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단 헬로티]
④ 에너지 전환에 맞선 원자력산업 대응전략
노동석 에너지경제연구원 원자력정책연구실장
원전 산업이 변화의 기로에 섰다. 문재인 정부는 40년 후 원전 제로 국가를 지향점으로 삼고, 탈원전 로드맵을 추진 중이다. 문 정부는 노후화된 원전을 폐쇄하고, 신규 원전 설립은 백지화해 점차 원자력 발전의 비중을 축소하겠다고 밝혔다. 폭염이 한반도를 강타한 후 전기요금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르면서 탈원전 정책의 옳고 그름이 논란의 중심에 섰다. 탈원전이 맞느냐 틀리느냐도 논의할 대상이지만, 그다음도 생각할 필요가 있다. 이에 ‘에너지포럼 2018’에서 원전산업 현황과 향후 전망을 제시한 노동석 에너지경제연구원 원자력정책연구실장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난관 봉착한 원전산업
원전산업이 울상이다. 2010년 95.7% 이용률을 자랑했던 원전은 2018년 1월 58.4% 이용률에 그쳤다. 정상 단가도 계속 하락 중이다. 2016년 kWh당 68.03원이었던 원전 비용은 2017년에는 60.76원에 그쳤다. 여기에 탈원전 정책이 겹쳤다. 신규원전 건설이 중단된다는 소식이 들리고, 안전규제가 강화됐다. 원전 사후처리비 재산정으로 인한 비용 상승도 예상된다.
원전산업이 변화 앞에 섰다. 탈원전 정책의 옳고 그름을 떠나 에너지전환 흐름에 맞춰 원전산업이 살길을 찾아야한다. 하지만 원전산업의 변화 역시 쉽지 않다. 노동석 에너지경제연구원 원자력정책연구실장은 “에너지전환 정책에 맞춰 원전해체, 사용후핵연료 처리, 원전 수출 등 활로를 모색해야 하지만, 현실은 어렵다”고 지적했다.
2030년까지 국내 원전 중 12기가 설계수명이 만료된다. 이중 첫 시작으로 고리 1호기가 해체를 앞두고 있다. 고리1호기는 미국과 독일, 프랑스 등 대부분 국가가 택한 ‘즉시 해체’ 방식이 채택될 가능성이 높다. 고리 1호기를 해체하기 위해서는 해체계획서 마련과 승인, 사용후핵연료 냉각 및 반출, 시설물 해체, 부지복원 등의 작업이 필요하다. 이 작업을 진행하는 데에는 총 15년 6개월이 소요돼 고리 1호기가 완전히 해체되는 날은 2032년 말이 될 전망이다. 고리 1호기 해체는 한국수력원자력(이하 한수원)이 총괄 관리하고, 해체공사는 전문업체가 시행할 계획이다.
고려 1호기 해체는 국내 산업체에 의해 국내 기술로 수행할 계획이지만, 과연 이를 실현할 수 있을지가 미지수다. 노동석 실장은 “원전해체에 필요한 핵심 기반 기술은 총 38개다. 그런데 우리는 이 중 27개 기술만 확보한 상태다”라며 “전반적으로 우리가 가진 대다수 핵심기술은 선진국 대비 70%에서 80% 수준으로 평가된다”고 말했다.
▲ 노동석 에너지경제연구원 원자력정책연구실장
사용후핵연료 처리 어떡하나?
원전에서 사용한 후 발생한 핵연료 처리도 문젯거리다. 국내에서 사용 후 나오는 핵연료 발생량은 매년 750톤이다. 2017년 3분기까지 약 16,000톤의 사용 후 핵연료가 발생했다. 여기서 사용후핵연료는 원자력 발전 연료로 사용되고 난 후의 핵연료 물질을 의미한다. 이 물질은 열과 방사능 준위가 높은 고준위 폐기물이다. 고준위폐기물은 일정 기간 수조에 저장한 후 건식 저장해 지하 500m 내외 처분장에 처분하는 ‘직접 처분’ 방법과 3% 정도의 핵분열생성물은 분리 후 영구처분하고, 나머지는 연료로 재활용하는 ‘재활용’ 방법이 있다. 문제는 우리나라의 경우 직접처분이나 재활용 중 결정된 정책 방향이 없다는 데 있다. 노동석 실장은 “미국과 스웨덴, 핀란드, 독일, 스페인 등이 국가는 직접처분 방식을 택하고 있고, 영국과 프랑스, 러시아, 일본은 재활용 방식을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은 아직 정해진 방향이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월성원전 2019년, 고리와 한빛원전 2024년부터 소내저장용량 포화가 예상된다”며 “부족한 저장공간 확보에도 힘써야 한다”고 밝혔다.
지난 정부의 사용후핵연료 공론화위원회는 사용후핵연료 처분장 부지 선정 및 운영 전까지는 원전부지에 임시저장 시설을 확충하기로 결정했다. 핵연료 공론화위원회는 ‘고준위방사성폐기물 관리 기본계획’을 발표하며, 12년 동안은 처분시설용 부지 선정, 이후 14년 동안은 지하연구시설건설 및 실증 연구를 진행해 10년간 처분장을 건설, 2053년부터 처분시설을 운영하기로 했다. 또한, 폐기물 처분량 감소, 관리 기간 감소, 처분장 크기 감소 등을 위해 폐기물 재활용 기술 연구도 시행하기로 했다.
▲ 에너지 전환에 맞서 원자력산업 대응이 필요해졌다.
탈원전 정책이 가져오는 나비효과
현재 원전산업이 가장 관심을 가지는 분야는 아무래도 수출이다. 2009년 이후 원전 수출 현황은 한국이 4기, 러시아 24기, 중국 9기, 일본 9기, 프랑스 2기다. 한국은 사우디아라비아 원전 수주전에 참여하는 등 해외 원전 수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이미 체코와 우크라이나는 한수원과 원전건설 MOU를 체결했고, 폴란드와 슬로바키아, 남아공, 베트남 등도 한국 원전 도입을 검토 중이다.
노동석 실장은 “한국 원전산업은 UAE 수출 실적과 국내원전의 높은 이용률, 건설·운영 전 단계에 걸친 자체 공급망 보유, 가격경쟁력 등 강점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노 실장은 “강점이 있으면 약점이 있듯, 한국 원전산업은 수출 노형 및 기술의 제한성, 파이낸싱·핵연료 재처리 기술 제공 등의 한계, 공격적 수주전략 구사가 어려운 수출 추진체계를 겪고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 7월 25일, 한전은 영국 무어사이드 원전 수출 협상의 우선협상대상자 지위를 상실했다. 그러자 일부 언론에서는 한국 정부의 탈원전 정책이 원전 수출을 가로막았다고 보도했다. 이에 산업부에서는 “1980년 이후 자국에 원전을 짓지 않은 미국도 인도, 사우디 등에 원전을 수출하고 있다”면서 탈원전 정책과 원전 수출은 관계가 없다고 선을 그었다.
탈원전 정책이 원전 수출의 장애물은 되지 않더라도 앞으로 원전산업 발전에 영향을 끼칠 것은 분명하다. 노 실장은 “신규원전 건설 중단으로 국내 원전 공급망과 신규 인력 수요에 차질이 불가피할 전망”이라면서 “설계 분야인 시공, 주기기, 보조기기 분야 수요가 없는 상태고, 운영부분에서도 가동, 정비, 설비개선 분야가 지속적·점진적으로 감소하는 추세이며, 해체·방폐물 관리 또한 점진적 증가 후 감소가 예상된다”고 지적했다.
노 실장은 인력수요 역시 신고리 5·6 건설 완료 및 가동 원전 중지가 시작되는 2022년 이후 급감할 것으로 전망했다. 그는 “설계, 연구직 수요가 대폭 줄어들 것으로 보이며 해외사업 규모에 따라 감소세가 다소 완화될 것”이라며 “원자력 분야 채용 규모 축소 및 전공 기피로 장기적인 인력공급 양과 질이 악화될 것으로 우려됨에 따라 타 분야 경력전환 유도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 에너지전환 정책에 맞춰 사용후핵연료 처리 문제 등을 해결할 필요가 있다. <사진제공 : 한국원자력환경공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