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춘 것은 수요가 아니라 레버리지다
서울 아파트 시장은 지금 조용하다. 가격이 무너진 것도 아니고, 거래가 활발한 것도 아니다. 다만 고가 아파트 시장은 사실상 레버리지가 차단되면서 숨이 멎은 듯한 상태다. 25억 원을 초과하는 아파트에 대한 대출이 2억 원 수준으로 묶이자, 매수자들의 계산 방식 자체가 달라졌다. “얼마까지 오를까”를 묻던 시장이 “얼마까지 빌릴 수 있나”를 먼저 묻는 시장으로 바뀌었다.
중간 가격대에서는 제한적인 거래가 이어지고 있지만 시장 전체를 끌어올릴 만큼의 에너지는 아니다. 매수 여력은 존재하되 확신은 부족하다. 지금 서울 아파트 시장은 수요가 사라진 것이 아니라 규제에 의해 ‘속도가 조절된 상태’에 가깝다. 그리고 속도가 줄어든 자금은 멈추지 않는다. 방향을 바꾼다. 자금은 언제나 덜 묶인 곳으로 흐른다.
세금과 금융, 자산의 성격을 바꾸다
주택의 경우 공시가격 12억 원을 초과하면 종합부동산세 대상이 된다. 반면 상업용 빌딩은 토지 공시지가가 80억 원을 넘어야 종부세 과세 대상이 된다. 동일한 100억 원 자산이라 하더라도 과세 구조는 전혀 다르다.
금융 측면에서도 차이가 명확하다. 주택담보대출은 고가 주택일수록 규제가 강해지지만 상업용 부동산은 임대사업자 구조를 활용할 경우 신용도와 사업성에 따라 60~80% 수준의 자금 조달이 가능하다. 자산 규모가 클수록 이 격차는 더욱 크게 체감된다. 이러한 제도적 차이는 단순한 투자 취향의 변화가 아니라 자금 이동의 구조적 원인으로 작용한다.
실제 서울 꼬마빌딩 거래는 고금리 충격 이후 일시적으로 위축됐으나 다시 회복 국면에 진입했다. 이는 투자 심리의 단순 반등이라기보다 정책 환경에 대한 자본의 반응으로 해석하는 것이 타당하다.
100억의 선택, 거주인가 운용인가
상징적인 비교도 가능하다. 강남권 초고가 아파트의 실거래가가 100억 원을 넘어서는 상황에서 동일한 금액으로 핵심 상권의 중소형 빌딩을 매입할 수 있다. 하나는 거주 목적의 자산이고 다른 하나는 임대 수익이 발생하는 자산이다. 규제가 강화될수록 선택의 기준은 달라진다. ‘보유’ 중심에서 ‘운용’ 중심으로, ‘시세차익 기대’에서 ‘현금흐름 관리’로 무게가 이동한다. 물론 상업용 부동산이 만능 대안은 아니다.
금리 변동에 따른 이자 부담, 공실 리스크, 임차인 관리 문제는 여전히 중요한 변수다. 특히 상권 경쟁력에 따라 수익성과 자산 가치의 격차가 확대되는 양극화 현상은 더욱 뚜렷해질 가능성이 높다. 역삼로 벤처기업육성촉진지구, 양재동 AI 특화지구, 성수 연무장길, 도산공원 등 유동 인구가 증가하고, 개발계획이 집중되며, 브랜드 집적도가 높은 상권은 가격 방어력이 강화되고 있다. 반면 비핵심 상권은 공실과 수익률 하락의 압박을 동시에 받고 있다. 결국 빌딩 시장 역시 ‘입지 중심의 재편’이 진행 중이다.
향후 3년, 자산 구조가 재편된다
향후 3년 시장을 전망할 때 핵심 변수는 두 가지다. 첫째는 금리의 경로다. 금리가 안정 또는 완만한 인하 흐름을 보일 경우 상업용 부동산의 레버리지 활용도는 다시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 반대로 고환율과 외부 리스크로 금리 변동성이 지속된다면 수익 구조가 취약한 자산은 조정 압력을 받을 수 있다.
둘째는 주택 규제의 지속성이다. 만약 보유세 강화, 양도세 체계 개편 등 추가 규제가 현실화된다면 자금의 상업용 자산 이동은 구조적으로 고착화될 가능성이 있다. 중요한 것은 지금의 흐름을 단기 트렌드로 볼 것인가, 아니면 자산 배분 패러다임의 전환으로 해석할 것인가다. 필자는 후자에 가깝다고 본다.
정책은 자산의 상대 가치를 재편한다. 특정 자산을 압박하면 자본은 다른 자산으로 이동한다. 그리고 그 이동이 반복되면 시장의 중심축 자체가 이동한다. 향후 3년은 ‘주택 중심 자산 구조’에서 ‘주택과 상업용의 이원화 구조’로 재편되는 과도기가 될 가능성이 높다. 핵심 상권의 우량 빌딩은 기관과 고액 자산가의 포트폴리오에 더 깊이 편입될 것이고, 주택은 실수요 중심의 안정 자산으로 성격이 재정의될 수 있다.
빌딩도 입지와 경쟁력이 우선이다
다만 분명히 해야 할 점이 있다. 모든 빌딩이 대안이 되는 것은 아니다. 상권의 지속성, 임차인의 신용도, 향후 용적률 변화 가능성, 개발 계획과의 연계성까지 종합적으로 분석해야 한다. ‘똘똘한 한 채’의 개념이 아파트에서 빌딩으로 이동하고 있을 뿐 본질은 여전히 입지와 구조적 경쟁력이다.
부동산 시장에서 가장 먼저 움직이는 것은 가격이 아니라 자금이다. 그리고 자금의 방향은 정책이 결정한다. 아파트를 막으면 빌딩으로 돈이 흐른다. 지금 서울에서 일어나고 있는 자금의 이동은 일시적 유행이 아니다. 규제가 자산의 질서를 다시 쓰면서 만들어낸 구조적 재편이다. 이 변화를 흐름이 아닌 전환으로 읽는 투자자만이 다음 사이클의 중심에 설 수 있다.
이지윤 부동산전문기자/작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