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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의 날 특집(上)] 4월 10일은 왜 ‘전기의 날’일까?

입력 : 2019.04.15 2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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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단 헬로티]

 

4월 10일. 전기의 날이다. 안타깝게도 포털사이트에 있는 지식백과 등에는 아직 전기의 날을 소개하고 있지 않지만, 이날은 의미가 크다. 서양의 앞선 과학문물을 통해 국운 회복을 꿈꾸던 고종은 한성전기를 설립해, 1900년 4월 10일 종로 사거리 주변 가로등에 전깃불을 밝혔다. 우리나라 최초의 민간 점등이었다. 전력업계는 1966년부터 4월 10일을 전기의 날로 정해 매년 기념하고 있다.

 

 

<사진 : 게티이미지뱅크>

 

4월 10일, 우리나라 최초 민간 점등 밝혀지다

 

구한말 기록을 담고 있는 ‘대한계년사(大韓季年史).’ 여기에는 ‘1900년 4월 10일 민간 최초로 종로 사거리에 3개의 가로등이 점등돼 전차 정거장과 매표소를 밝혔다’는 기록이 있다.

 

우리나라 최초 민간 점등이 밝혀진 날이 바로 4월 10일인 것이다.

 

대한전기협회와 전기산업계는 뜻을 모아 1966년, 4월 10일을 전기의 날로 지정했다. 그런데 사실 이날은 민간 최초로 점등이 밝혀진 날이지,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전기가 들어온 날은 아니다.

 

우리나라 전기 역사의 첫 시작은 이보다 13년 빠른 1887년 3월 6일이다. 에디슨이 백열전구를 발명한 1879년으로부터 불과 8년이 지난 시간이다. 이는 중국과 일본보다 2년 앞선 시기였고, 시설 역시 16촉광의 백열등 750개를 동시에 켤 수 있는 동양 최고의 시설이었다.

 

 

 1887년 3월 6일 경복궁 건청궁의 점등식을 시현한 시등화 <사진 : 한국전력 전기박물관>

 

아시아에서 가장 먼저 전기 들어온 경복궁 건청궁

 

경복궁 건청궁에는 전기발상지 표지석이 있다. 이곳에서는 한국뿐 아니라 아시아에서 가장 먼저 전등이 밝혀진 곳이다.

 

고종과 문무백관이 지켜보는 가운데 국내에서 처음으로 백열등 전구들이 일제히 불을 밝힌 곳이 바로 이곳이다.

 

처음 전등이 설치된 장소가 궁궐이었던 이유는 당시 전등이 설치비와 유지비가 많이 드는 최첨단 과학문물이었기 때문이다. 그만큼의 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 장소로는 궁궐이 제격이었다.

 

발전기는 발생하는 열을 물로 식히기 위해 향원정 연못가에 설치됐다. 조선에 처음 불을 밝힌 전기는 별명도 많았다.

 

당시 사람들은 전기가 샘물을 먹고 불을 켠다고 해서 ‘물불’이라 불렀다. 또, 묘한 불이라는 뜻으로 ‘묘화(妙火)’, 괴송하다고 ‘괴화(怪火)’라고도 불렀다. 잦은 고장으로 꺼지거나 깜빡거리는 일이 많아서 돈도 많이 들고 쓸모없는 게 건달을 닮았다고 ‘건달불’이라 부르는 이들도 있었다.

 

당시 점등 시간에는 이 전깃불을 구경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인산인해를 이뤘다고 한다. 촛불에 익숙했던 사람들에게 전기는 신기한 구경거리였을 것으로 추측된다.

 

 

<사진 : 게티이미지뱅크>

 

왜 최초로 전기 들어온 날이 ‘전기의 날’ 못됐을까?

 

전기가 건청궁에서 모습을 드러낸 이후 13년 뒤 전기는 민간으로 활동 영역을 넓혔다.

 

당시 고종은 서양의 앞선 과학문물을 통해 기울어가던 조선의 국운 회복을 꿈꾸었다. 이에 고종은 한성전기를 설립해 1900년 4월 10일 종로 사거리 전차 정거장과 매표소 주변 가로등에 전깃불을 밝혔다.

 

이날이 우리나라 최초의 민간 점등 날이자, 지금의 전기의 날로 불리는 날이다.

전기의 날을 우리나라 최초 시등일이 아닌, 종로에서의 시등일로 정한 이유는 기록 문제에 있다.

 

우리나라는 일제강점기 해방 이후 만성적인 전력 부족에 시달렸다. 따라서 특정 시간에만 전기를 공급하는 제한 송전을 실시했다. 하지만 일정 시간에만 전기가 보급되니 삶이 불편할 수밖에 없었다. 이에 한전은 전력을 항상 보급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기 시작했다.

 

전기의 날 ‘언제’, ‘왜’ 생겼나?

 

해방 이후 한국의 전력산업은 1950년대까지 조선전기, 경성전기, 남선합동전기 등 전력 3사 체제로 운영됐다.

 

발전설비는 빈약했음에도 하나의 발전회사와 두 개의 배전회사로 분립되어 자기자본을 잠식하다 보니 전기 산업이 전반적으로 발전되지 못했다. 이에 1961년, 기존 전력 3사가 한국전력주식회사로 통합됐다.


한전이 들어서던 해, 우리나라의 발전설비는 전력수요에 비해 발전가능 전력이 3/4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한전은 정부의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에 맞추어 제1차 전원개발 5개년 계획을 수립, 추진했다.

 

이 기간 중 광주내연 신설, 왕십리내연 증설, 제주내연 증설, 영월화력 복구, 삼척화력 증설, 부산화력 신설, 춘천수력 신설, 신규 영월화력 건설 등의 과제가 추진됐다.

 

특히 부산화력발전소의 준공으로 그동안 실시되어 온 제한 송전이 1964년 5월 1일을 기하여 무제한 송전으로 바뀌었다. 비로소 전력계통에 안정이 생긴 것이다.

 

이를 기념해 전기의 날을 만들자는 논의가 오갔다. 하지만 국내 최초인 건청궁의 점등일의 기록을 찾을 수 없었다. 따라서 한성전기의 시등일인 1900년 4월 10일을 전기의 날로 제정했다.

/김동원 기자(eltred@hellot.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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