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의 탄소배출 공시가 의무화되기 시작하면 단순히 배출량을 계산하는 것만으로는 대응하기 어렵고, 규제 시행 전에 공급망 전반의 데이터를 지속적으로 수집·검증할 수 있는 인프라를 구축하는 것이 핵심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특히 기업 배출량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스코프 3(Scope 3)은 협력사 데이터에 의존하는 만큼 준비를 늦출수록 비용과 업무 부담이 커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ESG 전문매체 ESG투데이(ESG Today)는 13일 아스에네(ASUENE) 창업자 겸 최고경영자(CEO) 니시와다 고헤이(Kohei Nishiwada)의 기고문 ‘의무 배출량 공시의 실제 모습: 일본에서 얻은 교훈(What Mandatory Emissions Disclosure Looks Like in Practice: Lessons from Japan)’을 게재했다. 니시와다는 일본 기업의 의무 공시 전환 경험을 토대로 기업들이 규제 시행을 기다렸다가 대응하기보다 스코프 3을 포함한 공급망 탄소 데이터 체계를 사전에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니시와다는 일본 기업들이 그동안 기후 관련 재무정보 공개 태스크포스(Task Force on Climate-related Financial Disclosures·TCFD)를 중심으로 자발적인 기후 공시에 적극적으로 참여했지만, 법적 의무 공시는 전혀 다른 수준의 데이터 관리 역량을 요구한다고 진단했다. 자발적 지속가능성 보고서에 활용했던 배출량 수치가 규제기관의 검토와 제3자 검증을 전제로 한 법정 공시에 그대로 활용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설명이다.
특히 의무 공시에서는 단순히 최종 배출량을 제시하는 데 그치지 않고 데이터 출처와 계산 과정, 산정 근거 등을 추적할 수 있어야 한다. 공시된 수치의 정확성을 뒷받침할 내부 통제 체계도 필요해 기업들이 기존 지속가능성 보고보다 훨씬 정교한 데이터 관리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는 것이다.
가장 큰 과제는 기업 자체 사업장에서 발생하는 스코프 1·2(Scope 1·2)보다 공급망 전반에서 발생하는 스코프 3 배출량이다. 니시와다는 기업 전체 온실가스 배출량에서 스코프 3이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크지만 기업이 직접 통제하기 어려운 가치사슬 전반에서 발생하기 때문에 측정과 검증의 난도가 훨씬 높다고 지적했다.
일본 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Sustainability Standards Board of Japan·SSBJ) 기준에서는 스코프 3을 온실가스 프로토콜(Greenhouse Gas Protocol·GHG Protocol)의 15개 범주에 따라 세분화해 관리하는 것이 중요해진다. 이에 따라 기업들은 구매한 상품과 서비스부터 운송, 판매 제품 사용, 투자 등 공급망 곳곳에서 발생하는 배출량 정보를 체계적으로 확보해야 한다.
니시와다는 일본 제조업의 다층적 하도급 구조가 공급망 데이터 수집을 더욱 어렵게 만든다고 설명했다. 대기업 아래 1차 협력사뿐 아니라 2차·3차 협력사와 다수의 중소기업이 연결돼 있지만 이들 가운데 상당수는 자체 탄소회계 시스템이나 배출량 자료를 관리할 전담 인력을 갖추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대기업이 공급업체에 배출량 자료 제출만 요구해서는 의무 공시에 제대로 대응하기 어렵다고 봤다. 지금까지 탄소배출량을 계산해 본 경험이 없는 협력사에는 산정 방법과 데이터 수집 절차까지 지원해야 하기 때문에 공급망 탄소 관리는 결국 협력사의 탄소회계 역량을 함께 구축하는 작업이 된다는 설명이다.
공급망 대응을 늦출수록 기업의 비용 부담도 커질 수 있다. 니시와다는 매사추세츠공과대학교 지속가능공급망연구소(MIT Sustainable Supply Chain Lab) 자료를 인용해 상당수 기업이 여전히 스프레드시트에 의존해 스코프 3 배출량을 측정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의무화 직전에 공급업체와 협의를 시작하면 여러 해에 걸쳐 진행해야 할 데이터 정비와 표준화를 짧은 기간에 한꺼번에 처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반대로 탄소배출 데이터 인프라를 조기에 구축하면 규제 대응뿐 아니라 경영 효율성을 높이는 데도 활용할 수 있다. 탄소정보공개프로젝트(Carbon Disclosure Project·CDP)의 분석에서도 배출량 감축에 대한 투자가 비용 절감과 재무적 성과로 이어지는 사례가 확인되고 있어 탄소 데이터 관리가 단순한 컴플라이언스 비용만은 아니라는 설명이다.
니시와다는 기업들이 의무 탄소공시를 매년 반복되는 단순 보고 업무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공급망을 조기에 파악하고 어느 협력사에서 실제 데이터를 받아야 하는지, 어느 부분에 추정치나 산업 평균값을 활용할 수 있는지를 미리 구분해 지속 가능한 데이터 인프라를 구축해야 한다는 것이다.
니시와다는 “지속적인 인프라가 없으면 탄소공시 업무가 시간이 지나면서 더 쉽거나 저렴해지지 않는다”며, “일찍 준비하는 기업은 의무 공시 대응을 관리 가능한 수준으로 만들 수 있지만 늦게 시작하는 기업은 더 높은 비용과 더 짧은 준비기간을 감수해야 한다”고 밝혔다.
헬로티 이동재 기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