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단 헬로티]
"단순한 조명이 아니다. 농사도 짓고 피부도 가꾸는... 나는 'LED'다"
에디슨은 인류를 밤으로부터 자유롭게 했다. 어둠을 밝혔고, 실내 생활도 자유롭게 만들었다. 전구가 발명되고 한 세기 후 그보다 더 진화한 LED가 개발됐다. 에너지 절감효과가 높은 LED는 전구의 자리를 미뤄냈다. 에디슨은 아마 후손의 작품에 박수를 보냈을 것이다. 하지만 에디슨은 곧 슬픈 소식을 들어야했다. LED를 처음 개발한 에디슨의 원조 전구회사인 GE(제너럴일렉트릭)가 LED로 인해 조명사업을 접어야했단 소식이었다. GE는 알지 못했다. LED의 긴 수명을. 또 GE는 알지 못했다. LED가 수많은 변신을 할 수 있단 사실을.
밤을 물들인 LED, 달님을 외롭게 하다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라고 말하는 호랑이를 직면한 오누이. 어린 나이에 호랑이를 만난 이들은 사람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인 생존을 먼저 생각했다. 호랑이가 어떻게 말을 하는지, 호랑이가 할머니 흉내를 낼 수 있는지 등의 호기심은 접어두었다.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악력으로 동아줄을 잡고 하늘로 올라간 오누이는 썩은 동아줄로 번지점프 한 호랑이를 뿌리치고 해님과 달님이 되었다. 밤의 어두움을 무서워한 여동생은 해님이 됐고, 동생에게 낮을 양보한 오빠는 달님이 되었다. 그런데 요즘 이 오빠가 고민이 많다. 어두운 밤을 밝혀주는 역할을 하던 오빠가 더 이상 할 일이 없게 됐다. 달님이 아니더라도 이미 밤은 LED로 밝게 물들었기 때문이다. “동생아, 이제 밤을 두려워하지 않아도 돼. 역할을 바꿔보는 건 어떨까?”
LED가 밤을 지배한 지는 10년 조금 넘었다. LED는 수백 년간 밤을 밝혀온 달을 미뤄냈고, 100여 년간 밤을 밝혀온 백열전구도 침묵시켰다. LED는 반도체 물질에 전기가 흐를 때 물질 내부의 에너지 차이로 빛을 낸다. 시소를 탈 때 공중에 있던 사람이 내려오면서 반대편에 있던 사람이 올라오는 원리와 같다. 시소는 위치에너지가 또 다른 위치에너지로 바뀐다면, LED에선 전자의 위치에너지가 빛에너지로 바뀔 뿐이다. 이 원리는 1900년대 초반에 처음 발견됐다. 실리콘 게르마늄에 전기가 흐르자 빛이 나오는 현상이 목격된 것이다.
첫 원리가 밝혀졌지만, LED는 반세기 가까이 침묵의 시간을 갖게 된다. 당시 LED는 사람 눈에 보이지 않는 적외선을 방출하는 반도체 소자에 불과했다. LED가 지금의 영역을 찾아가기 시작한 시기는 1962년부터다. 미국의 GE에 근무하는 닉 홀로냑은 LED에 전기를 흘려줄 때 다양한 빛을 자유자재로 조절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러면서 GE는 LED 연구를 시작했다. 이때 처음으로 적색 LED가 개발됐다. 이후 녹색 LED가 개발됐다. 그보다 강한 청색 LED가 개발되기까지는 30년이란 시간이 걸렸다. 일본 니치아화학의 나카무라 슈지를 포함한 일본 과학자 3명은 1993년 질화갈륨을 이용한 청색 LED를 처음으로 만들었고, 이들은 그 공로를 인정받아 2014년 노벨물리학상을 받았다.
백열전구 잠재운 LED의 등장
LED가 밤을 지배하기 시작한 건 2000년대부터다. 2001년 금호전기는 백열전구 소켓에 꽂을 수 있는 가정용 LED를 생산했다. 그해 연말 파워버스페이스, 이에스티 등 다수의 중소기업도 시장에 진출했다. 하지만 당시 생산했던 LED는 지금의 제품과 거리가 멀었다.
2007년 이전만 해도 LED 조명 밝기는 형광등의 5분의 1 수준에 불과했다. 상용화가 쉽지 않았다. 무드등이나 수면등 등 간접조명 역할밖에 못했다. 실제로 LED가 신사업으로 부상하던 2000년대 초반에 출시된 제품 대부분은 간접조명등이었다.
LED의 밝기 문제는 큰 숙제였다. 에너지 절감효과가 큰 LED는 밝은 미래를 보여주었지만, 비춰지는 밝기가 너무 어두웠다. 그러자 정부가 나섰다. 산업통상자원부는 2006년, ‘LED 조명 15/30 보급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2015년까지 전체 조명시장의 30%를 LED로 대체하자는 이 프로젝트는 LED 업계의 개발 속도를 높이는 데 충분했다.
LED 보급에는 국내 조명 기업 서울반도체의 영향이 컸다. 서울반도체는 2004년까지 전량 수입하던 LED 조명을 세계 2번째로 개발하며 국산화 시켰다. 서울반도체에서 처음 개발한 제품의 밝기는 백열등보다 어두운 수준이었다. 따라서 자동차나 건물 등에서만 쓰일 수 있었다. 여기서 서울반도체는 멈추지 않고, 다시 개발에 들어갔다. 이 기업은 2006년 11월, 단일칩으로는 세계에서 가장 밝은 빛인 240루멘(lm)를 발하는 LED 조명을 출시했다. 이후 서울반도체는 2007년 1월 은백색 LED 조명인 아크리치 등을 선보인 뒤 기존 제품보다 밝기를 더 높이는 데 주력했다. 마침내 서울반도체는 2007년 9월, 단일 패키지로선 업계 최고 수준인 400lm대의 밝기를 내는 LED 시제품 개발에 성공했다.
이후 LED는 밤을 지배해나갔다. LED 조명 제품들은 주거 조명에서 자동차 헤드라이트, 작업용 헤드라이트, 가로등, 간판 조명, TV 등 다양한 분야에 이용되었다. LED 조명 없는 밤은 상상할 수 없게 되었고, 마침내 LED는 밤의 황제 자리에 올라설 수 있었다.
▲ 식물생장용 LED 조명이 개발되면서 LED가 햇빛의 역할을 대신하게 됐다.
에디슨은 LED 발명을 좋아했을까?
LED가 밤을 지배해나가는 모습을 반가워하지 않는 사람이 있었을까? 아마 있었다면 에디슨이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에디슨은 백열전구를 개선·발전시키고 생산법을 발명한 위인으로 유명하다. 저승에서라도 LED 발명에 대한 소식을 들었다면, 에디슨은 후손의 능력에 박수를 보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슬픈 소식도 들어야했다. 에디슨의 원조 전구회사로 출발해 조명산업 발전사와 함께해온 GE의 조명산업이 LED 때문에 몰락했다는 소식이다. 아이러니한 건 LED를 처음 개발한 기업이 바로 GE였다는 점이다.
1962년 LED를 개발하며 조명산업의 새로운 시대를 열은 GE의 조명산업은 에디슨이 개발한 백열전구와 같은 운명을 맞이했다. LED는 수명이 길었다. 백열전구보다 20배 이상 오래 갔다. 전구를 판매해 이익을 추구하는 GE로서는 예상치 못한 장애물이었다. 거기에 중국의 저가 공습이 이어졌다. GE는 막다른 길에 몰릴 수밖에 없었다.
GE의 조명산업이 더욱 비참한 최후를 맞은 건 끝내 자신들이 개발한 LED의 진정한 가치를 몰랐단 사실이다. LED는 자신이 입고 있는 조명이란 옷에 만족하지 않았다. 밝아진 빛만큼 더 화려한 역할을 원했다. LED는 농업과 의료, 헬스 케어 분야에서 새로운 영역을 창출해나가기 시작했다.
사실 조명 시장은 레드오션이다. 게다가 수명이 길어진 조명은 업계엔 치명타였다. 국내 조명 기업도 GE의 전례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2010년 LED를 태양광, 자동차용 전지, 의료기기, 바이오와 함께 5개 신수종사업으로 선정한 삼성전자는 중국산 공세에 밀려 2014년 LED 조명 해외영업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LED 사업을 이어가기 위해선 변신이 필요했다. 삼성전자와 같은 대기업은 LED 영업을 포기하면 됐지만, LED만을 전문으로 하는 중소기업은 이 조명을 이용한 먹거리 창출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 LED는 밤의 황제 자리에서 일어나 낮의 영역까지 침범하게 되었다.
달님에 이어 해님도 긴장하게 한 LED의 변신
밤을 밝혀주면서 달님의 역할을 뺏은 LED는 그 동생인 해님의 고유 영역까지 빼앗았다. 해는 식물 성장에 필수 요인이다. 햇빛이 있어야 식물의 광합성이 이뤄질 수 있어서다. 하지만 식물생장용 LED 조명이 개발되면서 LED가 햇빛의 역할을 대신하게 됐다. 식물생장용 LED 조명에는 광합성에 필요한 단파장만 남겨 햇빛이 없는 밀폐된 공간에서 태양광을 보강할 수 있는 기술이 들어있다. 삼성전자는 지난 5월, 식물 성장을 촉진하는 660㎚ 파장의 LED 광원 패키지를 출시하기도 했다.
LED는 헬스 케어 분야에도 진출했다. LED 조명의 자외선(UV) 영역을 강화해 물이나 공기를 살균하는 장치에 활용했다. LG이노텍은 지난해 출력 100㎽의 자외선 LED를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 LG이노텍의 제품은 수은이 포함돼 인체에 유해할 수 있는 기존 자외선 살균 램프 대신 자외선 LED 소독기 수요가 높아지는 선진국 시장에서 높은 인기를 얻고 있다. 실제로 LG이노텍은 글로벌 매출 순위에서 일본 나치아화학공업에 이어 2위에 올라서는 저력을 보여주었다.
LED의 변신은 미용 영역까지 이어졌다. LG전자는 LED 빛을 피부나 근육세포에 쪼이면 세포가 평소보다 3배가량 빨리 성장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LG는 이 연구결과를 토대로 LED를 이용한 피부미용기기 ‘프라엘’을 출시했다. 이 미용기기는 200만 원이라는 고가에도 불구하고 많은 수요를 보이고 있다.
LED는 레드오션? 언제든지 파란색 옷 갈아입을 수 있다
단순한 조명을 넘어선 LED는 몸집을 부풀리고 있다. LED 기술은 TV 디스플레이로도 이어진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세계 최초 시네마 LED인 ‘오닉스’를 선보인 데 이어 올 하반기에는 가로, 세로 크기가 100㎛ 이하인 LED 광원으로 만드는 마이크로LED TV를 출시했다.
LG전자는 눈 건강에 해로운 청색광을 최대 60%까지 줄인 ‘세이프블루 LED 트로퍼’를 출시했다. 이 제품은 병원과 학교 등의 시장에서 높은 성과를 보일 예정이다.
한국광산업진흥회는 2019년 국내 LED 시장 규모가 10조 원을 넘어설 것으로 전망한다. 북미 LED 조명시장은 이미 10조 원 수준에 달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글로벌 자외선 LED 시장은 2016년 1억 5,200달러에서 2021년 11억 1,800만 달러로 7배 이상 팽창할 전망이다.
LED는 많은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국내 시장은 여전히 어렵다. 특히 중소기업은 더 많은 어려움을 가지고 있다. 국내 조명기업 피디아이 주식회사의 임선택 대표는 “은행의 대출 등급을 보았을 때 LED 사업은 10단계이다. 또 국가에서 지원해주는 영역도 기반이 갖추어진 기업에게 우선순위가 가고, 기술과 개발 능력은 있지만 기반이 잘 형성되지 않은 기업은 지원받기가 힘들다”면서 “이러한 현상이 이어질 경우 국내 LED 산업은 해외에 계속 뒤쳐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도시의 밤을 비춰주는 LED. 현재 LED 시장은 출혈경쟁이 계속 발생할 정도로 레드오션을 겪고 있다. 하지만 LED는 해님과 달님의 위상에 도전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기술개발에 대한 지원이 탄탄해진다면 언제든지 빨간색 옷에서 파란색 옷으로 갈아입을 수 있는 시장이 바로 LED 시장이다.