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테크가 에너지의 생산과 전환, 활용 방식을 바꾸는 현장을 조망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물에서 청정 연료를 만드는 그린수소, 시민의 발걸음을 전기로 바꾸는 에너지 하베스팅, 재생에너지 시대 전력망을 안정화하는 그리드포밍 기술이 각각 생산, 전환, 활용 단계의 기술로서 소개됐다.
현대차 정몽구 재단은 2일 서울 온드림 소사이어티에서 그린 소사이어티 공개 대중 강연 시리즈 ‘에너지 트릴로지’를 열고, 기후테크 기반 미래 에너지 시스템의 가능성을 열어보였다. 올해 행사는 ‘기후테크가 바꾸는 에너지의 생산·전환·활용’을 주제로, 기후위기 대응 기술이 연구실 안의 가능성을 넘어 산업 현장과 도시 인프라, 전력망으로 어떻게 확장되고 있는지 살펴보는 자리로 마련됐다.
행사는 신방실 KBS 기상전문기자의 진행으로 시작됐다. 신 기자는 “기후위기라는 문제가 먼 미래의 경고가 아니라는 것을 현장에서 매일 체감하고 있다”며 “이제는 위기라고 말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어떤 기술이 산업과 도시, 우리의 일상으로 이어지고 있는지 확인하는 일이 필요하다”고 행사의 문을 열었다.
이날 프로그램은 강수일 UN 기후기술센터·네트워크(CTCN) 부소장의 키노트 강연과 그린수소·에너지 하베스팅·그리드포밍 분야 패널 토론으로 구성됐다.
CTCN은 유엔기후변화협약 체계에서 기후기술 개발과 이전을 지원하는 국제 협력 플랫폼이다. 강수일 부소장은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기후기술 혁신 및 협력’을 주제로 한 강연을 통해 기후기술이 개발도상국 현장에 안착하기 위해서는 기술 자체뿐 아니라 재원, 제도, 현지 수용성이 함께 갖춰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기술을 가진 기업이 이익을 창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가장 기본적으로는 기후위기가 일어나는 곳에서 내 기술로 문제를 해결해보고 싶다는 의지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강 부소장은 CTCN의 기술 지원 사업이 단순한 장비 이전에 그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현지 정부의 수요를 바탕으로 제안서를 받고, 이해관계자가 참여하는 운영위원회를 구성하며, 사업 이후 확산 가능성을 고려해 후속 재원과 역량 강화 프로그램을 함께 설계한다는 것이다. 그는 “기술이 들어가 개발되거나 이전되기 위해서는 로드맵과 국가 전략 같은 가능 여건을 만드는 일이 중요하다”고 소개했다.
그린수소 생산비 낮추는 나노촉매 기술 주목
이어진 패널 토론에서는 에너지 전환을 구성하는 세 가지 축이 소개됐다. 첫 번째는 ‘생산’이다. 에코하이드로팀을 이끄는 유성종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수소연료전지연구단장은 물에서 그린수소를 생산하는 수전해 촉매 기술을 설명했다. 그린수소는 태양광·풍력 등 재생에너지로 물을 분해해 생산하는 수소로, 생산 과정에서 탄소 배출이 거의 없다는 점에서 차세대 청정 연료로 꼽힌다.
유 단장은 그린수소 상용화의 핵심 과제로 경제성을 들었다. 특히 수전해 장치에 들어가는 이리듐 촉매의 가격과 공급량이 병목이 될 수 있다고 봤다. 이리듐은 수전해 반응에 필요한 핵심 촉매지만 매장량과 생산량이 제한적이다. 유 단장은 “수소를 kg당 2,000원 수준까지 낮추려면 재생에너지 가격을 낮추는 것과 함께 수전해 스택 가격을 낮춰야 한다”며 “그 안에서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이리듐 촉매 가격”이라고 말했다.
그가 소개한 해법은 이리듐을 더 적게 쓰면서도 성능을 높이는 나노촉매 기술이다. 반도체 공정에 쓰이는 스퍼터링 기술을 활용해 이리듐을 원자 단위에 가깝게 분산시키고, 촉매 표면적을 넓혀 사용량을 줄이는 방식이다. 유 단장은 “기존 촉매 대비 이리듐 사용량을 크게 줄일 수 있다”며 “그린수소 전환 생태계를 앞당기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발걸음을 전기로 바꾸는 에너지 하베스팅, 도시 인프라로 진입
두 번째 축은 ‘전환’이다. 성태현 휴젝트 CTO는 도시와 일상 속에서 버려지는 에너지를 전기로 바꾸는 에너지 하베스팅 기술을 소개했다. 휴젝트가 개발한 에너지 블록은 보행자가 밟을 때 발생하는 압력과 움직임을 전기에너지로 전환하는 자가발전 보도블록이다.
성 CTO는 “도시는 전 세계 면적의 일부에 불과하지만 에너지 소비와 탄소 배출의 대부분이 도시에서 일어난다”며 “도시 안에서 분산전원으로 만들 수 있는 기술이 무엇인지 고민한 결과 에너지 블록을 개발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에너지 하베스팅을 “일상에서 버려지는 미활용 에너지를 수확해 전기에너지로 바꾸는 친환경 기술”이라고 소개했다.
휴젝트의 에너지 블록은 단순히 전기를 만드는 장치에 머물지 않는다. 보행자가 지나가며 만든 전기는 조명, 안내 표시, 광고, 겨울철 열원 등으로 활용될 수 있다. 성 CTO는 “그냥 걷는 일상 자체가 기후 행동에 참여하는 방식이 될 수 있다”며 “도시 곳곳의 보행로가 스스로 에너지를 만들고 데이터를 생산하는 능동적 인프라로 바뀔 수 있다”고 말했다.
현장 적용 과정에서 가장 큰 과제는 내구성이었다. 실험실에서는 높은 발전 성능을 보였더라도, 실제 보도 환경에서는 반복 하중과 온도 변화, 방수·방진 조건을 견뎌야 한다. 성 CTO는 광명동굴, 강남 양재천 산책로, 평택 농업생태원 등 적용 사례를 소개하며 “현장에서 문제를 확인하고 방수 기술을 업그레이드했다”고 설명했다.
재생에너지 확대의 관건은 전력망 안정화
세 번째 축은 ‘활용’이다. 강지성 한국그리드포밍 대표는 재생에너지 확대에 따라 전력망 안정화 기술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태양광과 풍력은 발전량이 날씨와 시간에 따라 달라지는 만큼, 전력망의 전압과 주파수를 일정하게 유지하는 기술이 뒷받침돼야 한다.
강 대표는 전력망을 인체에 비유했다. 그는 “사람이 혈압과 맥박이 일정해야 건강을 유지하듯 전력망도 전압과 주파수가 일정해야 안전하게 전기를 사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기존 전력망에서는 화석연료 기반 발전기가 회전기를 통해 전압과 주파수를 잡아주는 역할을 해왔다. 하지만 재생에너지 비중이 커지면 이런 안정화 기능이 약해질 수 있다.
그리드포밍 인버터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기술이다. 재생에너지 설비가 기존 전력망의 전압과 주파수를 따라가는 데 그치지 않고, 스스로 기준 전압과 주파수를 형성해 전력망 안정성에 기여하도록 하는 방식이다. 강 대표는 “전력변환장치가 안정성을 제공할 수 있으면 꼭 화석연료 발전설비에 의존하지 않고도 더 많은 재생에너지를 전력망에 수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강 대표는 제주 지역 태양광 발전소의 출력제어 저감 사례와 광양항 마이크로그리드 구축 사례도 소개했다. 강 대표에 따르면 제주 지역의 한 태양광 발전소는 2023년 28차례 출력제어를 겪었지만, 그리드포밍 인버터 적용 이후 이듬해 출력제어 횟수가 두 차례로 줄었다. 광양항 간척지에서는 태양광과 풍력으로 구성된 100% 재생에너지 마이크로그리드에 그리드포밍 인버터를 적용했다.
이날 토론에서는 기술 확산을 위한 제도와 시장의 역할도 주요하게 다뤄졌다. 강 대표는 그리드포밍 기술이 널리 확산되기 위해서는 전력시장 안에서 안정화 서비스에 대한 보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좋은 기술이라는 이유만으로는 제품화와 산업화가 이뤄지기 어렵다”며 “그리드포밍 성능에 대해 전력시장에서 보상하는 보조서비스 상품이 필요하다”고 했다.
수소 분야에서는 전주기 생태계 구축과 정책의 일관성이 과제로 제시됐다. 유 단장은 수소 생산, 저장, 운송, 활용이 함께 갖춰져야 수소경제가 작동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그린수소 생산 비용을 낮추는 촉매 기술과 함께 저장 기술도 중요하다”며 “정부의 지원 정책이 일관되게 이어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강연 후에는 청년 창업과 미래 인재에 대한 조언도 이어졌다. 유 단장은 수소 저장 기술을, 강 대표는 분산형 전력망과 직류 배전망, 에너지 저장 기술을 향후 도전해볼 만한 분야로 꼽았다. 성 CTO는 이미 양산 중인 에너지 블록의 확산 가능성을 언급하며 현장형 비즈니스 기회를 강조했다.
한편 강연 행사에는 학생, 연구원, 일반인 등 각계 다양한 연령의 사람들이 참여해, 강연 후에도 강연자들에게 질문을 던지는 등 적극적인 교류를 이어나갔다. 현대차 정몽구 재단은 그린 소사이어티 프로그램을 통해 기후테크 연구팀의 기술개발과 사업화, 네트워킹을 지원하고 있다.
헬로티 이동재 기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