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 현장, 물류 창고, 개발자로 가득 찬 회의실—아직도 많은 산업 현장에서 여성은 소수입니다. 하지만 그 안에서 묵묵히, 때로는 거침없이 자기 자리를 만들어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녀에게 듣다’는 남성이 다수인 업계에서 활약하고 있는 여성들을 매달 한 명씩 만나, 그들의 솔직한 이야기를 듣는 인터뷰 시리즈입니다. 거창한 성공담이 아니라, 현장에서 부딪히고 배우며 성장해온 진짜 이야기를 전합니다. 세 번째 주인공은 AI 교육 전문기업 에이블런의 박진아 대표입니다.
인터뷰 내내 그녀의 말에는 군더더기가 없었다. 질문이 끝나기도 전에 핵심을 짚었고, 복잡한 비즈니스 구조를 한 문장으로 정리했다. AI 교육 전문기업 에이블런의 박진아 대표. 교육학과 언론정보학을 전공한 비전공자가, 어떻게 AI 교육 시장의 플레이어가 됐을까. 22살에 사회생활을 시작해 29살에 창업한 그녀의 이야기를 들었다.
22살, 학교를 다니면서 회사를 다닌 이유
박진아 대표의 커리어는 빨랐다. 교육학과 언론정보학을 복수 전공하면서, 학부 4학년 1학기에 인턴으로 들어간 PR 회사에서 그대로 정직원이 됐다. 학교와 회사를 동시에 다닌 것이다. “학부에서 배우는 건 오래된 이론의 큰 구조였어요. 공모전이나 대외 활동도 너무 제한적이고. 차라리 빨리 부딪혀 보면서 진하게 경험하고 싶었죠.”
PR 회사에서 잡지 기자로, 다시 인하우스 마케팅으로, 그리고 스타트업 사업팀장으로. 그녀의 커리어는 계획이 아니라 흐름이었다. “사전에 계획해서 움직이기보다는 해보니까 이런 길도 있네 하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잡았어요. 의식의 흐름대로 온 거예요.”
창업 6개월 만에 투자, 그리고 코로나
29살에 창업한 에이블런의 첫 사업 모델은 지금과 달랐다. 공유 교육장 사업이었다. 교육장이 없는 기관이나 기업에게 셋업된 교육 공간을 운영자와 함께 제공하는 모델로, 전국 30여 곳의 파트너 지점을 확보했다. 3개월 만에 손익분기점을 넘겼고, 6개월 만에 시드 투자를 받았다.
그런데 투자 계약서에 사인하던 날, 옆에 놓인 뉴스 화면에 코로나 첫 확진 소식이 흐르고 있었다. “감기겠죠, 하면서 사인했어요.” 대면이 불가능해지면서 공유 교육장 모델은 멈췄다. “곧 끝나겠지”라는 기대로 5개월을 버텼다. 결국 그녀는 교육장 모델을 통째로 버리고, 온라인 교육으로 전면 전환했다.
“생각대로 되는 게 없다를 처음 느낀 순간이었어요. 그때부터 무조건 자체 이윤을 내는 탄탄한 기업이 되자는 생각으로 바뀌었죠.” 코로나가 오히려 IT·AI 교육 수요를 폭발시켰고, 그녀는 그 흐름을 빠르게 캐치해 기업 교육과 정부 교육 시장에 뛰어들었다.
어린 대표라서 겪는 것들, 그리고 멘탈 관리법
20대에 창업한 스타트업 대표가 겪는 현실을 물었다. 그녀는 담담했다. 미팅 자리에서 “대표 맞냐”는 질문을 수없이 들었고, 전 직장에서 팀장을 달았던 20대 후반에도 마찬가지였다. “나이가 어려 보인다는 이유만으로 처음부터 신뢰를 얻기 어려운 상황이 분명히 있어요. 그게 억울하다기보다는 그냥 내가 해결해야 할 조건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녀가 찾은 방법은 단순했다. 중요한 미팅에는 연차가 있어 보이는 직원을 함께 데려가 첫인상의 신뢰를 보완했다. 상황을 바꾸려 에너지를 쓰는 대신, 같은 결과를 만드는 다른 경로를 찾은 것이다. “바꿀 수 없는 것에 상처받는 건 제 손해예요. 어쨌든 되게 만드는 게 중요한 거죠.” 20대 중반부터 생긴 방어 기제가 30대를 넘기면서 점점 단단한 실용주의로 자리잡았다.
비전공자이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
에이블런은 현재 AI 교육 시장에서 독특한 포지션을 차지하고 있다. 분당서울대병원 전 직원 AI 교육, 천주교 전국 단위 교육, 삼성·현대 계열사 해커톤까지. 교육업을 ‘콘텐츠업’이 아닌 ‘서비스업’으로 정의하는 것이 핵심이다.
“저 자체가 비전공자예요. 그래서 처음부터 노코드로 할 수 있는 AI 교육, 모든 사람이 이해할 수 있는 쉬운 교육을 지향했어요. 다른 AI 교육 회사들이 개발자 교육이나 파이썬 코딩부터 시작했다면, 저희는 비전공자를 위한 입문용 콘텐츠부터 만들었죠.” 교육을 받는 사람이 진짜 자기 것으로 만들 때까지 케어하는 것. 그것이 에이블런의 경쟁력이라고 그녀는 말했다.
“감정을 너무 오래 외면했더니, 한 번에 터지더라고요”
취미를 물었더니 의외의 대답이 돌아왔다. “올해 처음 만들었어요.” 사업과 박사 학위를 동시에 병행하던 시간이 길었다. 주변 동료들이 평균 6−7년이 걸린다는 박사 학위를, 그녀는 사업 일정에 맞춰 극도로 압축해 2년 반 만에 끝냈다. 잠을 줄이고 모든 루틴을 최적화해서 만든 시간이었다. 박사과정이 끝나고 나서야 비로소 자기 자신을 돌아볼 여유가 생겼다.
심리 상담에서 “취미를 만드셔야 할 것 같다”는 말을 듣고 최근 운동을 시작했다. 매일 러닝머신과 계단 오르기를 한다. 단, 그녀답게 극한까지 한다. “적당히는 안 돼요. 땀이 나고 아무 생각이 안 들 때까지 해야 스트레스가 풀려요.” 이동 시간에는 오디오북이나 강연을 틀어놓는다고 했다. “강박이 있어요. 한 번에 하나만 하는 걸 못해서요.”
“쉬운 길에는 아무도 태클을 안 걸어요”
창업을 꿈꾸거나 남초 업계에 도전하려는 여성들에게 전하는 메시지를 물었다. 그녀는 잠시 고민하더니, 회사 인턴의 이야기를 꺼냈다.
“저희 인턴 친구가 남들보다 훨씬 치열하게 일을 했는데, 주변 친구들이 왜 그러냐고 했대요. 그 친구가 한 말이 인상적이었어요. ‘고3 때 좋은 대학 가려고 그렇게 노력하는 건 당연하다고 하면서, 왜 사회에 나와서 더 좋은 내가 되려고 노력하는 건 이상하다고 하느냐’고요. 저는 그게 너무 맞는 말이라고 생각해요.”
그녀는 덧붙였다. “지금 힘들고 태클이 많이 온다면, 그만큼 더 괜찮은 곳에 가고 있는 거라고 생각하세요. 쉬운 길에는 아무도 관심을 안 가져요.”
Mini Profile
박진아 | 에이블런 대표 | MBTI: INTP
“다들 J일 줄 알아요. 그런데 극P예요. 계획이 없어야 오히려 뭐든 받아들일 수 있거든요.”
다음 호에서 또 다른 업계의 그녀를 만나봅니다.
헬로티 김재황 기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