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데이터센터 전력실의 이슈는 정전 순간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업계는 이보다 더 자주 문제를 만드는 것을 ‘부하 요동’이라고 지목한다. 수많은 그래픽처리장치(GPU)를 결집한 연산 인프라, 즉 ‘GPU 클러스터(GPU Cluster)’가 들어선 랙(Rack)은 기존 범용 서버 중심 설비와 다른 전력 요구사항이 있다.
특히 인공지능(AI) 학습·추론이 반복되는 데이터센터와 같은 환경에서는 전력 소비 패턴이 비정형적으로 변한다. 이로 인해 순간적으로 치솟았다가 급격히 내려앉는 ‘연산 부하’, 그에 따라 발생하는 ‘고조파(Harmonics)·발열’, 상위 전원단으로 전이되는 ’계통 부담‘ 등이 동시다발적인 연쇄 반응으로 나타난다.
이 배경에서 데이터센터가 우후죽순 구축되면서 랙당 전력 밀도가 한계를 경신하고 있다. 그럴수록 ’무정전전원장치(UPS)‘의 용량 산정과 운전 전략 역시 과거의 ‘평탄 부하’ 전제에서 빠르게 이탈하고 있다. 과거의 평탄 부하가 전력 수요의 등락이 크지 않은 안정적인 상태를 의미했다면, 이제는 GPU 연산량에 따라 전력이 널뛰는 ‘비정형 부하’가 표준이 됐다는 뜻이다.
이러한 이탈은 UPS 설계를 기존 ‘정전 대비용’에서 ‘실시간 전력 요동 흡수용’으로 근본부터 다시 쓰게 만든다. UPS는 이러한 변화 앞에서 위상을 재정립하는 중이다. 한때 정전 시 찰나를 버텨주던 후방 지원 장비에서, 데이터센터와 반도체 공장 등 무결성(Integrity)이 핵심인 현장 내 ‘핵심 전력 자산’으로 위치가 바뀌고 있다는 뜻이다.
여기에 UPS에 대한 시장 기대도 전환되고 있다. 단순히 필요 용량으로 가치를 산정하던 과거에서 벗어난 확장된 시각인데. 고밀도 부하를 견디는 ‘내구성’, 유지보수 과정에서 작업자의 안전을 지키는 ‘안전성’, 효율 1%의 차이가 10년 총소유비용(TCO)에 미치는 ‘무게감’ 등을 따지기 시작한 것이다.
이처럼 시장이 비용·안전에 민감해진 이유가 있다. 우선 경제적 측면에서 UPS의 효율 손실은 막대한 전기요금과 이를 식히기 위한 냉각 비용의 동반 상승이라는 ‘비용 연쇄 작용’을 일으키기 때문. 여기에 기술적 리스크도 가중된다. 특히 AI 워크로드 특유의 급격한 피크 부하를 제어하지 못할 경우, 배터리 수명 단축은 물론 전력 계통 전체의 안정성까지 흔드는 리스크로 번진다는 게 업계 분석이다.
이에 따라 전원이 살아있는 상태에서의 안전한 모듈 교체와 높은 전력 보호 성능의 양립은 필수 조건이 됐다. AI 랙에서 촉발된 이 기준은 UPS 시장 전체의 패러다임을 압박하고 있다.
후방 지원에서 전방 사수로...위상 바뀐 데이터센터의 파수꾼 ‘UPS’
이 지점에서 글로벌 에너지 관리 및 산업·공장 자동화(FA) 솔루션 업체 ‘슈나이더일렉트릭(이하 슈나이더)’이 AI 데이터센터의 전력 질서를 다시 쓰겠다는 포부로 핵심 기술 카드를 꺼내 들었다. 이들이 제시한 답안지는 두 갈래다. 무중단 유지보수 기술 ‘라이브 스왑(Live Swap)’과 고효율 운전 솔루션 ‘이컨버전(eConversion)’이다. 이들 기술은 ‘운영 연속성’과 ‘에너지 효율’이라는 AI 시대의 데이터센터 요구하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기 위한 슈나이더의 핵심 아키텍처다.
이 중 라이브 스왑은 전원이 살아있는 상태에서도 작업자 안전을 보장하면서도 모듈 교체를 지원하는 기술이다. 이컨버전은 보호 성능을 유지하는 동시에 에너지 손실을 저감하는 솔루션으로 주목받고 있다.
정인영 슈나이더 시큐어파워 사업부 매니저는 프리세일즈 엔지니어로 활약하고 있다. 그는 프로젝트 입찰 이전 단계에서 사용자 기술 요건을 분석하고 최적 솔루션을 제안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담당 범위도 대형 3상(3-Phase) UPS부터 배터리·STS(Static Transfer Switch) 등을 포함한 전력 연속성 영역 전반을 다루고 있다.
이 가운데 그가 먼저 짚은 변화는 UPS를 보는 사용자 관점의 이동이다. 정 매니저는 UPS에 대해 “이전에는 정전 시 잠깐 버텨주는 보조 장비 인식이 강했다면, 지금은 데이터센터 전력 인프라의 전략 자산으로 재정의되는 중”이라고 설명했다.
그 배경에는 AI·머신러닝(Machine Learning) 워크로드 확산을 꼽았다. 전력 밀도가 올라가면서 사용자는 용량, 백업 시간 대신 효율, 고조파 대응 능력, 운영 연속성 등을 함께 본다는 설명을 이었다. UPS 선택 기준 자체가 넓어진 셈이다.
“전원을 끄지 않아도 됩니다” 무중단 유지보수의 새로운 표준
사측이 제안하는 라이브 스왑(Live Swap)의 진가는 기존 핫스왑(Hot-swap)과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두 기술 모두 전원이 인가된 상태에서 모듈을 교체할 수 있다는 점은 동일하지만, 설계 철학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
Q: 기존 핫스왑 방식은 어떤 위험이 있나?
A: 핫스왑은 모듈을 분리한 뒤에도 슬롯(Slot)에 전압이 흐르고 있어, 작업자가 예기치 못한 ‘아크 플래시(Arc Flash)’, 다시 말해 전기 불꽃 폭발에 노출될 위험이 상존한다.
Q: 라이브 스왑은 이 위험을 어떻게 해결했는지.
A: 시스템 전체 전력 공급은 유지하되, 모듈을 빼내는 순간 해당 슬롯의 전원을 물리적으로 자동 차단하는 구조를 택했다. 여기에 고전류 단자를 별도 구획에 격리하고, 작업 구간에는 저전류 통신 단자만 배치했다.
Q: 실제 현장에서 체감하는 안전성에 대한 피드백 있을 것 같은데.
A: 아크 플래시 에너지를 1.2cal/㎠ 이하로 낮춰 별도의 개인보호구(PPE) 없이도 안전한 모듈 교체가 가능하다. 무거운 보호구나 복잡한 안전 절차가 생략되면서 장애 복구 시간(MTTR)이 단축된다. 동시에 작업 실수나 사고 위험도 낮아지도록 설계했다.
전환 공백 ‘제로’에 도전한다
슈나이더가 내세우는 또 다른 기술 체계인 이컨버전은 효율과 보호 성능 동시 달성에 초점을 맞췄다. 기존 에코(ECO) 모드는 효율 면에서는 유리하지만, 전원 이상 시 인버터 개입까지 순간적인 공백이 생길 수 있다는 한계가 있었다는 게 그 배경이다.
Q: 효율이 높으면 그만큼 전력 보호 성능이 떨어지는 것 아닌가?
A: 과거 에코 모드는 효율을 위해 인버터를 잠시 꺼두는 방식으로 활용됐다. 그러나 이컨버전은 인버터를 항상 가동하며 바이패스 전원과 병렬 운전하는 구조로 바꿨다. 평상시에는 에너지 손실이 거의 없는 ‘바이패스(Bypass)’ 경로로 전력을 공급해 99%의 고효율을 달성한다. 그와 동시에 인버터는 부하 상태를 실시간 감시해, 전력 품질을 보정하는 능동 필터 역할을 수행한다. 덕분에 전원에 갑작스러운 왜곡·정전이 발생하더라도, 전환 공백 없이 깨끗한 전력을 즉각 부하에 전달할 수 있다.
Q: 단순히 전원만 넘겨주는 수준인지.
A: 아니다. 인버터가 항상 깨어있기 때문에 능동 필터로서 고조파 전류와 역률까지 실시간으로 관리한다. 즉, 바이패스로 들어오는 전원의 불순물을 걸러내 전력 품질을 상시 최적화하는 것이다. 이것이 국제전기기술위원회(IEC)의 UPS 성능 분류 규격 'IEC 62040-3'에서 가장 높은 신뢰도를 의미하는 '클래스 1(Class 1)' 등급을 인증받은 비결이다.
Q: 96% 효율과 99% 효율, 실제 현장에서의 체감 차이 크지 않을 것 같다.
A: 메가와트(MW)급 데이터센터에서는 이 3%의 차이가 전기요금은 물론, 발생한 열을 식히기 위한 냉각 비용에까지 영향을 준다. 10년 누적 시 전기료 절감액이 UPS 구매 가격의 최대 3배에 이를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오는 이유다.
널뛰는 부하를 인위적으로 펴라...펌웨어가 개입하는 전력 평준화 전략은?
이 같은 AI 인프라 대응의 핵심은 급격한 부하 특성 변화에 있다. 정인영 매니저는 AI 데이터센터를 GPU 기반 부하가 점령한 환경으로 규정했다. 비교적 일정한 흐름을 보이는 범용 IT 부하와 달리, AI 학습 및 추론 부하는 순간적으로 치솟았다가 급격히 하락하는 피크(Peak)가 짧은 주기로 반복되기 때문이다.
랙당 100킬로와트(kW) 이상을 요구하는 초고밀도 AI 랙의 등장은 UPS 선정의 핵심 변수를 전력 밀도, 고조파, 변동성 대응력으로 트렌드를 전환시키고 있다.
정 매니저는 특히 펌웨어(Firmware) 기반 ‘평활화(AI Tolerant)’ 기능을 강조했다. 그는 “부하가 요동칠 때마다 배터리가 반복적으로 방전되면 배터리 수명이 급격히 줄어들고 상위 전원단에도 큰 부담을 준다”며 배경을 설명했다. 그러면서 “하드웨어 제원 경쟁만으로는 이러한 AI 부하를 감당하기 어렵고, 이제는 제어 로직과 펌웨어가 개입해 부하를 인위적으로 평탄하게 만드는 설계가 필수”라고 덧붙이며 진단했다.
슈나이더의 3상 UPS 라인어 ‘갤럭시(Galaxy)’ 시리즈의 차별점도 여기에 있다. 일반 UPS가 수동으로 전원을 공급하는 수준에 머물 때, 이컨버전 모드를 활용하는 갤럭시는 인버터를 상시 가동해 능동 필터로서 작동한다.
이를 통해 부하 측에서 발생하는 고조파가 전원 측으로 역류하는 것을 실시간 차단한다. 전력 품질을 능동적으로 관리함으로써 단일 장비의 이슈가 클러스터 전체 장애로 번지는 것을 막는 역할을 수행하는 셈이다.
구리 사용량은 줄이고 공간은 늘리고, 고전압 직류가 바꿀 '전력 풍경'
슈나이더의 차세대 로드맵 역시 AI 전환(AX)에 발맞춰 설계됐다. 정 매니저는 단기적으로 기존 교류(AC) 기반 인프라 안에서 ‘사이드카(Sidecar)’ 구조와 같은 전환 아키텍처가 가장 현실적인 해법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현재의 설비를 유지하면서도 고밀도 AI 랙을 빠르게 수용할 수 있다는 관점이다. 앞으로의 UPS는 고전력·고변동 AI 부하를 안정적으로 지지하는 핵심 전력 장치로 그 역할이 격상될 것임을 암시하는 부분이다.
덧붙여 정인영 매니저는 “중장기적으로는 800볼트(V) 직류(DC)를 포함한 고전압 직류 아키텍처가 데이터센터 설계의 중심축으로 부상할 전망이다. 전압을 높여 전류를 줄이면 배선 수, 구리 사용량, 공간 제약 등을 획기적으로 완화할 수 있어 초고밀도 AI 환경에서 그 장점은 더욱 극대화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러한 슈나이더의 갤럭시 전략은 현재의 AC 플랫폼에서 출발해 DC UPS, 나아가 분산 DC 아키텍처까지 단계적으로 확장 가능한 전력 인프라를 지향한다. 오늘의 데이터센터부터 내일의 ‘AI 공장(AI Factory)’로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징검다리를 놓겠다는 구상이다.
전원이 살아 있는 상태에서도 작업 구간을 안전하게 차단하는 설계, 효율·보호를 동시에 통합하는 운전 방식, GPU 부하의 순간 피크를 흡수하기 위한 제어 논리, AC에서 DC로 이어질 미래 전력 구조까지. 정전 대비 장비로 불리던 3상 UPS는 지금 AI 데이터센터의 전력 질서를 다시 쓰는 핵심 자산으로 기대받고 있다.
헬로티 최재규 기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