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단 헬로티]
최근 스마트 시티라는 말이 세상을 흔들고 있다. 원래 학회가 아니라 산업계에서 나온 말이라는 설도 있고 여러 가지 정의가 난립하고 있는 상황인데, 대체로 ‘정보통신 기술을 활용해 효율적으로 운영되는 미래 도시’, 도시 전체에 깔려 있는 IoT 디바이스가 송전과 교통망의 동적인 최적화를 실현하고, 데이터 드리븐의 접근 방식이 공공시설의 배치나 토지 이용 등에 관한 다양한 의사 결정을 서포트하는, 지금까지 본 적 없는 새로운 도시의 형태라는 의미로 이용되고 있다.
도시계획가 앤소니 타운센드(Anthony Townsend)에 따르면 현재 스마트 시티 붐은 대규모 경영 컨설팅 펌인 부즈 앨런 해밀턴(Booz Allen Hamilton)이 2007년에 발표한 보고서―노후화된 인프라의 개선과 진행되고 있는 도시화에 대응하기 위해 2030년까지 전 세계적으로 41조 달러의 투자가 필요해질 것이라는 추산을 발표했다―에 그 원류를 찾을 수 있다고 한다(다음 해의 금융 위기를 겪은 민간 투자의 위축도 돕고, IT 기업의 눈은 급속하게 공공사업으로 향하게 됐다). 그러나 정보 기술을 이용해 도시의 운영을 효율화하려는 생각 자체는 특별히 새로운 것은 아니다.
1960년대 말 오퍼레이션즈 리서치(조직 운영이나 군사 작전 등 다양한 분야에서 여러 가지 의사 결정을 수학적 기법을 이용해 지원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학술 분야)의 대가로 알려진 매사추세츠 공과대학의 제이 포리스터(Jay Forrester)가 ‘어반 다이내믹스(urban dynamics, 도시동태론)’라는 제목의 서적을 발표했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에서 밀리터리 로지스틱스(병참)의 최적화, 즉 최선의 부대 배치와 물자 배분의 결정 등에 이용되어 성과를 거둔 오퍼레이션즈 리서치의 기법을 보다 복잡하고 대규모의 시스템인 도시 운영에 응용하려고 한 야심찬 시도이다.
어반 다이내믹스는 곧바로 미국 각지의 지자체의 관심을 끌어, 여러 도시에서 교통 시스템의 설계나 경찰서 등 각종 시설의 배치, 지역 설정 계획의 책정 등에 이용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기대했던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저널리스트인 죠 프레드(Joe Fred)는 1970년대에 뉴욕의 브롱스에서 최적화 계산에 기초한 소방서의 재배치가 이루어진 결과, 소화 활동이 늦어져 많은 인명을 잃게 됐다고 쓰고 있다) 80년대에 들어설 무렵에는 쇠퇴해 도시 정책에 이용되는 일도 없어졌다.
인공지능의 예가 특히 유명하지만, 정보 기술의 세계에서는 ‘붐’과 ‘쇠퇴’의 반복, 즉 일단은 한물 간 기술 분야가 시대를 넘어 부활해 다시 유행하는 현상을 종종 볼 수 있다. 21세기의 스마트 시티 붐도 어반 다이내믹스의 두 번째 붐으로 볼 수 있다.
포리스터의 시대와 비교하면 현재는 컴퓨터의 계산 능력이 비약적으로 향상됐으며, 또한 들어오는 데이터의 양과 종류도 증가했다. 그러나 기본적인 이념과 방법론에 대해 말하면, 스마트 시티와 어반 다이내믹스 사이에 그리 많은 차이는 보이지 않는다. 양쪽 모두 수학적 모델에 기초한 도시의 최적화와 효율화를 목표로 하는 비전으로, 다소 환원주의적이고 기계적인 도시상에 기인하는 것이다.
스마트 시티
1. 최적화의 한계
오랜 기간 뉴욕시의 도시디자인 국장으로 근무한 알렉스 워시번(Alex Washburn)은 존 F 케네디의 말을 인용해 ‘통치하는 것은 선택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워시번에 따르면 도시 정책에 있어 만인에게 혜택이 있는 시책 따위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경우 누군가의 요구를 들어주는 것은 다른 누군가가 불이익을 입게 된다는 것이며, 도시 운영이란 바꿔 말하면 편의가 우선되는 자(승자)와 그렇지 않은 자(패자)의 선긋기를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거리의 신호등을 보다 똑똑한(스마트) 것으로 바꿈으로써 도시 전체의 도로 교통을 효율화하는 것은 확실히 가능할 것이다―이외에 차도 보행자도 없는 상황에서 계속 적색 신호가 켜져 있는 것을 보면 그것은 당연한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워시번에 따르면 그러한 시나리오, 즉 최적화 계산을 통해 시스템 전체의 비효율이 해소되고, 모두가 차별 없이 혜택을 받는 시나리오라는 것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적다는 것이다. 전체의 효율화는 곧바로 한계에 이르게 되고, 누군가가 승자가 되면 반드시 누군가가 패자가 되는 제로섬 게임적인 측면이 얼굴을 내밀게 된다. 최적의 신호등은 자동차의 편의를 우선하는 것인가, 아니면 보행자나 자전거의 편의를 우선하는 것인가? 만인에 있어 최적해는 존재하지 않으며, 승자와 패자의 정치적인 선택이 필요하게 된다. 송전이나 발전의 최적화에도, 철도 등 공공 교통의 최적화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우선돼야 하는 것은 시민 생활인가, 지역 경제인가, 도심인가 외곽인가. 시스템 전체를 효율화할 수 있는 여지라는 것은 현실에는 적으며, 그 이상의 효율화는 누군가가 뭔가 불이익을 받는 것밖에 낳을 수 없다.
기술 개발에 종사하는 사람 측에서 보면 지나치게 비관적으로 생각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워시번의 생각에 따르면 스마트 시티가 내세우는 구석구석까지 최적화된 도시라는 것은 원래가 모순을 품은 존재라는 것이 된다. 도시는 양립하지 않는 요망을 가진 스테이크 홀더의 집합체이며, 그 기계적인 최적화에는 한계가 있다. 대부분의 경우에 도대체 무엇에 대해 최적화하는지, 누구나 납득할 수 있는 목적함수를 기술하는 것이 원래 불가능한 것이다.
2. 송도 신도시
한국의 북서쪽 황해 연안에 송도 신도시라고 불리는 면적 600ha 정도의 지구가 있다. 아마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스마트 시티일 것이다.
도시 전체에 둘러져 있는 센서에 의해 지구 전역의 날씨와 교통, 에너지 이용 상황 등의 데이터를 항상 모니터링해, 자원 이용의 효율화와 공공 서비스의 최적화 등에 활용하고 있다. 최첨단 초고속 인터넷 환경이 정비되어 있으며, 각 가정에서 고화질의 화상 회의 시스템을 통해 친구나 의사, 영어회화 교사와 이야기할 수 있다. 아파트나 사무실의 각 층에는 쓰레기를 자동 흡입하는 기계가 있으며, 버려진 쓰레기는 직접 지하의 처리 시설까지 이송한다. 환경 부하를 저감하는 장치가 곳곳에 설치되어 있으며, 계획에 따르면 동일 규모의 다른 도시에 비해 온실 효과 가스 배출량은 약 3분의 2로 억제되고 또한 폐수의 40%가 다시 이용된다고 한다.
모든 측면에서 기술에 의한 자동화가 추진되고 있으며, 예를 들면 앞에서 말한 쓰레기 처리 시설은 보통 거의 무인(지구 전체 7명 정도의 인원)으로 운영되며, 모아진 대량의 쓰레기를 끊임없이 계속 처리한다.
송도 신도시는 1986년에 구상되어 2003년에 건설이 시작됐다. ‘철도 연선이 발전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글로벌화가 추진되는 사회에서는 공항 근처가 번성한다(에어로트로폴리스)’라고 하는 개념에 기초해, 인천공항 바로 근처에 부지를 마련해 건설됐다. 정부로부터 경제특구로 지정되어 세계 각국 기업의 사무실이 들어선 21세기 한국 경제의 핵심을 담당하는 도시가 될 것이었다.
그러나 현재까지 송도는 계획한 만큼 사람도 기업도 유치를 못하고 있다. 지구 인구는 처음 예상의 20~30%에 머물고 있으며, 그것도 아이가 있는 가정이 환경 좋은 조용한 베드타운으로서 송도를 선택하는 경우가 많아 역동적인 지식산업의 중심이라는 이미지에는 걸맞지 않은 것 같다. 대부분의 기업은 서울에서 움직이지 않고 있으며, 송도가 새로운 벤처기업 설립의 핫 스폿이 됐다는 이야기도 듣지 못했다. 냉혹한 일부 언론에서는 ‘하이테크한 고스트 타운’ 등으로 부르기도 하는 모양이다.
송도는 분명히 미래적이지만, 그것은 도대체 누구를 위한 미래인가. 도시를 덮은 센서들과 각 가정에 배치된 화상 회의 시스템은 주민 생활의 질에 대해 최적화된 결과일까, 아니면 송도 계획에 참여한 기업의 상업적 이익을 우선한 결과일까. 편리하고 깨끗하며 녹음이 풍부하지만, 거기에 사는 적극적인 이유를 찾을 수 없는 도시―송도의 현상은 워시번이 말하는 최적화의 한계, 상업과 문화와 환경과 시민 생활 등 다양한 주체의 다양한 요망에 대해 빠짐없이 도시를 최적화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보여주고 있다.
시민이 만드는 미래 도시
흔히 말하는 무어의 법칙에 따라, 지난 반세기 동안 계산기의 처리 능력은 2년마다 두 배라는 경이적인 스피드로 상승을 계속해 왔다. 그러나 정보 기술의 발전은 단순한 계산 능력의 향상이라는 양적인 진보에 그치지 않는다. 포리스터의 시대, 즉 1960년대, 70년대 사람들에게 있어 정보 기술이란 심하게 말하면 ‘똑똑한 기계’를 실현하는 기술이었다. 그러나 21세기를 사는 우리들에게 있어 정보 기술이라는 것은 그 정도의 존재는 아니다.
지금 20대 정도의 젊은 사람들에게 IT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무엇인가 물어본 결과, 과연 어떠한 대답이 돌아왔을까. 슈퍼컴퓨터에 의한 대규모 시뮬레이션이나 분산 아키텍처를 사용한 고속 데이터 처리 등을 들 수 있을까. 아니 그런 대답보다 훨씬 먼저 YouTube와 Facebook 등 다양한 온라인 서비스나 iPhone 등 그들에 액세스하기 위한 컨슈머용 디바이스의 이름을 들지 않을까. IT는 이제 단순한 계산을 위한 툴이 아니라 새로운 미디어이기도 하다.
이와 같이 사회 속에서 IT의 역할이 확대되고 있는 것은 정보 기술을 도시 운영에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 근본적인 방법론의 차원에서 새로운 발상을 가능하게 한다. 어반 다이내믹스나 스마트 시티와 같은 ‘똑똑한 기계’에 의한 효율적인 도시의 통치라는 이미지에 얽매일 필요는 없다. 최적화 접근으로 도시를 만드는 것에 한계가 있다면 다른 접근도 함께 혼용해 보면 된다.
이러한 생각 하에 우리들은 Wikitopia(위키토피아)라는 새로운 미래 도시의 비전을 제창하고, 그 실현을 위해 연구 개발을 진행하고 있다. ‘모두’가 편집하는 백과사전 Wikipedia의 예를 모방해 온라인 미디어의 특징인 쌍방향성, 많은 다양한 사람들의 자유로운 참가를 허용하는 민주성을 도시를 만드는 것에 응용하려고 하는 비전이다.
디지털 세계의 논리를 현실의 도시로 가지고 온다는 점에서 스마트 시티와 다르지 않지만 IT의 다른 측면, 인터넷 문화의 발전과 함께 서서히 표면화되어 온 비교적 새로운 측면에 주목하고 있다.
1. IT에 의한 권한 이양
도시라는 것은 도대체 누구의 손에 의해 만들어지고 있는 것일까? 지자체 정부, 개발자 등의 대기업, 건축가나 도시계획가 등의 전문가 집단―여러 가지 답을 생각할 수 있지만, 어쨌든 도시를 만드는 권한이라는 것은 도시의 유저인 일반시민에게 널리 나누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특정의 조직, 특정의 사람들에게 집중적으로 할당되어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에 대해 디지털 세계에서는 Linux나 Wikipedia 등과 같은 (도시 정도는 아니지만) 복잡하고 대규모이며, 또한 신뢰성 높은 시스템을 ‘모두’의 손으로 만들어내는 다양한 구조가 기능하고 있다.
Wikipedia 기사를 보고 있는 사람은 의지만 있으면 언제든지 편집하는 쪽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시스템을 그냥 이용하는 사람과 스스로 만드는 쪽이 되는 사람 중에는 전자의 수가 압도적으로 많은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후자의 역할을 하고 싶다고 누군가가 생각했을 때, 그것을 방해하는 장애물은 극히 적다.
즉 디지털 세계에서는 치밀한 것, 상업적 가치가 높은 것, 미션 크리티컬한 것 등을 포함한 다양한 시스템을 만드는 권한이 유저 측에 위양되는 예가 많이 있다. 이 권한 위양이라는 말은 최근의 IT 움직임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하나의 키워드가 된다. 예를 들면 Twitter 등의 소셜 미디어와 YouTube와 같은 동영상 전송 서비스는 글로벌한 정보 발신의 권한을 제한된 매스미디어에서 일반 유저에게 위양했다. 이것은 신문이나 TV를 통하지 않고도 누구라도 전 세계를 향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사회를 가져왔다.
또한, Kickstarter 등의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는 사업의 자금 조달 프로세스를 민주화하고, 어떤 제품의 아이디어가 자금을 얻어 제품화에 착수할 수 있을지, 그것을 결정하는 권한을 일반 유저에게 위양했다. 또한, Airbnb는 호텔을 운영하는 권한을, Uber는 택시업을 운영하는 권한을, 역시 일반 유저에게 위양하고 있다.
이와 같은 권한 위양의 사례는 일일이 셀 수 없이 사회의 모든 측면에서 지금까지 소수가 독점해 왔던 여러 가지 특권을 ‘모두’의 쪽으로 계속 위양하고 있다. Wikitopia는 이러한 시대의 의지라고도 할 수 있는 권한 이양의 흐름을 도시 디자인에 적용하는 시도이다.
비평가인 제인 제이콥스(Jane Jacobs)는 ‘모두’가 이익을 누릴 수 있는 도시는 ‘모두’가 만들어내지 않으면 결코 실현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인종이나 성별, 연령 및 거주 지역 등의 차이를 딛고 모든 사람의 요망을 공평하게 반영할 수 있는 도시라는 것은 아마도 톱다운적인 최적화 접근(만)에서는 나올 수 없을 것이다. 도시를 만드는 권한 자체를 ‘모두’ 즉 시민 쪽으로 이양하고, 도시가 만들어져 가는 그 프로세스에 모든 사람이 깊이 참여할 수 있는 구조를 구축하는 것이 요구된다. 우리들은 기술의 힘을 빌려 이 이상에 도전하고 싶다.
2. 택티컬 어버니즘
Wikipedia와 같이 도시를 만든다는 생각은 사람에 따라서는 전혀 비현실적인 그저 꿈같은 이야기로 생각해 버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비슷한 사고에 기초한 시도가 실제로는 세계 곳곳에서 출현하고 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시 안에는 현재 60개 정도의 ‘파클릿(Parklet)’이 존재한다. 이것은 도로변 주차 공간에 만들어진 작은 공원으로, 흥미로운 점은 이것이 자치체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지역 주민과 상점 등이 협력해 만들어 유지하고 있으며, 시는 자발적인 행위에 대해 허가를 내고 있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샌프란시스코시에서 파클릿이 공적 제도로서 운용되기 시작한 것은 2009년의 일인데, 그로부터 약 10년이 지난 지금, 동일한 제도가 미국뿐만 아니라 유럽이나 호주 등 세계 각지의 도시에서 채용되고 있다. 또한, 광장의 정비와 정원·농원의 조성, 놀이기구의 설치 등 파클릿 이외에도 다양한 형태의 자발적인 도시 조성을 허용하는 제도가 출현하고 있다. 즉, 주민이 지역에 이것을 원한다, 이것이 필요하다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발안했을 때, 그것을 실현할 수 있는 구조가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시민들의 자발적인 도시 디자인은 총칭해 ‘택티컬 어버니즘(Tactical Urbanism, 전술적 도시론)’ 등으로 불리며, 도시 만들기에 있어 하나의 새로운 조류를 형성하고 있다.
또한, 2016년 에콰도르에서 개최된 HABITAT III(제3회 국제연합인간거주회의, 주로 신흥국에서 도시 개발을 다루는 거대한 국제회의)에서 논의된 내용과 최근의 플리커상·터너상 등의 수상자들의 면면을 봐도 최근의 건축이나 디자인 분야에서 시민의 자발성에 뿌리를 둔 DIY(Do-It-Yourself)적인 도시 조성이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들의 활동은 이러한 세계 각지의 새로운 논의와 실천과 궤를 같이 하면서 첨단 기술을 이용해 자발적인 도시 디자인―현재 아직 한정된 지역에서 한정된 규모의 활동에 그치고 있다―의 스케일러빌리티(확장성)를 높여 가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3. 피어 프로덕션
요하이 벤클러(Yochai Benkler)에 따르면 Wikipedia 또는 Linux에서 볼 수 있는 생산 방식, 즉 서로 얼굴도 모르는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협력해 대규모의 인공물을 생산하는 행위(피어 프로덕션(Peer Production))이 잘 기능하기 위해서는 ‘그 인공물 전체를 생산하는 행위를 여러 가지 입도의 보다 작은 생산 행위로 분해할 수 있을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Wikipedia의 편집자는 새로운 주제에 관한 기사를 하나에서부터 작성하는 등의 큰 공헌을 하는 것도, 기존의 기사에 약간의 수정을 가하는 (저명인의 잘못된 생일을 바로 잡는 등) 등의 매우 작은 공헌을 하는 것도 가능하다. Linux 등의 오픈소스 소프트웨어 개발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이에 대해 소설이나 영화를 피어 프로덕션으로 제작하는 시도가 한 때 주목을 받았는데, 눈에 띄는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쇠퇴했다. 벤클러의 생각에 따르면, 소설의 일부를 수정하는 것은 전체의 이야기나 인물 설정 등에 대한 깊은 이해와 배려가 없이는 할 수 없으며, 따라서 작은 생산 행위로 완전히는 분해할 수 없다는 것이 실패의 이유이다.
DIY적으로 도시를 디자인하는 행위도 길가에 꽃을 심는 작은 행위에서 광장의 정비나 공공시설의 건설 등과 같은 큰 행위까지 폭넓은 입도의, 더구나 각각이 어느 정도 독립된 생산 행위로 분해할 수 있다. 현실의 도시 공간을 개조하는 것이기 때문에 Wikipedia와 같은 소프트웨어의 세계에 닫힌 대상과는 여러 가지 면에서 차이가 있지만, 원리적으로 도시 만들기라는 것은 피어 프로덕션, 즉 ‘모두’의 손에 의한 생산 행위에 적합한 대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Wikitopia Project
2018년, 우리들은 연구 활동의 일환으로 ‘Wikitopia International Competition’이라는 명칭의 국제적인 디자인 공모전을 개최했다. 시민의 손에 의한 도시 만들기를 실현하는 구체적인 아이디어를 널리 국제적, 학제적으로 모집하고, 앞으로의 연구 프로젝트의 방향성을 결정하는데 일조하는 것을 목표로 한 것이다. 공모전에는 총 170점의 작품이 출품됐는데, 그 중의 60% 이상이 일본 외에서 응모한 것이었다. 이하에 들었듯이 로테크한 것이나 하이테크한 것, 소규모의 것이나 대규모의 것 등 정말로 다양한 종류의 아이디어가 나왔다(응모 작품의 자세한 내용은 공식 웹사이트에 게재되어 있으므로 꼭 참고하기 바란다).
• 파클릿과 같은 DIY적, 로테크의 도시 조성 기법을 더욱 발전시킨 아이디어
• 그래피티 등의 자발적인 거리 예술을 더욱 발전시킨 아이디어
• 스마트폰이나 스마트글래스 상에서 동작하는 증강현실(AR)을 도입한 아이디어
• 대형 디스플레이나 프로젝터 등 환경에 설치되는 디지털 기기를 사용하는 아이디어
• 3D 프린팅 등 새로운 제조 기술을 이용해 건물이나 가구를 생성하는 아이디어
• 온라인 투표나 크라우드 펀딩 등 넷을 통한 합의 형성을 도입한 아이디어
• 자동 운전차나 드론 등 차세대 로보틱스 기술을 도입한 아이디어
• 건물이나 토지의 공유 등 기존 자원을 다수가 효율적으로 공유하는 아이디어
Wikitopia는 단일 기술이나 아이디어에 의해 실현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종류의 다양한 아이디어의 집합체에 의해 점진적으로 실현되어 간다는 것이 우리들의 생각이다. 물론, 도시는 기후나 지형, 문화와 경제 등 각각 고유의 특징을 갖춘 것이며, 따라서 Wikitopia는 각 지역마다 다른 실장, 즉 다른 시책이나 기술, 아이디어의 조합에 의해 구현된다.
1. 도시를 편집하는 공학 기술
Wikitopia의 실현을 위해 우리들은 몇 가지 기술 개발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다. 이 중에서 특히 중점을 두고 있는 것이 ‘도시를 에디트(편집)하는’ 새로운 기술군의 개발이다. Wikipedia 기사나 오픈소스 소프트웨어는 따지고 말하면, 모두 전자 데이터, 즉 0과 1의 집합체로 기술되며 정보 기기를 통해 간단하게 개조할 수 있다.
이에 대해 Wikitopia가 취급하는 것은 돌이나 유리나 목재, 아스팔트나 철이나 콘크리트 등으로 구성되는 현실의 도시 공간으로, 그 형상이나 외관을 개조하는 것은 PC 상에서 텍스트 데이터를 편집하는 정도로 쉽지는 않다. 앞에서 말한 공모전에 응모한 작품 중에도 스마트글래스를 이용한 증강현실이나 대규모 3D 프린팅, 형상 변화 디스플레이 등 근미래의 ‘도시를 편집하는’ 기술이 많이 등장한다. 지역 주민이 공지를 자주적으로 (괭이와 삽 등을 사용해) 녹화하는 게릴라 가드닝 등 기존 기술만을 이용해 도시 공간을 개조하는 방법도 존재하지만, 대체로 노동집약적이며 새로운 기술의 등장 없이는 시민의 손에 의한 도시 조성은 확장할 수 있는 활동이 되지 않을 것이다.
우리의 기술 개발 프로젝트의 전체를 소개하기에는 지면이 부족하기 때문에 한 가지만 예를 들기로 한다. 우리들은 흙의 대체로서 기능하는 특수한 수지 소재를 이용함으로써 식물이 무성한 ‘정원’을 3D 프린트하는 기술을 개발했다. 건축물을 3D 프린트하는 시도는 세계 각지에서 실시되고 있으며, 비교적 작은 스케일에서는 이미 실용화되고 있는 사례도 존재한다. 그러나 도시의 환경은 협의의 건축물만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잔디나 가로수, 벽면 녹화나 옥상 정원 등과 같은 ‘반자연’적인 요소도 그 중요한 일부이다. 우리의 기술을 이용하면 이러한 ‘반자연’적인 요소를 건축물에 맞게 3D 프린트할 수 있으며, 따라서 종합적인 주거 환경의 프린트에 손이 미친다. 현 시점에서는 소규모(한 변이 수십 cm 정도) ‘정원’의 프린트만 가능한 상태이지만, 미래적으로는 앞에서 말한 파클릿이나 정원이 있는 작은 집, 간단한 농장이나 바이어토프 등을 통째로 3D 프린트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모두’가 도시를 만드는 프로세스에서 노동력과 시간, 특수 기능을 가장 필요로 하는 부분을 제거하려고 하는 것이다.
3D 프린팅 이외에도 IoT와 증강현실 등 여러 분야에 걸쳐 기술 개발을 실시하고 있으며, 다양한 시점에서 디지털 미디어와 같은 개조 가능성을 도시 공간에 부여하는 시도를 추진하고 있다. 또한, 독자의 기술 개발을 하는 것 외에, 인터랙티브 기술과 주거 공간의 경계 영역을 다루는 국제회의 ACM ISS의 운영에 관계하는 등(2018년 회의에서는 필자가 운영위원장을 맡았다), 국제적인 연구자 커뮤니티에 참가해 ‘도시를 편집하는’ 기술 개발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2. 개인의 이익·커뮤니티의 이익
미래적으로 위에서 말한 기술 개발이 결실을 맺어, 다양한 ‘도시를 편집하는’ 기술군이 모두 나와 실용화됐다고 가정해 보자.
‘이 길이 조금 더 넓으면’
‘여기에 조금 더 녹음이 있으면’
‘이 건물에 비를 피할 수 있는 차양이 있으면’
이와 같은 도시에 대한 소박한 요망을 주민이 자발적으로 실현할 수 있는 사회가 도래했다고 하자. 민주적인 도시 만들기라고는 할 수 있겠지만, 그렇게 ‘모두’가 만든 도시가 우리들에게 있어 보다 좋은 도시가 될 것이라는 보장은 존재할까?
민주화와 자유화, 기존 권위에서 시민 쪽으로 권한 이양을 추진하는 것이 반드시 좋은 결과만을 낳는 것은 아니다. Twitter와 Facebook은 정보 발신을 민주화하고 새로운 자기표현이나 커뮤니케이션의 형태, 새로운 저널리즘, 새로운 사회운동 등을 낳았지만, 동시에 클릭베이트나 가짜 뉴스 등이 생기기도 했다. Airbnb나 Uber는 개인의 관점에서 보면 편리한 서비스이지만, 일부 지역에서는 땅값의 상승과 도심의 교통량 증가의 요인이 되고 있다고 비판을 받고 있다. ‘컴퓨터는 현대의 자전거다’라고 하는 말이 젊은 시절 스티브 잡스가 자주 사용한 문구였다. 물론 자전거와 마찬가지로 정보 기술은 개인의 능력을 확장하고, 개인의 체험을 강화해 왔다. 그러나 그 결과, 개인의 이익과 커뮤니티 전체의 이익, 즉 공익과 부딪치는 사례가 자주 나오고 있다.
도시 조성에 대해서도 ‘도시를 편집하는’ 자유만을 추구하면 부작용이 발생할 것이다. 우리는 민주적인 도시 디자인이 마이노리티(minority, 소수파, 약자)를 포함한 다양한 사람들의 요망을 보다 반영한 도시 조성이나 사회적 변화에 대한 유연하고 신속한 대응, 재해에 대한 리질리언스(resilience, 회복탄력성) 향상 등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믿고 있다. 그러나 자유경제는 믿어도 철저한 자유지상주의는 믿지 않듯이, 또한 민주주의는 믿어도 모든 사항을 국민투표에 의해 결정하려 하지 않듯이 시민의 자발성에 맡기면 ‘보이지 않는 손’의 조정 기능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보텀업적인 메커니즘만으로는 보장되지 않는 가치라는 것이 있고, 따라서 Wikitopia는 신중한 전체 시스템 설계가 있어야 비로소 성립되는 비전인 것이다.
앞에서 말한 ‘도시를 편집하는’ 기술군의 개발과 함께 우리들은 자발적인 도시 디자인이 대규모로 운용됐을 때 그것이 전체적으로 잘 돌아가는 구조, 즉 ‘모두’의 손에 의한 자유롭고 복잡한 활동의 총체가 혼란을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도시에 긍정적인 영향을 가져오는 것을 보증하는 구조의 개발에도 착수하고 있다.
구체적인 내용에 대한 설명은 다른 기회에 하겠지만, 이 전체의 시스템 설계라는 것은 매우 어렵고 또한 도전할 가치가 있는 정보공학적 문제라고 우리들은 생각하고 있다. 정보공학에서는 오랫동안 개인에게 귀속하는(퍼스널) 디지털 기술의 개발이 주요한 테마로서 관심을 가져 왔다. 그 반면, 공동의 디지털 기술, 즉 ‘모두’의 협동이나 공생을 지원하는 정보 기술의 개발에 대해서는 비교적 노하우 축적이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맺음말
이 글에서는 첨단 기술을 활용한 미래 도시에 대한 두 가지 비전, 스마트 시티와 Wikitopia에 대해 논했다. 전반 부분이 스마트 시티에 대해 지나치게 비판적인 인상을 주는 문장이 되어 버렸을지도 모르지만, 기존의 시도를 부정하는 것이 우리들의 의도는 아니다.
도시의 미래에 대한 논의가 현재 AI나 빅데이터, 로보틱스 등의 기술에 의해 톱다운적으로 최적화되는 도시라는 단일 이미지에 편중되어 있으며, 그것에는 균형이 결여되어 있다는 것이 우리의 주장이다.
경제 정책에 관해 케인즈파와 하이에크파가 존재하듯이 정치학에서도 경영학에서도 전통적인 도시 계획에서도 통제를 중시하는 입장과 자유를 중시하는 입장, 톱다운적인 사상과 보텀업적인 사상이 (시대마다 추세의 변화는 있지만) 항상 공존해 왔다. 미래 도시에 관한 비전에도 마찬가지로 균형이 필요할 것이다. 즉 Wikitopia는 스마트 시티를 대체하는 비전이 아니라 보완하는 것이다.
앞으로 우리는 이 글에서도 일부 소개한 여러 가지 기술 개발과 실천 활동, 이 글과 같은 발표 등 다양한 활동을 예정하고 있다. 장기적으로는 Wikitopia 특구(공공 공간의 이용에 관한 규제가 완화된 실험지구)를 만들어, 개발한 기술과 이념의 실증을 추진해 갈 계획이다. 이 글을 통해 우리의 활동에 가치가 있다고 느꼈다면, 꼭 향후 여러 가지 형태로 프로젝트에 참여해 주면 고맙겠다.
竹内 雄一郎, 주식회사소니 컴퓨터사이언스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