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류는 더 이상 보이지 않는 뒷단의 산업이 아닙니다. '황' 기자의 헬로로지스틱스는 글로벌과 국내 물류 시장에서 벌어지는 변화와 혁신을 쉽고 깊게 풀어내고자 마련한 고정 기획입니다. 현장의 목소리와 산업의 흐름을 담아 물류가 우리 삶에 어떤 의미를 더하는지 전해드리겠습니다.
3370만 명, 사상 최대 규모의 개인정보가 유출됐다
지난달 29일, 쿠팡은 약 3,370만 개 고객 계정의 개인정보가 유출됐다고 공식 발표했다. 이름, 전화번호, 이메일 주소, 배송지 주소록, 최근 주문 내역까지 포함된 이번 유출은 국내 이커머스 역사상 최대 규모다. 이는 사실상 쿠팡을 이용한 거의 모든 고객의 정보가 외부에 노출된 셈이다.
더 충격적인 것은 유출 경위다. 정부 조사 결과에 따르면 공격은 지난 6월 24일부터 약 5개월간 지속됐다. 고도로 정교한 외부 해킹이 아니라 퇴사한 중국인 직원의 인증키를 제때 회수하지 않은 내부 관리 부실이 원인이었다. 쿠팡은 11월 18일 고객 민원을 통해 사태를 인지했고 초기에는 4,500개 계정만 유출됐다고 신고했다가 뒤늦게 피해 규모를 7,500배 이상 확대 정정했다.
이번 사태를 정부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지켜보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2일 국무회의에서 "5개월 동안 회사가 유출 자체를 파악하지 못했다는 것이 참으로 놀랍다"며 엄중한 책임을 요구했다. 개인정보보호위원회는 쿠팡에 용어를 '노출'에서 '유출'로 바로잡아 재통지하도록 명령했고, 안전조치 의무 위반이 확인되면 최대 1조 원대 과징금 부과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다.
쿠팡발 물류업계 문제,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이번 개인정보 유출 사태는 쿠팡을 둘러싼 오랜 논란의 연장선에 있다. 쿠팡은 '로켓배송'이라는 혁신으로 국내 이커머스 시장을 재편했지만 그 이면에는 노동·안전·공정거래 문제가 끊임없이 제기되어 왔다.
노동 현장에서는 '찜통 노동' 논란이 대표적이다. 2023년 폭염 당시 물류센터 근로자들은 에어컨 설치와 휴게시간 보장을 요구하며 파업에 나섰다. 과로사, 산재, 퇴직금 미지급 등 부정적 이슈가 반복되는 가운데 미국 본사는 '일·생활 균형 기업'으로 평가받아 '한국 홀대론'이 국정감사에서 공론화되기도 했다.
안전 문제도 빼놓을 수 없다. 2021년 경기도 이천 덕평 물류센터 화재는 소방관 순직이라는 인명 피해까지 낳으며 '안전불감증' 비판의 상징이 됐다. 고층 랙과 대량 적재물 구조로 진화가 장기화됐고, 급격한 물류 확장 속도에 안전·리스크 관리가 따라가지 못했다는 지적이 뒤따랐다.
입점 판매자들과의 갈등도 지속되고 있다. 늑장 정산, 반복적인 단가 인하 요구, 성장장려금 명목의 비용 전가 등으로 '플랫폼 의존 리스크'가 커지고 있다는 호소가 이어지며, 공정거래위원회 차원의 논의에서도 쿠팡 사례가 자주 언급되고 있다.
왜 문제는 반복되는가? ‘사실상 독점’ 구조의 한계
그렇다면 왜 이런 문제들은 해결되지 못하고 반복되는 것일까. 전문가들은 쿠팡의 압도적인 시장 지배력과 지배구조의 폐쇄성을 핵심 원인으로 꼽는다.
2024년 기준 쿠팡의 커머스 거래액 성장률은 약 20%로, 네이버 커머스(약 4.3%)를 크게 앞서며 격차가 더 벌어지는 추세다. 전국 주요 거점에 대형 물류센터를 잇달아 세우며 3년간 3조 원 이상 투자 계획을 밝힌 쿠팡은 국내 직고용 인력만 9만 명을 넘어섰다. 자본력을 앞세운 물류 독주가 경쟁 환경을 압도하면서 반대로 시장 내 견제 기능은 약화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지배구조 문제도 있다. 김범석 쿠팡Inc 이사회 의장은 의결권 70%를 보유한 실질적 오너지만 2015년 국정감사 이후 국회 출석 요구에 단 한 번도 응하지 않았다. 이번 사태에서도 긴급 현안질의에 불출석했고, 지난 10일 박대준 대표가 사임한 후에도 침묵을 유지하고 있다. 미국 본사에서 파견된 해롤드 로저스 최고관리책임자가 임시 대표로 선임됐지만, 이를 두고 '김 의장의 책임 회피용 방패막이'라는 비판이 제기된다.
결국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쥔 최고 의사결정권자가 전면에 나서지 않는 구조에서 개별 사안마다 실무진 교체로 봉합하는 패턴이 반복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쿠팡, 그리고 물류업계가 나아가야 할 방향은 어디인가
이번 사태를 계기로 쿠팡과 물류업계 전반이 해결해야 할 과제는 분명해졌다. 전문가들은 크게 세 가지로 이를 정리한다.
첫째는 정보보안 체계의 근본적 재정비다. 퇴사자 인증키 회수, 이상 징후 실시간 탐지, 접근 권한 관리 등 기본 중의 기본이 무너져 발생한 이번 사태는 기술력 부족이 아닌 관리 의지의 문제였다. 대형 플랫폼일수록 고객 정보 보호는 선택이 아닌 필수 의무라는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둘째, 책임 경영 체계의 확립이다. 오는 17일 국회 과방위 청문회에는 김범석 의장을 포함해 전·현직 대표와 주요 경영진이 증인으로 채택됐다. 의결권 70%를 보유한 실질적 경영자가 직접 나서 사태의 전말을 밝히고 재발 방지책을 제시하는 것이 신뢰 회복의 첫걸음이다.
셋째, 물류업계 전반의 지속 가능한 성장에 대한 논의다. 쿠팡의 사례는 빠른 성장이 노동환경, 안전관리, 정보보호, 거래 공정성 등 다양한 영역에서 리스크를 동반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업계 차원에서 성장 속도와 사회적 책임의 균형점을 찾는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집단소송 참여 인원이 65만 명을 넘어서고 미국에서도 징벌적 손해배상 소송이 예고된 상황이다. 쿠팡이 쏘아올린 이번 사태가 단순한 한 기업의 위기를 넘어, 대형 플랫폼 기업의 책임과 물류산업의 지속 가능성을 다시 묻는 계기가 되어야 할 것이다.
헬로티 김재황 기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