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정부가 꺼내든 민생지원금 카드는 분명한 정치적 메시지를 담고 있다. 침체된 내수를 진작시키고, 고물가와 고금리에 지친 서민 가계의 숨통을 틔우겠다는 취지다. 전국민에게 1인당 15만~25만 원(일부 계층 최대 50만 원)의 현금성 지원을 지급하고, 소상공인 대상 정책자금도 추가 편성하는 내용은 30조 원 규모의 추경과 함께 ‘확장적 재정정책’의 본격화로 해석된다.
문제는 이러한 대규모 현금 살포가 자산시장, 특히 주택시장에 어떤 영향을 줄 것인가이다. 정책의 표면은 소비를 겨냥하지만, 그 이면에서는 대출 규제와 세제 강화가 동시에 추진되며 시장 참여자들은 혼란스러운 신호를 받고 있다.
우선 단기적으로는 전세 시장에 제한적인 온기가 돌 수 있다. 전세 매물이 부족한 상황에서, 일정 수준의 현금 유입은 무주택 실수요자들에게 계약금 또는 보증금 일부로 쓰일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2025년 7월 서울 전세 매물은 전월 대비 11.6% 줄었고, 강동구는 무려 67.7%가 감소했다.
여기에 한국부동산원이 발표한 ‘수도권 전세가격지수’는 21개월 연속 상승세를 보이며 가격 반등의 신호를 보내고 있다. 이러한 국면에서 민생지원금은 전세시장 수요를 자극해 ‘가격 하방 경직성’을 강화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특히 계약갱신청구권을 사용한 뒤 이사수요가 발생한 계층은 정부 지원금을 유동성 수단으로 활용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동시에 한국은행과 학계에서는 이를 유동성 과잉으로 인식하고 있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재정과 통화의 확장이 동시에 작동하면 물가에 대한 압력이 커지고, 이는 오히려 금리 인상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 경우 주택담보대출 금리는 다시 오를 수 있고, 이미 연 4%대에 머물고 있는 고정금리 상품들은 실수요자의 진입 장벽을 더욱 높인다.
2025년 6월 기준 신규 주택담보대출 평균금리는 4.03%로, 1년 전보다 1.1%p 상승했다. 금융위원회·기획재정부·국토교통부·한국은행 등 관계기관은 2025년 6월 27일 ‘긴급 가계부채 점검회의’를 열고, 수도권·규제지역에서 주택담보대출(주담대) 상한을 6억 원으로 제한키로 결정했다. 이는 고가주택에 대한 과도한 대출을 차단하려는 실질적인 조치이다.
또한 공급 측면에서도 주목할 지점이 있다. 정부는 청년·신혼부부 대상 공공주택 확대, 역세권 고밀개발, 도심 복합개발을 발표하며 공급 확대로 주택가격을 억제하려는 의지를 분명히 하고 있다. 국토부는 2025년 하반기 분양 예정 물량을 전년 대비 30% 이상 확대하겠다고 밝혔고, 사전청약제도 또한 재개를 검토 중이다.
이런 공급 시그널은 중장기적으로 시장의 가격 기대치를 낮추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반면 지방 중소도시와 비수도권 지역은 여전히 미분양 물량이 누적돼 있으며, 6월 기준 준공 후 미분양은 전월 대비 5.9% 증가했다. 이처럼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이 지역별로 갈리는 국면에서 민생지원금이 전국적 자극이 되긴 어렵다.
결국 이번 민생지원금은 주택시장을 본격 자극하는 ‘기폭제’라기보다, 시장의 흐름을 완급조절하는 신호로 해석하는 것이 더 적절하다. 일시적인 소비 자극이 가격 상승으로 연결되긴 어렵고, 정부의 정책 스탠스는 오히려 가격 안정에 방점을 두고 있다. 다시 말해, 민생지원금은 따뜻한 현금이지만, 그 속에 담긴 정책 방향은 여전히 ‘차가운 시장관리’다. 시장은 이 온도차를 읽고 있다.
실수요자라면 지금은 조심스럽지만 정밀한 대응이 필요한 시점이다. 민생이라는 이름의 현금 지원은 일시적 숨통을 틔워주지만, 집이라는 장기적 자산의 온도를 바꾸기엔 혼자서 충분하지 않다.
지금 같은 시장에서 실수요자들이 취해야 할 전략은 무엇인가?
첫째, 정부의 규제 방향과 자금 흐름을 함께 읽는 이중적 감각이 필요하다. 예컨대 주담대 한도가 6억 원으로 제한된 지금, 고가주택 진입은 더 까다로워졌지만 반대로 6억 원 이하 매물군에서는 규제 반사이익이 생길 수 있다.
서울 외곽, 수도권 1기 신도시, 준신축 단지 중 실거주 매물은 이런 시기에 오히려 실수요 경쟁이 집중될 수 있으므로 금리보다 가격의 합리성을 기준으로 선별적 접근이 유효하다.
둘째, 청약시장에 대한 전략적 진입 준비도 병행되어야 한다. 청약경쟁률은 하향 안정 중이며, 사전청약 재개와 무순위 공급 확대는 청약가점이 낮은 30~40대 실수요자에게 '선점의 기회'가 될 수 있다. 특히 생애최초·신혼특공 등 비가점형 제도는 이번 정부의 공급 확대 시그널과 맞물려 '의외의 당첨 구간'을 만들 가능성도 있다.
셋째, 전세시장의 구조 변화에도 주목해야 한다. 입주 물량 감소와 보증금 인상, 전세매물 급감은 실거주자 입장에서 ‘전세→매매’ 전환을 유도하는 장기 신호로 작용할 수 있다. 여기에 민생지원금은 계약금 보조 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어, 소형·저가 주택 매수 전환을 고민하는 무주택자에겐 타이밍 계산이 중요해지는 구간이다.
넷째, 금리와 세제를 고려한 보수적 레버리지 전략이 요구된다. 금리는 여전히 고점에서 머무르고 있고, 보유세와 공시가격 인상 기조도 명확하다. 따라서 무리한 레버리지보다는 정책 모기지(보금자리론·디딤돌론) 등 저금리 상품을 중심으로 자금 설계를 하고, 비과세 범위 내 1주택 전략을 수립하는 것이 리스크를 최소화할 수 있는 접근이다.
마지막으로 중요한 것은 ‘심리적 매수 타이밍’을 좇기보다는, 정책 구조 안에서 실현 가능한 자리를 확보하는 것이다. 정부는 가격을 띄우려 하지 않고 있다. 공급 확대, 대출 제한, 공시가격 현실화, 세제 강화는 모두 가격을 눌러두려는 기조다.
이런 시장에서는 ‘반등’보다 ‘기준점 근처의 기회’가 더 많이 생긴다. 바닥을 맞히려 하기보다, 정책의 테두리 안에서 움직이는 구간에서 안전하게 진입하고 오래 가져갈 수 있는 자산을 선택하는 것, 그것이 지금 실수요자에게 필요한 전략이다.
결국 시장을 이기는 사람은 가장 똑똑한 사람이 아니라, 제도와 구조를 먼저 이해하고 실천하는 사람이다. 집값을 예측하는 것은 불확실하지만, 자신의 자금과 제도를 예측하는 일은 누구나 할 수 있다. 이재명 정부의 민생지원금은 ‘기회’ 그 자체는 아니지만, 지금이 그 기회를 설계하기에 가장 조용하고 안전한 구간일 수 있다.
작성자 부동산 전문기자 이지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