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엔지니어링 솔루션 기업 시높시스(Synopsys)가 인공지능(AI) 시대 제품 개발 환경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새로운 설계 철학으로 '실리콘 투 시스템(Silicon-to-Systems)' 비전을 제시했다. 이번 비전은 글로벌 엔지니어링 시뮬레이션 선도 기업인 앤시스(Ansys)를 인수한 이후 시높시스가 내놓은 통합 전략으로, AI가 반도체를 넘어 자동차, 의료기기, 산업장비 등 물리적 제품 전반으로 확장되는 흐름에 대응하기 위한 것이다.
시높시스에 따르면 AI가 제품 영역으로 확산되면서 자동차는 더 이상 차체만으로 정의되지 않고 컴퓨팅 플랫폼이 제품 경쟁력을 좌우하는 시대로 진입했다. 커넥티드 의료기기는 점점 소형 데이터 프로세서의 기능을 수행하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으며, 산업 장비는 데이터를 스스로 학습해 고장을 예측하는 수준으로 발전하고 있다. 이처럼 혁신이 더는 개별 기술 영역에 머물지 않고 서로 다른 영역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발생함에 따라, 실리콘 단계의 의사결정을 시스템 수준의 결과와 연결하는 역량이 미래 제품 설계 경쟁력의 핵심이 된다는 것이 시높시스의 진단이다.
특화된 컴퓨팅, 첨단 패키징, 임베디드 AI 기술이 확산되면서 실리콘은 제품 차별화를 결정짓는 핵심 요소로 떠오르고 있다. 성능, 전력 효율, 열 특성, 신뢰성, 안전성, 검증, 비용 등 제품 경쟁력을 좌우하는 요소들이 더 이상 설계 후반부가 아닌 개발 초기 단계에서 결정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이러한 흐름은 설계 검증과 테스트, 문제 해결을 개발 후반이 아닌 초기 단계에서 수행해 위험을 줄이고 효율성을 높이는 '시프트 레프트(Shift Left)' 엔지니어링으로 이어지고 있다. 시높시스는 이를 '엔지니어링의 재설계(Re-engineering Engineering)'로 정의하며, 실리콘 단계의 결정이 기계·전기·열·소프트웨어 영역까지 연결되는 공동 설계(Co-design)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기존의 설계-제작-시험-수정으로 이어지는 순차적·선형적 제품 개발 방식은 오늘날의 복잡성을 감당하기 어려워지고 있다는 점도 짚었다. 물리적 프로토타입은 개발 후반부에야 등장하는 데다, 늦게 발견된 오류는 수정 비용이 급격히 증가한다. 시장 출시 기간이 짧아지면서 반복적인 재작업에 들일 시간적 여유도 줄고 있으며, 특히 반도체 테이프아웃이나 실제 시제품 제작 이후 발견되는 문제는 일정과 비용, 제품 경쟁력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에 따라 제품 혁신은 실제 제품이 존재하기 이전부터 시스템 수준에서 설계를 검증하는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으며, 이는 실리콘 IP, 전자설계자동화(EDA), 다중물리 시뮬레이션, 시스템 시뮬레이션 등 엔지니어링 전 영역의 통합을 통해 가능해진다고 시높시스는 설명했다.
AI 기반 엔지니어링 워크플로우도 새로운 제품 개발 환경을 만들어가는 동력으로 꼽힌다. AI는 인간의 창의성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설계 공간 탐색, 트레이드오프 최적화, 반복 업무 자동화를 지원하는 생산성 향상 도구로 자리잡고 있다. 강화학습, 생성형 AI, 에이전트 기반 워크플로우가 설계 프로세스에 점차 적용되면서 엔지니어는 반복 작업보다 창의성과 시스템 설계 의도, 제품 차별화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고 있다.
시높시스는 이러한 변화가 단순한 기술적 변화가 아니라 제품 개발 철학 자체의 전환이라고 강조했다. 선도 기업들은 더 이상 개별 부품이나 특정 기술 영역 중심으로 사고하지 않고, 전력 대비 성능, 안전성, 제품 수명, 사용자 경험 등 결과 중심의 관점에서 제품을 설계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리콘, 소프트웨어, 물리 환경, 시스템 동작이 함께 설계될 때 혁신이 가속화되고, 반대로 이들이 분리될 경우 복잡성이 비용과 위험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도 짚었다. 이에 따라 미래 경쟁력을 갖춘 기업들은 아키텍처 설계부터 검증, 제조, 배포, 운영 최적화에 이르는 전체 생애주기를 연결하는 플랫폼을 구축하고 있으며, 디지털 트윈 역시 단순한 가상 모델을 넘어 실제 운영 중인 제품을 반영하는 살아있는 시스템으로 진화하고 있다. 운영 과정에서 수집된 데이터가 다시 설계 단계로 환류돼 신뢰성과 성능을 지속적으로 높이고 차세대 제품 개발을 지원하는 구조다.
시높시스는 차세대 제품 개발이 개별 기술 혁신보다 지능을 얼마나 효과적으로 제품에 통합하는지에 따라 결정될 것으로 전망했다. 빠른 개발 속도뿐 아니라 복잡성을 관리하면서도 예측 가능성을 유지하는 역량이 미래 경쟁력의 핵심이며, 이를 위해서는 다양한 엔지니어링 영역 간 통합과 신뢰할 수 있는 의사결정, 제품이 실제로 존재하기 이전부터 시스템 전체를 이해할 수 있는 역량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오늘날 반도체 기업은 시스템 수준의 관점에서 제품을 설계하고, 시스템 기업 역시 실리콘 아키텍처 영역까지 설계 범위를 확대하고 있는 만큼, 현대 제품은 실리콘·소프트웨어·물리 환경·시스템 통합이 상호 연결된 하나의 생태계로 작동한다는 것이 시높시스의 결론이다.
한편 앤시스를 인수한 시높시스는 반도체 설계, IP, 시뮬레이션 및 분석, 설계 서비스 전반을 아우르는 글로벌 엔지니어링 솔루션 기업으로, 다양한 산업 분야 고객의 R&D 역량과 생산성 극대화를 지원하고 있다. 1970년 설립돼 미국 피츠버그에 본사를 둔 앤시스는 전 세계 75개 이상의 전략적 판매·개발 거점과 40개국의 채널 파트너를 통해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헬로티 김재황 기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