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PICK] 속도 경쟁의 끝에 선 '택배노동자들', 그들도 기계 아닌 사람이다

2025.05.13 16:51:16

김재황 기자 eltred@hellot.net


산업을 움직이는 단어 하나, 그 안에 숨은 거대한 흐름을 짚습니다. ‘키워드픽’은 산업 현장에서 주목받는 핵심 용어를 중심으로, 그 정의와 배경, 기술 흐름, 기업 전략, 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차분히 짚어봅니다. 빠르게 변하는 산업 기술의 흐름 속에서, 키워드 하나에 집중해 그 안에 담긴 구조와 방향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당일 주문, 당일 배송.”

 

이제는 낯설지 않은 말이다. 쿠팡, 네이버, SSG닷컴 등 주요 이커머스 플랫폼들이 ‘주 7일 배송’을 전면 도입하거나 확대하면서 물류업계는 말 그대로 365일 풀가동 체제로 접어들고 있다. 오늘날 물류 현장은 주말과 공휴일의 경계조차 사라졌다. 그러나 그 속에서 움직이는 수많은 택배노동자들의 현실은 기술만큼 빠르게 개선되지 않고 있다. 더 빠른 속도와 더 높은 정확성을 요구하는 소비자의 니즈와 이를 충족하기 위한 물류 기술 혁신의 이면에는, 여전히 땀 흘리며 일하는 택배노동자들의 목소리가 고립되어 있다.

 

 

AI, 자동화 있어도 ‘배송’에는 사람이 필요하다

 

사실 ‘주 7일 배송’은 완전히 새로운 개념은 아니다. 쿠팡은 이미 몇 년 전부터 로켓배송을 통해 주말 배송을 운영해왔고 마켓컬리 같은 신선배송 플랫폼도 새벽배송을 활용해 주말 수요에 대응해왔다. 하지만 2024년 하반기 들어 네이버와 SSG닷컴까지 ‘7일 배송’을 공식화하면서 이 흐름은 산업 전반을 관통하는 새로운 표준으로 자리 잡았다.

 

물류업계는 이러한 변화의 배경으로 AI 수요예측 고도화, 마이크로 풀필먼트(MFC), 자동화 물류 시스템을 꼽는다. 주문 데이터를 기반으로 도심 인근 물류센터에 인기 제품을 미리 배치하고 주말에도 무정지 가동되는 자동화 설비를 통해 빠른 출고가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렇게 구축된 ‘속도 체계’의 마지막 접점에는 여전히 ‘사람’이 있다. 배송은 결국 사람이 한다.

 

배송현장선 “일요일에 출근 안 하면 불이익”

 

문제는 이 속도가 택배노동자의 삶까지 바꾸고 있다는 점이다. 대표적으로 한진택배는 2025년 4월 ‘주 7일 배송’ 전면 시행을 예고하며 주말 배송을 확대했다. 그러나 전국택배노동조합은 이를 사전 협의 없는 일방적 결정이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실제 노조가 진행한 설문에 따르면, 한진택배 기사 1,093명 중 81%가 주 7일 배송에 반대했으며 77%는 “주말 배송이 사실상 강제되고 있다”고 응답했다. 60%는 “일요일 배송을 거부할 경우 구역 조정이나 수수료 불이익 등 보복 조치를 경험했다”고 답했다.

 

CJ대한통운은 상대적으로 노조와 합의 기반 위에서 주말 배송을 도입했지만 일부 대리점에서는 자율 참여 원칙이 무너지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일은 계속 주는데 쉼은 선택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 현장의 공통된 목소리다.

 

국내 물류 트렌드를 선도하는 쿠팡 역시 예외는 아니다. 쿠팡 배송노동자들은 로켓배송의 최전선에서 하루 수십 건의 물량을 소화하며 쉼 없이 달린다. 이들은 형식적으로는 주 5일 정규직으로 고용되어 있지만 실상은 실적 압박과 시간당 수십 건에 달하는 배송 목표 속에서 마치 기계처럼 일하는 현실에 처해 있다.

 

이러한 문제는 이미 구체적인 사건으로도 나타났다. 2024년 5월, 심야 로켓배송 업무를 하던 한 기사가 과중한 업무와 피로로 인해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되었고, 같은 해 7월에는 또 다른 심야 배송 노동자가 쓰러지는 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다.

 

속도를 위한 서비스는 느는데, 노동법은 멈춰 있다

 

택배노동자 다수는 특수고용 형태로 일하고 있어 근로기준법의 보호를 온전히 받지 못한다. 주 52시간제, 유급휴가, 초과수당 등 일반 노동자에게 보장된 기본 권리들이 그들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

 

2021년 말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이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택배노동자의 하루 평균 노동시간은 11시간을 초과하며 분류작업까지 포함하면 14시간에 달하는 경우도 많다. 특히 여름철에는 냉방기조차 없는 물류센터에서 일해야 하고 휴게시간이 보장되지 않는 사례도 여전히 다수다.

 

코로나19로 인해 택배 물량이 급증하기 시작한 2021년 이후, 택배노동자의 과로사를 방지하기 위한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졌지만 그 실행력은 여전히 미흡하다. 2023년에는 국가인권위원회가 냉·난방설비 설치 의무화, 야간노동 규제 등 건강권 보호를 위한 법 개정을 정부에 권고했으나 아직 실질적인 제도 변화는 이뤄지지 않았다.

 

속도와 사람, 이제 균형점을 찾아야 한다

 

하루 수십 건의 물량을 소화해야 하는 택배노동자들에게 ‘속도’는 생존 조건이 되었다. 그러나 플랫폼 경쟁이 ‘주 7일 배송’이라는 이름으로 치닫고 있는 지금, 더 빠른 배송 이전에 노동자의 생명과 권리가 우선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다. 배송이 늦는 것보다 사람이 다치거나 사망하는 일이 훨씬 더 큰 사회적 비용임을 우리는 잊어선 안 된다.

 

‘주 7일 배송’은 장기적으로 물류 산업의 기본값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이 흐름이 지속되기 위해서는 속도 못지않게 지속 가능성과 인간 중심의 운영 체계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기술과 서비스가 아무리 정교해져도 마지막 단계는 사람의 손을 거쳐야 한다. 택배노동자들을 사람이 아닌, 계속해서 일할 수 있는 '기계'처럼 바라보는 한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배송 혁신은 지속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헬로티 김재황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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