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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은 많은데 살 집은 없다”…부동산 시장의 착시와 공급의 역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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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택 공급 270만 호.” 정부는 장담했다. 전문가들도 수치를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정작 현장에서는 이런 말이 터져 나온다. “집이 이렇게 많은데…왜 내 집은 없죠?”

 

이쯤 되면 이제 깨달아야 한다. ‘공급은 충분하다’는 말이 현실을 왜곡하고 있다는 사실을. 지금 대한민국 부동산 시장에서 가장 심각한 문제는 바로 ‘진짜 필요한 곳에, 필요한 집이 공급되지 않는다’는 것, 즉 ‘공급의 질적 부족’이라는 구조적 맹점이다.

 

공급은 발표됐지만, 집은 보이지 않는다

 

2025년 현재, 우리는 역대급 ‘공급 드라이브’의 시대에 살고 있다. 정부는 수도권 127만 호, 전국 270만 호 공급을 천명했고, 지방자치단체들도 ‘도심복합개발’, ‘역세권 재정비’라는 이름 아래 주택 공급을 앞다퉈 홍보하고 있다.

 

하지만 냉정하게 보자. 그 많은 공급 계획 중, 지금 당장 입주 가능한 집은 얼마나 되는가? 뉴스를 보면 이런 기사들이 쏟아진다.

 

“재건축·재개발 인허가 지연, 아파트 공급 통로도 막혔다” (조선일보)

“공급은 발표뿐, 신속한 착공·입주는 언제?” (뉴시스)

“LH 의존만으로는 부족…민간 공급은 규제로 막혀” (딜사이트)

 

공급은 말뿐이고, 실제는 지연되고 있다. 계획은 많지만 삽을 뜨지 못한 공급, 그리고 그저 차트를 채우기 위한 수치상의 공급이 난무하는 현실. 이것이 바로 지금 시장이 느끼는 공급 착시의 본질이다.

 

 

시장은 ‘집값보다 불확실성’에 더 두려워한다

 

집값이 불안정한 이유는 단순히 수요가 많아서가 아니다. 공급이 ‘언제 나올지 모른다’는 불확실성 때문이다. 국토부가 “수도권에 5년간 수십만 호 공급하겠다”고 발표해도, 국민은 “그게 언제 입주 가능한 집으로 나오는지 모르겠다”고 느낀다.

 

더 심각한 건, 이 같은 불확실성이 시장 심리를 뒤흔들며 투자자도, 실수요자도, 건설사도 모두 ‘기다리는’ 상황을 만들고 있다는 점이다.

 

매수자는 “더 떨어지겠지”

매도자는 “언젠간 풀리겠지”

정부는 “지금도 충분히 공급 중이다”

…그리고 시장은 마비된다.

 

이때 집값은 다시 꿈틀댄다. 왜냐고? 수요는 눌러놨지만, 공급은 아직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규제가 공급을 가로막는 역설

 

아이러니하게도, ‘시장 안정’을 위해 쏟아지는 규제가 오히려 공급을 더 막고 있다. 재개발·재건축은 안전진단, 인허가, 초과이익환수, 분양가상한제 등 수많은 장벽 앞에 멈춰서 있다. 심지어 어떤 현장은 인허가까지 마쳤음에도 원자재 가격 상승, PF 대출 규제, 조합 내 갈등 등의 이유로 착공조차 못하고 있다.

 

한 기사 제목이 인상 깊다. “공급 없이는 나중에도 살 집 없다.” 맞다. ‘공급은 많다’는 정부의 말보다, “내가 살 집은 지금도, 그리고 5년 뒤에도 없다”는 시민의 현실이 더 무겁게 다가온다.

 

숫자가 아닌, 사람을 위한 공급이 필요하다

 

이제 공급 정책은 수치 게임에서 벗어나야 한다. 국민이 원하는 건 “몇 만 호 공급”이 아니라, “살 수 있는 집”, “직장과 가까운 집”, “아이 키우기 좋은 집”이다. 즉, 공급의 ‘양’이 아니라 ‘질과 시기’가 문제인 것이다. ㅡ수요는 시대에 따라 바뀐다.

 

신혼부부는 ‘작지만 교통 좋은 집’을 원하고

은퇴세대는 ‘조용하고 의료 인프라 있는 집’을 원한다

 

하지만 지금 공급 계획은 이러한 수요를 세밀하게 반영하지 못한다. 수도권 외곽의 수만 호 택지 개발이 서울 도심의 청년에게는 그림의 떡일 뿐이다.

 

공급을 ‘빨리’, ‘가깝게’, ‘실제로’ 하라

 

“공급만으로는 부족하다”는 말이 있다. 그 말은 절반만 맞다. 이제는 ‘공급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시장은 붕괴된다’는 말이 더 정확하다.

 

공급이 부족하다는 문제는 단순한 주거 문제가 아니다. 이것은 청년 세대의 이탈 문제이고 저출산·고령화 문제이며 사회적 불평등의 가속 문제다. 우리는 지금 선택해야 한다. 공급을 지금처럼 숫자로 장식하며 정치에 이용할 것인가, 아니면 사람이 실제로 살 수 있는 집을 빠르게 공급할 것인가.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정부와 시장이 함께 ‘속도 있는 공급, 체감 가능한 입주, 삶을 위한 주택’에 집중할 때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말하게 될 것이다. “집은 많은데, 살 집은 없다.”

 

이지윤 부동산전문기자/작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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