 참관객에게 주목받았다. (촬영 : 휴스턴(미국)=헬로티 최재규 기자)
제인 부사장은 여기서 핵심으로, 작업 종류에 따라 필요한 정보와 계산 비용을 분리해 운영 효율을 높이는 메커니즘을 강조했다. 쉬운 검색과 복잡한 검증을 똑같은 계산 비용으로 처리하면, 조직은 감당하기 힘든 컴퓨팅 비용과 불확실성이라는 벽에 부딪힌다는 관점에서다.
그는 이 분업 체계를 ‘역량(Competency)’과 ‘업무 단위(Skill)’로 더 세분화해 이해를 도왔다. AI를 통째로 들이는 게 아니라, 업무를 구성하는 세부 스킬을 필요할 때마다 불러내 일을 끝내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사용자가 ‘무게는 줄이고 강도는 유지하라’라고 명령어(Prompt)로 지시하면, 먼저 요구 조건을 항목화한 후 목표치를 숫자로 바꾸는 스킬이 작동한다.
이어 모양을 바꾸거나 보강 구조를 제안하는 스킬이 뒤따르고, 검증 스킬이 시뮬레이션 시나리오를 짜서 결과를 ‘합격 혹은 불합격’이라는 판단 가능한 형태로 내놓는다. 수칫 제인 부사장은 이 과정이 주는 진짜 가치는 ‘단계별 기록’에 있다고 봤다.
구체적으로, 어떤 근거로 해당 프로세스가 다음 단계로 넘어갔는지 데이터가 쌓이면 비슷한 작업을 할 때 이전 검증 결과를 재활용할 수 있다는 말이다.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가 품질·책임·비용을 결정하는 구조가 된다는 제인 부사장의 강조점이다.
그에 따르면, 이러한 '업무 단위 호출(Call Skills)'이 업무의 권한 설계까지 바꾼다. 조직은 AI에게 모든 권한을 쥐여주는 대신, 특정 작업만 수행하도록 범위를 정교하게 제한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형상 변경은 AI가 빠르게 처리하더라도, 도면을 최종 확정하거나 설계를 승인하는 단계는 반드시 사용자가 직접 검증하도록 '안전장치'를 걸어두는 식이다.
반대로 업무의 병목이 심한 작업은 AI가 자동으로 다음 단계를 이어가게 설정해 속도를 높일 수도 있다.
“엔지니어링 AI의 승부처는 ‘결론’이 아니라 ‘전제’입니다.
근거가 남아야 검증이 재현되고, 의사결정이 조직의 자산으로 남기 때문이에요.”
이런 흐름 속에서 ‘업무 단위 목록(Skills Catalog)’의 역할이 커진다. 조직이 자주 하는 작업을 업무 단위로 정의해두면, 새로 온 직원은 지침서를 외우는 대신 상황에 맞는 기능들을 필요한 순서대로 불러오는 법만 배우면 된다. 일 잘하는 법(Best Practice)이 실제 작동하는 시스템으로 남는 것이다.
제인 부사장은 “이 같은 데이터가 쌓일수록 업무는 개인의 실력에 기댄 방식에서 조직의 자산으로 진화한다”며 “결과적으로 프로젝트 품질이 들쭉날쭉해지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역설했다.
답변만 하는 AI는 한계? 현장 움직이는 ‘실행형 파트너’의 조건
엔지니어링 AI가 LLM만으로는 성립하기 어렵다는 논거도 여기서 출발한다. 엔지니어링은 동일한 시뮬레이션이라도 재료 모델과 경계조건에 따라 결론은 뒤바뀌고, 조직은 그 전제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
따라서 가상 동반자가 결과값만 던져주는 방식으로는 현장에 안착할 수 없다. 어떤 기준을 적용했는지, 그 기준이 사내 규칙을 지켰는지까지 정리한 ‘판단 근거’를 함께 보고해야 한다. 여기에는 참고 설계 문서, 규격 표준, 기존 설계와의 차이 등이 포함돼야 한다. AI가 내린 판단이 검증돼야 엔지니어도 그 결과를 믿고 다음 작업을 진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AI가 현장에 최적화된 답변을 내놓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수칫 제인 부사장은 이에 대한 해법에 대해 “조직만의 맥락(Context)을 불어넣는 것이다”라고 정의했다. 이 개념에는 일반적으로 떠도는 지식을 이식하는 것이 아니다. 내부 규정, 고객사 요구 사항, 안전 기준 등 각 조직이 구축한 ‘핵심 노하우’를 AI가 학습하게 하는 것이다.
그는 이를 구현하는 기술로 ‘검색증강생성(RAG)’을 언급했다. 수칫 제인은 “여기서 중요한 것은 ‘지금부터 이 규칙을 무조건 지켜서 작업해’라고 AI에게 족쇄를 채워주는 것과 같다”며 “설계할 때 꼭 지켜야 할 규격, 제조 공정 제약, 절대 건드리면 안 되는 금지 조건 등을 AI에게 정확히 입력해줄 때, 가상 동반자는 현장의 속도를 높이는 진짜 해결사로 거듭난다”고 강조했다.
“핵심은 결국 물리(physics)인데요.
RAG로 맥락을 부여하면 조직의 지식·노하우를 활용하면서도,
그 노하우를 다른 누구에게도 넘기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또 다른 핵심은 ‘도구 자동 실행(Tool Call)’이다. AI가 제안만 하고 끝내면, 엔지니어가 직접 메뉴를 클릭하고 파일을 옮기는 지루한 단순 반복 작업으로 되돌아가기 때문이다.
부사장은 ‘모델 컨텍스트 프로토콜(MCP)’ 접근법을 내세우며 여러 도구를 연결해 실행하는 방식을 제시했다. 기존에는 AI가 설계·해석·관리 도구를 각각 따로 제어해야 했다면, 이 표준 기술을 통해 다양한 소프트웨어를 하나의 언어로 통합한다. 엔지니어링 관점에서는 설계 변경이 실제 컴퓨터지원설계(CAD) 모델에 반영되고, 시뮬레이션 설정부터 결과 보고서 작성까지 AI가 알아서 해결한다.
이러한 도구 자동 실행이 정착되면 ‘재현성’이 확보된다. 즉, 누가 작업하더라도 동일한 조건으로 결과를 다시 검증할 수 있게 되고, 이는 곧 품질 관리 고도화로 이어진다. AI의 결과물을 최종 승인하는 것은 결과적으로 사람의 몫이다.
이에 따라 AI가 어떻게 검증했는지 증거를 남기는 구조가 반드시 필요하다. 이 과정이 뒷받침돼야 AI 도입은 실질적인 업무 운영 체계로 자리 잡을 수 있다는 것이 다쏘시스템의 접근법이다.
공장 전체를 시뮬레이션하라...AI의 새로운 시야 부르는 ‘파트너십 스케일업’
3DXW 2026 무대에서 파스칼 달로즈(Pascal Daloz) 다쏘시스템 최고경영책임자(CEO)와 젠슨 황(Jensen Huang) 엔비디아 CEO가 협업 확대를 공식화한 장면은, 가상 동반자를 산업 AI 아키텍처로 격상시키는 신호탄이었다.
양사는 다쏘시스템의 가상 환경 방법론 ‘버추얼 트윈(Virtual Twins)’과 엔비디아의 컴퓨팅 기법 ‘가속 컴퓨팅(Accelerated Computing)’을 결합해 산업용 월드 모델(Industry World Models)로 확장하는 로드맵을 제시했다.
다쏘시스템이 산업 지식과 검증 구조를 제공하고, 엔비디아가 그래픽처리장치(GPU) 중심의 인프라로 속도와 규모를 견인하는 결합이다. 가상 동반자가 물리 기반 검증을 내장하려면 막대한 연산이 필요하고, 이는 곧 비용으로 직결된다. 이번 협업은 운영 가능한 실제 기술 체계의 등장을 의미한다.
"AI가 처리하는 일이 많고 복잡해질수록 더 큰 컴퓨팅 자원이 필요합니다.
엔비디아 GPU를 쓰는 것도 결국 비용으로 이어져요.
즉, 기능 확장은 사용량과 비용 증가를 함께 부르는 구조인 것입니다."
수칫 제인 부사장은 특히 월드 모델의 개념이 도입되면 AI가 바라보는 시야도 넓어진다고 점쳤다. 설계 단계의 작은 변경이 실제 생산 공정과 설비 운영에 어떤 파장을 미치는지, 거꾸로 현장의 데이터가 설계에 어떻게 반영되는지까지 버추얼 트윈 환경에서 한꺼번에 연결된다는 주장이다. 최적화 대상이 공장 전체로 확장되는 만큼, AI가 다루는 정보량과 처리해야 할 연산 규모도 늘어난다. 다쏘시스템이 이번 파트너십을 통해 데이터 처리 능력을 확보하려는 이유다.
이러한 기술적 변화는 곧 수익모델의 기준을 바꾼다. 수칫 제인은 기본 기능은 구독료로 해결하더라도, 고도의 복잡한 작업이나 AI가 업무를 완수하는 자동화(Automation) 단계는 실제 사용량에 맞춰 비용이 정해질 것임을 시사했다. 즉, 엔지니어링 AI의 비용은 챗봇처럼 ‘대화한 횟수’로 계산되는 것이 아니라, ‘업무 처리 수준’과 ‘검증의 복잡성’에 따라 결정될 전망이다.
“로봇 개발 경쟁력을 결정짓는 것은 ‘데이터 환류’”
수칫 제인은 로봇 분야에서 가상 동반자의 역할을 명확히 규정했다. AI가 로봇의 두뇌 전체를 대신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 그는 “현장의 데이터를 설계와 검증 과정으로 되돌리는 연결고리 역할을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면서 “로봇이 운용 중 내보내는 신호를 설계자가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변환해, 재료 선택이나 구조 변경에 즉각 반영할 수 있도록 돕는 통로 역할”이라고 부연했다.
“로봇이 장애물을 감지하는 비전 같은 소프트웨어를 우리가 직접 만들지는 않습니다.
다만 그 신호가 기계 설계나 특정 설계 요소에 영향을 준다면,
우리는 그 신호를 받아 설계 쪽으로 되돌려 반영하고 필요한 조치를 할 수 있어요.
로봇 하드웨어를 개발하고, 그 과정에서 피드백이 필요하다면
그 연결 지점(connection points)을 제공할 것입니다.”
로봇 작업 구역(Robot Cell)과 로봇 자동화 라인에서는 설계 단계에서 예측하지 못한 변수가 발생한다. 진동·열·간섭 등인데, 이렇게 다양한 변수는 현장에서 뒤늦게 드러난다. 문제는 이런 신호가 개별 이슈로 파편화되면 다음 프로젝트에서 같은 실수가 반복된다는 점이다.


▲ 다쏘시스템 CAD 솔루션 '솔리드웍스(SOLIDWORKS)'를 활용하면, 다양한 로봇 설계 검증 과정을 거칠 수 있다. 카드·동전 정밀 조작(Manupulation) 검증 과정(좌)과 시스템 감각 작용을 검증하기 위한 '센싱(Sensing)' 과정(우). (출처 : 다쏘시스템, 촬영·편집 : 헬로티 최재규 기자)
제인 부사장에 따르면, 가상 동반자는 현장의 장애 기록을 단순히 방치하지 않는다. 이를 버추얼 트윈 환경 안에서 재현 가능한 조건으로 변환해, 즉각 설계 변경과 검증 순환 과정으로 연결한다. 결국 로봇 분야에서 AI의 가치는 시행착오를 줄이고 개선 과정을 앞당기는 연결 구조에서 나온다.
또한 로봇은 기구, 전장, 제어 시스템이 복합적으로 맞물린 유기체다. 특정 구동부(Actuator)의 반복적인 토크 피크나 부위별 열 누적은 단순한 고장 징후가 아니다. 이는 구조·재료·배치 등 초기 설계의 변수를 다시 검토하라는 신호일 수 있다. 가상 동반자는 이러한 신호를 설계 변수로 역추적(Traceback)해 해석하고, 동일한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기준을 개선한다.
이처럼 로봇 개발의 핵심 경쟁력은 현장에서 수집된 신호를 얼마나 빠르게 설계·검증 단계로 환류(Feedback)하고, 그 과정을 다음 프로젝트의 기준으로 정립하느냐에 달려 있다.
결과적으로 가상 동반자는 로봇을 대신 제어하는 대신, 로봇 개발과 운영 사이의 끊어진 흐름을 잇는 도구에 가깝다. 반복적인 문제를 비용이 아닌 학습 자산으로 전환하는 구조. 그것이 로봇 현장에서 다쏘시스템의 AI 기술이 실질적인 효용을 얻는 방법이다.
헬로티 최재규 기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