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95건. 국내 로봇 토털 솔루션 업체 브릴스가 지난 2020~2025년 수행한 로봇 프로젝트 숫자다. 매출·납품 실적만 남는다면 로봇 시스템통합(SI)은 프로젝트가 끝날 때마다 다시 출발해야 한다. 코스닥 입성을 앞둔 브릴스는 다른 답을 내놨다.
이들이 제시한 해법은 현장에서 얻은 경험을 ‘남기는’ 구조다. 제어·비전(Vision)·안전·공정 등 기술은 추후 재활용 가능한 모듈 형태로 두고, 작업 과정에서 발생하는 데이터는 피지컬 AI(Physical AI)의 학습 자산으로 전환해 나간다는 전략. 이러한 접근은 프로젝트 하나가 끝날 때마다 기술을 새로 만드는 대신, 이전의 현장 경험이 다음 로봇의 판단·행동을 고도화하는 재료로 이어지는 방식이다.
전진 브릴스 대표는 이제 그 축적의 범위를 인공지능(AI)까지 넓힌다고 공표했다. 원격 조작(Teleoperation)을 통해 작업 데이터를 확보하고, 모방 학습(Imitation Learning)과 온디바이스 AI(On-device AI)를 결합해 로봇이 현장을 인식·판단하는 수준까지 끌어올린다는 구상이다.
쉽게 말해, 사람이 로봇을 직접 조작하며 배운 작업 방식을 데이터로 남기고, AI가 이를 학습해 비슷한 상황에서 스스로 다음 행동을 선택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이때 판단에 필요한 AI 연산을 현장 내 로봇·장비 안에서 직접 수행하도록 해 반응 속도와 자율성을 높이는 것이 온디바이스 AI의 역할이다.
회사의 이번 기업공개(IPO)는 이렇게 쌓아온 현장 경험을 AI 자산으로 전환하는 흐름을 연구·실증·생산, 나아가 해외 사업까지 확장하기 위한 승부수로 풀이된다.
관건은 노하우·기술 재활용...브릴스가 쌓은 로보틱스 ‘레고 블록’
전진 대표가 이날 지목한 화두는 ‘로봇 시스템 개발’과 ‘현장 적용 기술’이다. 로봇 팔(Robot Arm) 자체의 성능이 아무리 뛰어나도, 실제 생산 라인 투입을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취급 대상물, 동선 설계, 기존 설치 장비 연동 유무, 안전 규격 준수 등 다각적인 현장 조건에 맞춰 시스템 전체를 재설계해야 하기 때문이다.
전 대표가 로봇을 자동차의 ‘엔진’에 빗댄 이유다. 사용자가 원하는 바는 엔진 자체의 성능 고도화가 아니라, 원하는 기능을 수행하는 ‘완성차’라는 설명이다.
문제는 이 과정이 사용자·현장이 바뀔 때마다 처음부터 반복될 수 있다는 점이다. 전 대표는 기존 로봇 SI 사업이 일회성 맞춤화(Customization)에 머물 경우, 프로젝트가 늘어날수록 연구개발(R&D) 비용과 인건비도 함께 증가한다고 진단했다.
이때 브릴스가 택한 방향은 반대다. 한 현장에서 개발한 기술을 다음 프로젝트에서도 꺼내 쓸 수 있도록 요소 단위로 나누고, 이를 다시 조합하는 식이다. 회사는 프로젝트가 반복될수록 개발 단가와 위험을 낮추고 기술을 비용이 아닌 자산으로 바꿀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전 대표는 이 구조를 ‘레고 블록(LEGO Block)’에 비유했다. 즉 필요한 기능 모듈을 자유롭게 조합해 현장 맞춤형 시스템을 신속하게 구축하는 방식으로 정의한 것. 자체 개발 로봇과 외부 제조사의 로봇 위에 제어·비전·안전·조립·측정 등 필요한 기능을 골라 얹고, 산업·공정에 맞춰 다시 하나의 솔루션으로 통합하는 방식이다.
다시 말해, 특정 로봇 기종에 맞춰 시스템 전체를 고정하는 대신, 필요한 로봇 하드웨어를 선택하고 기존 기술 모듈을 조합하는 식이다. 브릴스가 내건 ‘애니 로봇, 에브리 솔루션(Any Robot, Every Solution)’의 슬로건도 여기서 나온다.
이러한 모듈화 전략이 실제 사업 구조를 바꿨다는 근거로, 브릴스는 프로젝트의 ‘대형화’를 들었다. 전 대표에 따르면, 초기 수천만 원 수준이던 건당 프로젝트 규모는 최근 1억 원을 넘어섰다. 그는 기존 기술을 반복 활용하면서 개발 부담을 낮추고, 대신 여러 모듈을 결합한 더 큰 단위의 솔루션을 수주하는 구조로 바뀌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프로젝트가 늘어날수록 앞서 이미 확보한 기술을 다시 꺼내 쓸 수 있다”며 “한 번 개발한 기술을 비용으로 끝내지 않고 자산으로 바꾸는 것이 브릴스의 사업 모델”이라고 강조했다.
이 구조가 중요한 이유는 이들이 다음 성장 동력으로 내건 피지컬 AI(Physical AI)와도 맞물린다. 지금까지 재사용의 대상이 제어·비전·공정 등 기술 모듈이었다면, 앞으로는 프로젝트 과정에서 축적되는 현장 데이터까지 다음 시스템에 되먹이는 단계로 확장하려는 것이다.
‘레고 블록’에 끼운 AI...현장 데이터가 로봇의 판단으로
브릴스는 이러한 비전을 자동차 차량 내외장 작동·마감 품질 검사 솔루션을 통해 구체화했다. 작업자가 자리를 비운 뒤 자율이동조작로봇(AMMR), 즉 모바일 매니퓰레이터(Mobile Manipulator)가 차량 주변을 움직이며 버튼을 누른다. 이후 글로브박스를 열고, 조명과 도어핸들 등을 점검한다.
전 대표는 여기에 필요한 것은 정해진 궤적을 반복하는 자동화만이 아니라고 꼬집는다. 이동 중 주변을 인식하고, 검사 대상과 위치를 찾아낸 이후, 상황에 따라 다음 동작을 결정하는 것이 추가돼야 한다.
브릴스는 기존에 보유한 로봇·비전·제어 모듈에 이 같은 판단 기능을 얹는 방식으로 피지컬 AI 사업화를 추진하고 있다. 회사 측은 앞선 품질 검사 솔루션을 비롯한 피지컬 AI, 온디바이스 AI 플랫폼이 개념증명(PoC) 단계에서 실제 공급으로 들어갔다고 설명했다.
전 대표는 현재 자사 기술 수준을 두고 “이미 온디바이스 AI 기반 시각·언어(VL) 모델을 개발했고, 지금 행동(Action) 모델을 고도화하고 있는 중”이라고 밝혔다. 이어 “이는 시각 정보를 해석하는 모델에서 그치지 않고, 해석한 결과를 실제 로봇 행동으로 이어가고 있다”고 자사의 기술 확장에 대한 현황을 공유했다.
이러한 모델 개발을 뒷받침하기 위한 연산 인프라도 내부에 구축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전 대표는 자체 AI 데이터센터에 약 25억 원 규모의 투자를 진행 중이라고 언급했다. 거대언어모델(LLM)을 처음부터 학습하는 초대형 시설보다는 피지컬 AI와 온디바이스 AI 모델의 학습·추론·경량화 등에 초점을 맞춘 인프라라는 설명이다.
다만 제조 현장의 데이터는 일반 웹(Web) 데이터처럼 자유롭게 가져다 쓸 수 없다. 사용자의 설비·공정·제품 정보가 포함되는 만큼 보안·소유권 문제가 뒤따르기 때문이다.
이 맥락에서 전진 대표는 “사용자 현장에서 도출·추출한 데이터를 제3자에 공개·공유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실제로 프로젝트 전 사용자와의 비밀유지계약(NDA) 아래 확보한 데이터를 솔루션 업그레이드와 AI 모델 고도화에 활용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필요한 데이터를 정제·증강하고 모델 학습에 반영한다는 취지다.
자동차 68%의 벽...‘레고 블록’은 어디까지 복제될까
다만 현재 브릴스의 사업 무게중심은 여전히 자동차 분야에 쏠려 있다. 회사는 최근 3년간 산업별 매출의 68%가 자동차에서 발생했다고 공개했다. 지난해 제품별 매출에서도 검사가 59%로 절반을 넘었고, 물류 19%와 제조 18%가 뒤를 이었다. 앞서 피지컬 AI의 대표적인 실제 적용 사례 역시 차량 품질 검사였다. 자동차와 검사 분야에서 쌓은 경쟁력을 다른 산업·공정으로 얼마나 옮길 수 있느냐가 브릴스의 다음 성장성을 가르는 지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반면 회사가 실제 진입한 산업의 범위는 이보다 넓다. 전 대표는 식품가공을 비롯해 중공업·의료 등으로 공급 영역을 확대했다고 밝혔다. 참치·감자·돈가스 가공처럼 자동차와 작업 조건이 전혀 다른 현장에도 로봇 시스템을 적용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여기서 브릴스가 다음 수익화 단계로 제시한 것은 ‘표준 모델’이다. 검사·물류처럼 이미 공급 경험이 쌓인 솔루션 가운데 반복 판매가 가능한 구성을 별도 제품군으로 정리하고, 사용자·현장마다 신규 시스템을 설계하는 비중을 줄이겠다는 발상이다.
전진 대표는 이러한 방향성에 대해 “우리가 각 분야 솔루션을 ‘표준 모델’이라고 정의한다”며 “이를 여러 사용자에게 반복 공급하는 방향으로 사업 구조를 전환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를 위해 조직의 역할도 나누겠다는 방침이다. R&D 조직은 새로운 로봇·AI 기술 및 솔루션 개발을 맡고, 사업성이 확인된 제품은 생산·품질 조직이 이어받아 공급하는 전략이다. 검증된 기술·솔루션을 제조·판매하는 비중을 키우겠다는 의미.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는 조직과 이미 만들어진 제품을 반복 생산하는 조직을 구분하는 ‘투 트랙(Two-track)’ 체계로 이식하겠다는 뜻이다.
전 대표에 따르면, 이 전략은 완성된 로봇 솔루션 하나가 개별 로봇 본체보다 더 큰 사업 단위를 만들 수 있다는 관점을 반영했다. 그는 “우리가 모든 공정의 솔루션을 개발할 수는 없다”고 언급하면서 “모든 현장을 가져가기보다 반복 공급이 가능한 영역을 선별해 표준화하겠다”고 취지를 공언했다.
각 산업에서 독립·독보적인 사업군을 만들어낼 수 있는가. 이에 대한 답은 앞서 식음료(F&B)·중공업·의료 등에 투입된 솔루션이 일회성 공급에 그치지 않는 것. 2·3차 고객사로 확장되는 시점에 가늠해 볼 수 있다. 그래야 회사가 내건 산업 다변화도 실제 매출 실적으로 연결될 것으로 보인다.
향후 브릴스의 코스닥 상장 후 성적표를 평가할 때도 이 지점이 관건이 될 전망이다. 단순 수주 건수 증대보다 자동차 외 산업군에서 표준 모델의 반복 매출이 일어나는지, 그리고 그 비중이 실제로 커지는지가 사업의 내실을 가름할 잣대다. 브릴스는 이러한 체질 전환의 속도를 올리고 사업 체급을 확대할 수단으로 이번 IPO를 선택했다.
195억 공모 실탄은 ‘피지컬 AI 양산’으로...핵심은 ‘3각 기지’ 구축
회사가 이번 상장을 통해 확보하려는 것은 운영자금보다 R&D 이후의 단계를 직접 소화할 수 있는 사업 인프라다. 단순 기술 개발에 그치지 않고 실증·생산, 해외 사업까지 이어진다는 뜻이다. 사측은 사용 예정 자금 195억8000만 원 가운데 54.6%는 연구시설에, 30.7%는 국내 공장 증설, 나머지 14.7%는 미국 법인 운영 등에 배정할 방침이다.
국내에서는 인천광역시 연수구 송도동과 대구광역시의 역할을 분리했다. 본사가 있는 송도는 생산시설을 확충하고 개발된 로봇·AI 솔루션을 실제로 검증하는 실증 거점으로 키운다. 이 과정을 거치고 있는 현재 복합 생산·검증센터 설계를 마치고 경관 심의까지 완료했다.
이어 스마트 도시 특화단지로 지정된 대구광역시 소재 수성알파시티에는 AI 로봇 연구소 설립을 추진한다. 전 대표는 부산·울산을 비롯한 영남권에 고객사가 다수 분포한 데다 대구가 소재·부품 개발 기반을 갖추고 있다는 점을 거점 선정 배경으로 들었다.
송도에서 생산·검증 역량을 고도화하고, 대구에서 남부권 R&D와 사용자 대응 접점을 넓히는 이원화 전략으로 풀이된다. 다시 말해, 송도를 피지컬 AI 실증 거점으로 육성하고, 수성알파시티에 차세대 로봇을 위한 기술 혁신 허브를 구축한다는 계획이다.
다음 타깃 지역은 북미다. 브릴스는 미국 미시간 주에 약 6400㎡ 규모의 현지 거점을 두고 있다. 그간 기록한 북미 지역 누적 수주액 210억 원은 기존 자동차 고객군을 기반으로 달성한 성과다. 향후 의료기기·이차전지 등으로 적용 산업을 넓히는 동시에, 미국·멕시코를 포함한 북미에 이어 유럽으로 공급 범위를 확장한다는 계획이다. 현재까지 회사 기술이 진출한 국가는 15개국이다.
전 대표는 이 같은 해외 전략에 대해 “국내에서 검증된 로봇 솔루션을 현지 거점과 파트너십을 통해 전 세계로 확장해 나갈 것”이라고 밝히며 “국내에서 개발한 제품을 해외에 단순 수출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현지 생산·영업·대응 기능까지 갖춰 반복 공급 구조를 만들겠다”는 로드맵을 내놨다.
다른 한편, 사측은 일회성 수익을 넘어설 또 하나의 카드로 서비스형 로봇(Robot as a Service, RaaS)을 꺼냈다. 이는 높은 자본적지출(CAPEX)과 불확실한 투자수익률(ROI) 때문에, 초기 자동화 투자를 부담스러워하는 사용자를 타깃으로 한다. 로봇 도입 시 발생하는 리스크를 낮추고 자연스럽게 구독형 전환을 유도하겠다는 포석이다. 사전 검증부터 금융·운영관리·유지보수·사후서비스(AS)·개선까지 묶어 제공하는 방식이다.
전 대표는 “각종 현장 내 로봇 대중화가 실현되려면, 초기 투자 부담과 운영 리스크를 동시에 낮추는 카드가 필요하다”며 RaaS·임대(Lease)·대여(Rental) 등이 확대돼야 하는 배경을 내세웠다. 끝으로 “검증부터 금융관리·유지보수·AS·업그레이드까지 통합한 서비스로 지속 가능한 성장성을 만들어가겠다”고 포부를 전했다.
앞서 제시한 기술·제품 구상이 실질적인 성과로 이어지려면 넘어설 산이 남아있다. 확충하는 생산 시설과 해외 전초기지가 실제 제조 체급 확대와 지속·반복 매출로 직결되는지가 향후 핵심 검증 과제가 될 것으로 분석된다.
한편, 브릴스는 이번 상장에서 신주 120만 주를 공모한다. 희망 공모가 범위는 1만6500~1만9500원이고, 예상 공모금액은 약 198~234억 원이다. 기관투자자 대상 수요예측은 이달 31일부터 내달 4일까지, 일반투자자 청약은 다음 달 8일부터 이틀간 진행된다. 상장 주관사는 IBK투자증권으로 알려졌다.
헬로티 최재규 기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