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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기획 / 탁상행정이 만든 논란, 디지털교과서는 어디로 가야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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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 디지털교과서(AIDT) 도입을 둘러싼 논란이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정부는 지난 6월 AIDT의 법적 지위를 기존 ‘교과서’에서 ‘교육자료’로 격하하는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을 국회 법안소위를 통해 통과시켰다. 이는 AIDT가 의무 도입 대상에서 제외되고 각 학교와 교사의 자율적 선택에 맡겨진다는 의미다. 이 같은 결정은 출판 및 에듀테크 업계를 중심으로 거센 반발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실제 지난 18일에는 국회에서 야당 의원들과 교과서업계 간 간담회가 개최됐고 오는 21일에는 출판업계 및 에듀테크 종사자들이 대규모 국회 앞 집회를 예고하며 긴장감이 높아지고 있다. 디지털 전환이라는 시대적 흐름 속에서 시작된 AIDT 도입이 오히려 혼란의 진앙이 되고 있는 지금, 우리는 어느 방향으로 디지털교과서의 페이지를 열어야 할까?

 

디지털교과서, 어떻게 시작됐나

 

AI 디지털교과서(AIDT)는 문재인 정부 시절 처음 구체화됐다. 2021년 발표된 ‘디지털 뉴딜’과 2022년 교육부의 ‘디지털 교육혁신 추진방안’에서 AIDT는 미래교육을 위한 핵심 인프라로 자리매김했다. 당시 정부는 2025년부터 국어·영어·수학 교과를 시작으로 디지털교과서를 도입하고 이후 전 과목으로 확대하겠다는 중장기 청사진을 제시했다. 특히 AIDT는 학생 개개인의 학습 데이터를 기반으로 맞춤형 콘텐츠와 실시간 피드백을 제공하는 개인화 교육의 핵심 수단으로 부상했다. 하지만 디지털교과서를 공격적으로 도입하는 것이 맞는가에 대한 사회적 숙의는 부족했던 시점이었기 때문에 구체적인 정책 실행은 이뤄지지 않았다.

 

그리고 실질적인 실행은 불과 몇 개월 후, 윤석열 정부에서 본격화됐다. 2022년 7월 윤 정부 출범 직후 교육부는 ‘초·중등 교육 디지털 전환 종합 추진계획’을 발표하고 AIDT를 2025년부터 본격 도입하겠다는 계획을 공식화했다. 이를 위해 AIDT는 ‘한국판 뉴딜 2.0’의 핵심 교육과제로 지정됐고 교실 내 무선망 구축, 스마트기기 보급, 콘텐츠 검정체계 마련 등 구체적인 실행 로드맵도 함께 제시됐다. 2023년부터는 전국 13개 시도교육청을 중심으로 선도학교를 지정해 시범 운영이 시작됐으며 웹·앱 기반의 디지털교과서 플랫폼이 현장에 배포되고 교사 연수도 병행되었다.

 

드라이브는 공격적이었다. 윤석열 정부는 디지털교과서 도입을 ‘미래 인재 양성을 위한 국가 혁신 과제’로 규정하고 막대한 예산을 투입했다. 2023년 기준 AIDT 개발 및 운영 예산만 5,000억 원 이상이었으며, 스마트기기 보급과 무선망 구축 등 인프라 사업까지 포함하면 전체 투자 규모는 약 1조에서 2조 원에 달한다는 추정도 나온다.

 

정부 믿고 수천억 투입한 기업들, 정책 변화에 ‘멘붕’

 

정부의 정책 방향에 따라 출판업계와 에듀테크 업계는 공격적인 투자를 단행했다. 주요 출판사들은 AIDT 개발을 위해 많게는 수십억 원에 달하는 개발비를 투입했으며 AI 분석 기술, 콘텐츠 큐레이션 알고리즘 등과 관련한 솔루션을 자체 개발하거나 외주를 통해 확보해왔다. 인력풀 역시 공격적으로 확대했다. ‘개발자’가 핵심인력인 만큼 업계에서는 너도나도 급격한 인력수급에 열을 올렸다. 이에 따른 신규 조직 개편 등도 업체마다 활발히 진행됐다. 일부 스타트업은 AIDT 사업 수주를 발판으로 투자유치에 나서기도 했다. 그러나 교육자료로의 지위 격하가 현실화되면서 관련 업계는 비상이 걸렸다.

 

 

디지털교과서 도입에 대한 치열한 ‘찬 vs 반’ 논쟁

 

그럼 디지털교과서 도입에 대한 찬성과 반대의 입장은 무엇이고 그에 대한 논리를 정리해보자. 먼저, 반대 입장이다. AIDT 도입에 대한 회의론은 정책 수혜자이자 사용자라 할 수 있는 학교 현장에서도 터져 나오고 있다. 무엇보다도 디지털교과서를 활용할 수 있는 인프라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학교가 상당수다.

 

2024년 상반기 기준 AIDT 시스템 접속률은 전국 평균 10%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며 일부 농어촌 지역은 1%도 채 되지 않는다. 교사들의 반응도 엇갈린다. 일부 시범학교 교사들은 “AI 기반 분석으로 학습 피드백이 정교해진다”며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지만, 다수의 교사들은 여전히 “시스템이 불안정하고 실제 수업에서 사용할 여건이 되지 않는다”고 토로한다. 몇몇 학부모들 역시 과도한 디지털기기 사용과 개인정보 노출, 교사와 학생 간 상호작용 축소 등을 우려하며 반대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출판업계에서도 무작정 찬성의 목소리만 내진 않는다. 취재를 위해 만난 한 출판업계 관계자 A씨는 “기업의 손해는 발생하겠지만 당장 여건이 안되는데 도입을 강제로 밀어붙이는 건 사회 전체적으로 더 큰 혼란을 줄 수도 있겠다는 걱정이 든다”는 의견을 조심스럽게 밝혔다.

 

이와 반대로 비판과 우려 속에서도 디지털교과서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공교육의 미래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개인화된 학습 지원과 데이터 기반 피드백이 필수적이고 AIDT는 그에 가장 근접한 도구라는 평가다. 특히 코로나19 팬데믹을 통해 드러난 디지털 수업 역량의 격차는 교육의 형평성 문제를 부각시켰고 디지털교과서는 이러한 문제를 장기적으로 해소할 수 있는 기반으로 작용할 수 있다. 또 일선에서 AIDT를 접해본 일부 교사와 학생들 사이에서는 “수업이 더 흥미로워졌고, 자기주도 학습에 도움이 됐다”는 긍정적 피드백도 적지 않다. 단순한 기술의 문제를 넘어 ‘어떻게 잘 설계하고 활용하느냐’에 따라 성패가 갈릴 수 있다는 점에서 방향성을 완전히 접는 것은 오히려 미래를 포기하는 셈이라는 주장도 충분히 설득력이 있다.

 

탁상행정의 폐해가 만든 결과

 

앞서 살펴봣듯이 디지털교과서의 도입과 관련한 여러 의견은 모두 충분한 이유가 있고 설득력을 갖추고 있다. 누가 틀렸고 맞다는 문제를 넘어선 주제다. 결국 이번 사태의 핵심은 디지털교과서 자체의 문제라기보다 충분한 현장 검증과 숙의 없이 정책을 강행한 정부의 ‘탁상행정’에서 기인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단기간 내 전국 보급을 목표로 예산을 쏟아붓는 실제 사용자였던 교사와 학생, 학부모, 그리고 교육 인프라의 실태에 대한 깊은 이해는 부족했다. AIDT 개발과 검정은 이미 완료되었는데 그 법적 지위는 정치적 논의 속에 방치됐고, 결국 사용 여부는 각 학교의 재량에 맡겨진 아이러니한 상황이 펼쳐지고 있다. 현장의 목소리를 배제한 채 결과물에만 매몰되어 만들어진 정책으로 인해, 결국 애꿎은 학생과 학부모, 교사, 기업들만 피해를 보고 있다.

 

숙의와 합의, 지금부터가 진짜 출발점

 

앞으로 AIDT를 둘러싼 입법 논의는 7월 말 국회 본회의를 기점으로 다시 한번 분수령을 맞게 된다. 정책의 신뢰를 회복하려면 이제라도 속도를 늦추고 다양한 플레이어의 목소리를 수렴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정부, 국회, 교육계, 산업계, 학부모와 학생 등 모두가 머리를 맞대고 무엇을 위해 디지털교과서를 도입하려는 것인지, 그리고 어떤 방식이 최선인지 진지하게 논의해야 한다. 디지털 전환은 피할 수 없는 시대적 과제지만 그 방향은 반드시 ‘현장’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는 단순한 진리를 우리는 이번 디지털교과서 도입 논쟁을 통해 다시 한번 깨닫고 있다.

 

헬로티 김재황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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