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트로픽(Anthropic) 등 인공지능(AI) 기업들이 모델 학습에 사용할 데이터를 확보하기 위해 종이책을 대량으로 구매한 뒤 책을 해체해 스캔하고 원본을 폐기한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시민사회단체들은 이 같은 관행이 다른 AI 기업의 학습자료 접근을 어렵게 만들어 시장 경쟁을 저해할 수 있다며 미 연방거래위원회(Federal Trade Commission·FTC)에 조사를 촉구했다.
미국 인터넷 매체 액시오스(Axios)가 지난 21일 공개한 FTC 제출 서한에 따르면 디맨드 프로그레스 에듀케이션 펀드(Demand Progress Education Fund), 미국소비자연맹(Consumer Federation of America), 지역자립연구소(Institute for Local Self-Reliance) 등 10여 개 시민·소비자단체는 AI 기업들의 서적 대량 구매와 스캔·폐기 관행이 불공정 경쟁에 해당하는지 조사해 달라고 요구했다.
AI 기업들이 종이책에 주목하는 것은 고품질의 학습 데이터를 대규모로 확보하기 위해서다. 특히 생성형 AI가 본격적으로 확산하기 전 출간된 책들은 AI가 생성한 문장이 섞여 있을 가능성이 낮고, 인간 저자와 편집자의 검증을 거친 장문의 텍스트라는 점에서 AI 모델 학습용 자료로 가치가 높다고 평가된다.
실제 AI 기업 앤트로픽은 AI 학습 데이터를 구축하기 위해 수백만 권의 종이책을 구매한 뒤 디지털화한 사실이 법원 자료를 통해 알려졌다. 이른바 ‘프로젝트 파나마(Project Panama)’를 추진하면서 책의 제본 부분을 잘라 페이지를 낱장으로 분리한 뒤 스캔했으며, 디지털화가 끝난 실물 책은 폐기했다.
스캔한 자료는 앤트로픽의 AI 모델과 챗봇 클로드(Claude)의 학습 등에 활용됐다. 미국 법원은 앞서 앤트로픽이 합법적으로 구매한 책을 디지털화해 AI 학습에 사용하는 것 자체는 저작권법상 공정 이용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시민사회단체들이 이번에 문제를 제기한 지점은 저작권과는 다르다. AI 기업이 책을 구매해 학습에 사용하는 것을 넘어 스캔을 마친 실물 원본까지 없애버릴 경우, 경쟁 기업이 동일한 자료를 확보할 가능성도 함께 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절판됐거나 유통되는 물량이 극히 적은 희귀 서적의 경우 문제가 더 커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자본력이 큰 AI 기업이 남아 있는 책을 먼저 대량으로 사들인 뒤 폐기하면 이후 시장에 진입하는 경쟁사는 해당 자료를 구하지 못하거나 훨씬 높은 비용을 부담해야 할 수 있다.
시민단체들은 이러한 ‘사재기 후 파기(hoard-and-destroy)’ 방식이 기존 대형 AI 기업에 유리한 구조적 장벽을 만들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단순히 데이터를 많이 보유하는 것을 넘어 다른 업체가 같은 원천 데이터에 접근할 기회 자체를 줄일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에 따라 이번 논쟁은 AI 학습 데이터를 둘러싼 쟁점이 저작권에서 반독점·경쟁법 영역으로 확대될 수 있다는 점에서도 주목된다. 시민단체들은 해당 관행이 FTC법 제5조가 금지하는 ‘불공정한 경쟁 방법’에 해당할 가능성이 있는지 당국이 살펴봐야 한다고 요구했다.
디맨드 프로그레스 에듀케이션 펀드 특별고문 케이트 오(Kate Oh)는 “AI 기업들이 방대한 규모로 책을 사들여 스캔하고 파기한 뒤 그 텍스트를 외부에서 접근할 수 없는 사유 데이터베이스에 보관하고 있다는 신뢰할 만한 보도가 있다”며, “이러한 행위가 경쟁사의 비용을 높이고 시장에서 경쟁할 능력을 떨어뜨리는지 FTC가 조사해야 한다”고 밝혔다.
헬로티 이동재 기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