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모델이 단종된다는 것은 완성차 브랜드 입장에서 한때 미래를 걸었던 전략 수단이자, 브랜드 감성의 한 켠을 장식하는 퍼즐 조각이 저무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용자는 모델 단종으로 차량 고장 시 부품 조달 등 현실적 고민부터, 개인의 추억이 사라지는 감성 파도를 경험하기도 합니다. 자동차 모델 단종은 단순히 시장에서 상품이 사라지는 것을 의미할까요?”
[오토 스페셜 I] '아 옛날이여' 브랜드 대표 모델에서 역사 속 한편으로
[오토 스페셜 II-①] ‘모델 단종이 브랜드 혁신의 신호탄?’ 단두대에 올려진 車
[오토 스페셜 II-②] 추후 공개
[오토 스페셜 III] 추후 공개
모빌리티(Mobility)의 사전적 의미는 ’이동을 용이하게 하는 모든 수단‘이다. 모빌리티 범주 안에는 많은 이동수단이 존재한다. 특히 일반인이 운행하는 자가용 자동차는 19세기 말에 등장해 100년 이상의 역사를 보유했다. 근대에는 오직 이동성에만 초점을 두고 활용하는 것에 그쳤지만, 현대 들어 많은 요소가 집약돼 ’상품성‘이라는 개념으로 모아져 가치가 평가된다.
자가용 자동차는 개성 표출을 넘어 개인의 경제력 척도 수단으로까지 영역이 확대된지 오래다. 완성차 브랜드는 차별화한 자신만의 모델을 다양한 방식으로 내놨다. 이 과정에서 모델 가치가 하락하고, 매력이 줄어드는 순간 시장에서 사라지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이번 오토 스페셜은 총 3부로 진행되는데, 이번화에서는 지난화에 이어 2020년대 진입 후 해외 글로벌 완성차 기업의 단종 확정 모델 및 단종 사가를 쓰는 모델에 대해 다룬다.
獨 3사, 엔트리·혼합·고성능 모델 등지고 주력 모델 혁신에 집중한다
소위 독일 완성차 브랜드 3사로 일컫는 메르세데스-벤츠·BMW·아우디는 지난해부터 순차적으로 주력 모델 외 라인업에 속한 모델 단종을 공식 발표했다.
메르세데스-벤츠는 브랜드 고급화 정책 일환으로 A클래스, B클래스 등 소형 라인 모델의 단종을 암시했다. 올라 샬레니우스(Ola Källenius) 메르세데스-벤츠 이사회 의장 겸 최고경영자(CEO)는 지난해 프랑스 소재 지중해에 위치한 리베이라에서 투자자 및 관계자가 모인 비전 발표 행사 자리에서 해당 내용을 암시하는 전략을 언급했다.
샬레니우스 CEO는 “고급화 전략을 통해 시장 상황이 불안하지 않다는 가정 하에 15년 내 현재 대비 13~15% 추가 이윤을 달성할 것이라 본다”고 예측했다. 그는 루이 비통을 보유한 고급화 소비재 기업 ’LVMH‘, 벤츠 내부에서 경쟁사로 평가하는 ’페라리(Ferrari N.V.)‘의 기업 가치가 벤츠에 상당 부분 웃도는 점을 지적하며 “이윤을 상승시키고 있다면, 나무 밑단을 자르고 상단을 키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 미국 블룸버그 등 외신은 “샬레니우스 CEO가 언급한 ’나무 밑단‘의 명확한 모델을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A클래스 및 B클래스를 염두해 둔 발언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독일 경제지 한델스블라트도 익명의 내부 정보를 근거로 “벤츠가 2025년에 A클래스와 B클래스 생산을 종료할 것으로 파악됐다”며 “향후 후속 모델은 하이브리드 및 전기 모델을 생산하는 MMA(Mercedes Modular Architecture) 플랫폼에서 생산될 것으로 예상한다”고 전했다. 이처럼 메르세데스-벤츠는 고급화 및 전동화에 초점을 맞춰 미래 비전을 설계한 것으로 분석된다.
BMW는 준대형 세단 세그먼트 모델의 생산 중단을 예고했다. 6시리즈 그란투리스모(GT)가 그 주인공이다. BMW는 1시리즈~8시리즈로 구성된 세단, X1~X7까지 꾸려진 SUV 등 세분화한 차량 라인업을 보유했다. 세단과 SUV 라인업은 공통으로 1·3·5·7시리즈가 일반 세그먼트 모델이며, 2·4·6·8시리즈는 쿠페형 모델로 구성돼 있다.
이 중 6시리즈 GT는 지난 1975년에 첫 등장한 6시리즈의 명맥을 확장해 2017년에 코드명 ‘G32’로 출시된 준대형 세단 모델이다. 5시리즈 GT가 단종된 후 배턴을 이어받는 격으로 곧장 출시돼 사실상 5시리즈 GT의 후속작이라 평가받는 모델이다. 5시리즈 생산에 활용한 BMW CLAR(BMW Cluster Architecture Platform)이 사용된다는 점이 평가 근거다.
지난 2011년에 첫 출시된 6시리즈 3세대 쿠페·그란 쿠페·컨버터블이 모두 2018년에 8시리즈로 편입되면서, 6시리즈 GT는 BMW에서 6시리즈 이름으로 마지막 남은 모델이 됐다.
최근 6시리즈 GT 마저도 조만간 단종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BMW 소식에 정통한 독일 매체 비머투데이(Bimmertoday)는 내부 네트워크를 인용해 “내년 BMW 라인업에 6시리즈 GT를 보기 어려울 것”이라고 보도했다.
여기에 미국 자동차 매체 월드카팬스도 6시리즈 GT의 생산이 올 가을을 끝으로 종료될 것이라며 비머투데이 보도에 힘을 보탰다. BMW 5·6시리즈 대변인인 리아나 드루스(Liana Drews)도 월드카팬스에 게재한 성명에서 “6시리즈 쿠페·그란 쿠페·컨버터블은 8시리즈로 역할이 옮겨갔다”며 “6시리즈 마지막 모델로 남은 6시리즈 GT도 현행 5시리즈와 밀접한 관련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업계는 앞서 편입된 쿠페·그란 쿠페·컨버터블처럼 GT도 5시리즈로 편입되는 것이 아니냐는 예측을 내놓고 있다. 여기에 덧붙여 중대형 쿠페라는 애매한 포지션과 더불어 소음·진동, 동력 전달 장치인 프로펠러 샤프트·유리 개폐 시 작동하는 유리기어 등의 잦은 고장, 공조기 디스플레이 깨짐 현상 등 모델의 고질적인 이슈가 판매량 감소를 불러 단종을 앞당겼다고 분석했다.
한편 아우디는 지난해 자사 첫 고성능 미드십 슈퍼카 모델 아우디 R8의 단종 소식을 전했다. 해당 모델은 아우디 슈퍼카 프로젝트 일환으로 2008년에 탄생했다. 첫 등장 시 성능과 디자인 모두 업계에 반향을 일으킨 모델로 평가받는다. 한때 축구선수 ’손흥민 애마(愛馬)‘,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 영화에 등장한 ’아이언맨 카‘로 조명받았던 일화도 있다.
1세대 R8의 엔진은 V8과 V10이 혼용돼 탑재됐지만, 2세대부터는 람보르기니 가야르도 및 우라칸과 공유하는 V10 엔진만을 활용하며 슈퍼카 이미지를 확실히 구축했다는 점이 아우디 입장에서 의미가 큰 모델로 평가된다.
미국 자동차 매체 카 앤 드라이브(Car and Driver)는 지난해 11월 아우디 R8 2023년식 모델이 마지막 모델이 될 것으로 보인다“며 ”최근 공개된 한정 수량 모델 ’R8 GT RWD‘가 R8의 한정 수량 모델 최종판이 될 것 같다“고 보도했다. 해당 매체는 이어 ”R8 후속 모델로 프로젝트명 ’Rnext’ 전기 슈퍼카가 등장할 것이라는 업계 루머에 대해 아우디 대변인은 ‘사실무근’이라고 반박했다“고 부연했다.
‘너 나 할 것 없이 뛰어드는 전동화’, 우리도 한다
전 세계적으로 급증하는 이상 기후는 인류에 또 다른 방향성과 숙제를 제시했다. 전 세계 산업은 탄소 줄이기에 혈안이 된 모양새다. 이런 트렌드로 인해 기업이 친환경적 요소를 얼마나 갖췄는지가 기업 가치를 메기는 데 새로운 기준이 된 건 오래된 일이 아니다.
이에 자동차 업계도 저탄소 나아가 탈탄소를 외치며 트렌드 전환을 알렸다. 핵심 키워드는 ‘전동화’다. 전기를 동력으로 한 자동차를 활성화하겠다는 것인데, 지난 2012년에 미국 전기차 제조기업 테슬라에서 출시한 테슬라 모델 S 출시가 전기차 활성화에 신호탄이 됐다. 모델 S 출시 후 10여년이 흐른 지금, 완성차 업계 양상은 전동화가 당연시되는 분위기다.
이 배경에서 테슬라와 함께 미국 완성차 시장 선두 자리를 다투고 있는 포드(Ford Motor Company)와 GM(General Motors)도 전동화 의지를 지속 드러내는 중이다. GM은 지난 2021년 1월에 2025년까지 전기차 30여종을 시장에 내놓고, 2035년까지 내연기관 생산을 중단한 후 완전한 전기차 기업을 거듭날 것이라 천명했다.
이듬달 포드도 2025년까지 전기차 분야에 약 28조 원을 투자하겠다고 선언했다. 여기에 배터리 연구개발 부문에 대한 투자도 함께 진행한다는 계획도 덧붙였다. 짐 팔리(Jim Farley) 포드 CEO는 ”커넥티드 전기차에 전념하겠다“면서 ”전기차 영역에 역량을 집중해 경쟁사에 영향력을 내주지 않을 것“이라며 전동화 의지를 불태웠다.
양사는 ‘EV 올인 선언’ 이후 자사 내연기관 모델의 단종을 차례로 발표했다. 포드는 지난해 10월 소형차 모델 피에스타 단종을 47년 만에 공식화했고, 한국GM도 같은 해 중형 세단 모델 말리부 생산을 종료했다.
독일 매체 뉴스온투어(NEWS-on-Tour.de)는 ”지난달 7일 오후 6시 25분에 쾰른 공장 조립 라인에서 피에스타의 마지막 모델이 조립됐다”며 “1979년부터 해당 라인에서 생산된 948만 1637번째 모델”이라고 설명하며 피에스타의 마지막을 알렸다.
포드는 피에스타 생산에 활용된 쾰른 라인에 대해 향후 익스플로러 일렉트릭(EV)을 생산하는 쾰른 EV 센터로 전환될 예정이라고 전했다. 업계는 향후 피에스타의 자리를 소형 SUV 모델인 포드 퓨마의 전기차가 차지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포드는 퓨마 전기화 버전 출시를 내년으로 목표했다.
GM 말리부는 현재 국내 시장에서 단종된 상태로, GM은 2024년 말리부의 글로벌 단종을 발표한 바 있다. 그러던 올 1월, GM 전담 소식지 GM Authority는 익명의 소식통을 통해 GM이 차세대 말리부 출시 시기를 2025년으로 설정했다고 보도했다. GM이 당초 단종 발표를 번복했다는 것인데, 해당 보도에 시장 반응은 기대감에 초점이 맞춰졌다.
보도에 따르면 차세대 말리부의 프로젝트명은 '9DSC-L'이다. 또 트레일블레이저와 트랙스에 적용되는 모듈형 전륜구동 아키텍처 VSS-F 플랫폼이 차세대 말리부 생산에도 쓰일 전망이다. 결국 GM이 선언한 전동화 전략의 내용과 상반되게 내연기관이 탑재된다는 것으로 풀이 가능한데, GM Authority는 차세대 말리부에 전동화 모델도 추가 출시할 것으로 예상했다. 이렇게 되면 2025년에 등장할 말리부는 투트랙 모델이 될 가능성이 클 것으로 보인다.
한편 독일 완성차 브랜드 폭스바겐도 올해 전동화 전략 가속화 보고서를 공개하고, 전동화 시장을 섭렵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2030년까지 유럽에서 판매되는 모델의 80%, 북미 시장 55% 이상을 전기차로 대체할 계획이다.
이러한 폭스바겐의 비전이 시장에 유효한 모양새다. 폭스바겐은 2022년 글로벌 전기차 판매량 약 33만 대를 기록하며, 전년 대비 23.6%의 판매량 증가세를 나타냈다. 이를 통해 영업이익 26억 유로(약 3조7000억 원)으로 전년 대비 3.6%가량 올랐다.
폭스바겐은 이 흐름을 증폭시키기 위해 아테온(Arteon)·파사트(Passat) 등 두 종 세단 단종을 암시했다. 토마스 셰퍼(Thomas Schäfer) 폭스바겐 CEO는 ”아테온 대신 다른 핵심 모델에 집중할 것“이라고 밝혔고, 파사트를 겨냥해 ”지난해 유럽에서 가장 많이 판매된 중형 세단을 단종하겠다“고 말했다.
실제로 아테온은 지난해 미국 시장에서 1742대가 팔려 전년 대비 69% 판매량 감소 수치를 보였다. 올 1분기에는 전 세계 판매량 528대만이 판매돼 실적 부진이 거듭됐다. 아테온은 내년 중 생산이 마무리될 전망이다. 파사트의 명확한 단종 정보는 아직 공개되지 않았다.
헬로티 최재규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